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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과학교육 방법·내용은 모르면서 눈치만 배운다

청량고등학교 교사 성연욱


"다음 문제. 다음 중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
 

졸리운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학생들.
 

"코페르니쿠스는 일상적 경험과 사실에 더 부합되는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같은 자연 현상을 보는 이와 같은 관점의 변화는 어떤 의의를 갖고 있을까? 당시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들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영악한 학생들은 벌써 교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또다른 문제의 '정답'을 찾는 데에 몰두해 있을 뿐이다.
 

문교부 제정 교육과정에서는 과학교육의 목표로 과학의 기본개념 이해, 탐구능력의 신장 및 과학에 대한 긍정적 태도 함양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 시간에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의 기본 개념보다는 결과적 지식의 주입에 급급하고, 탐구 능력의 신장보다는 정답 고르기 훈련에 몰두하며, 과학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환멸과 증오심만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이제 그 지겨운 과학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학생들의 태도에 오늘날의 과학교육의 실상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폭넓은 자연관을 형성하고 과학적 문제해결 태도를 배우기보다, 이 학생들이 3년동안 불철주야 배워온 것은 앞으로는 절대로 과학 공부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아닌가.
 

'마슬로우'의 주장대로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지적 호기심이 포함된다면 과학이란 학문도 본질상 인간의 욕구충족 행위의 하나이다.
 

과학이란 인간이 경험하는 복잡한 자연현상에 내재한 일반적 법칙을 찾아내어 이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즉 보다 단순한 원리와 상징으로 보다 많은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거기에 사용된 언어의 상징성과 함축성 때문에 '워즈워드'나 김소월의 시가 아름답듯이 '케플러'의 제 3법칙이나 '닐스보어'의 원자모형은 명쾌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교육학자인 '브루너'는 결과로서의 지식은 과학의 '중간 언어' 일 뿐, 과학적 지식은 아니라고 했다. 즉 과학적 지식을 배우게 하려면 지식의 첨단에 선 학자들이 연구하는 방법과 본질상 같은 활동을 하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과학자들이 가진 과학적 안목과 탐구하는 방법을 학생들도 그 나름의 수준에 맞게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브루너'의 이론을 배경으로한 미국의 학문중심 교육과정이론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과학교육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해방이후 몇 차례의 교육과정 개편 작업에도 불구하고 바뀐 것은 교육과정이지 교육 현실은 아니었다. '듀이'가 소개되었고, '브루너'와 '로저스' 이론이 도입되었지만, 일제시대의 권위적 교사에 의한 주입식 교육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 과학교육이 개선되지 않고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구호에 그치고만 과학교육 진흥 정책과, 교육과정의 경직성, 그리고 교사에 대한 자율권 제한과 입시제도의 압력, 나아가 교과내용과 교육이론의 무국적성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원인이 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왜곡된 과학교육관이다.
 

즉 과학교육의 의의를 과학이라는 지적 활동 자체가 지닌 가치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고도 산업 사회의 준비로서의 과학교육',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과학교육' 등에 내포된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교육이 직업 수행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국가 발전에 공헌한다는 것과 국가 발전에 필요한 과학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교육이 목적적 가치를 저버리고 수단적 가치에 치중될 때, 지적희열에 따르는 창조적 탐구활동은 억제되고 결과적 지식의 반복 숙달을 통한 기술 공학적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참다운 과학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반 외적 조건의 개선과 교육관의 정립을 통하여 과학교육의 내재적 가치의 추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한 내재적 가치의 추구란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적 탐구능력을 터득하여 과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도록 하는 일이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성연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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