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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x긱블] 되네르 케밥 기계

각국의 속담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합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만큼 속담도 다른 나라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래 속담이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Hunger is the best sauce’(영미권)
‘Голод - лучший повар’(러시아)
‘Hunger ist der beste koch’(독일)
‘시장이 반찬이다’(한국)

 

모두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있다’란 의미입니다. 배고프면 밥과 김, 김치 정도만 있어도 꿀맛이죠. 이건 만국 공통인가 봅니다. 긱블 이야기에서 이렇게 속담 얘기부터 꺼낸 이유는 이번 작품 컨셉이 이 속담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품의 의뢰인은 인터넷방송 스트리머 오킹 님입니다. 오킹 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케밥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배고파지고 싶다’는 괴상한 부탁을 해왔습니다. 한 마디로 고생시켜달라는 얘긴데요. 이건 긱블 전문입니다. 아주 섬세한 손길로 오킹 님을 고생시켜 보겠습니다.

 


악마의 기어비 80:1


케밥은 터키의 대표 음식입니다.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기둥처럼 쌓아올린 고깃덩어리를 구워 잘라낸 뒤 얇은 빵 위에 채소와 함께 얹어 싸 먹는 ‘되네르 케밥’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고기를 굽는 방식이 독특한데요. 긴 꼬챙이에 저민 고기를 차곡차곡 꽂아 쌓아올리고 한쪽에 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꼬챙이를 회전시켜 골고루 구워지도록 하죠. 흔히 생각하는 바비큐 요리 도구들을 세워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긱블의 메이커 잭키 님은 이 꼬챙이를 돌리는 데 온 힘을 빼는 케밥 기계를 만들 작정입니다. 꼬챙이를 돌리지 않으면 고기가 한쪽은 타고, 한쪽은 덜 익을 테니 말이죠. 잭키 님은 꼬챙이에 자전거 바퀴를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전체 설계를 알아볼까요. 우선 페달을 밟아 자전거 바퀴를 돌립니다. 그러면 자전거 바퀴와 연결된 축이 돌고, 마지막으로 이 축과 연결된 꼬챙이가 회전합니다. 목표는 80:1입니다. 페달 80바퀴를 돌려야 꼬챙이가 한 바퀴 돈다는 뜻입니다. 케밥을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고플 것만 같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겠네요.


그럼 이제 자세한 제작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게요. 가장 먼저 자전거 바퀴와 축의 연결입니다. 축을 자전거 바퀴와 직접 연결하기는 힘듭니다. 이미 바퀴 정 가운데에는 바퀴를 고정하는 프레임들이 설치돼 있어서 축을 꽂을 수가 없죠. 그래서 자전거 바퀴와 맞닿게 기어 하나를 설치하고, 이 기어 가운데에 축을 연결할 생각입니다. 이런 외부 장치를 ‘동력 인출 장치(PTO·Power Take Off)’라고 합니다. 자전거의 동력을 빼앗아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톱니바퀴 모양의 PTO 기어를 3D 프린터로 만들었습니다. PTO 기어를 자전거 바퀴에 맞대고 페달을 밟아보니 기어가 잘 돌아갑니다. 기어를 더 효율적으로 돌리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도 톱니바퀴 모양의 3D 프린팅 출력물을 붙였습니다. 바퀴를 감싼 톱니바퀴와 PTO 기어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굉장히 고속으로 돌아갑ㄴ….

 


예상대로 안 될 걸 예상했다


안 돌아갑니다. 바퀴가 반 바퀴도 못 돌고 턱 멈춰버렸습니다. 어디에 걸렸나 살펴보니 바퀴 아래쪽에 있는 프레임에 바퀴가 걸려버렸습니다.


잭키 님이 사용한 자전거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볼 수 있는 실내자전거입니다. 그래서 자전거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하는 긴 프레임이 바퀴 바로 아래를 지나갑니다. 이런 상황에 바퀴 바깥에 톱니바퀴를 덧붙였더니 이 프레임에 걸려버리고 만 겁니다. 잭키 님이 설계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입니다. 바퀴의 동력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바퀴에 두른 톱니바퀴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한숨을 연달아 쉬던 잭키 님은 “이런 걸 해결하는 게 엔지니어의 몫(찡긋)”이란 명언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온갖 도구들을 다 가져와, 자전거를 해체하고 프레임 일부를 도려내 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드디어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은 PTO 기어에 축을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그냥 기다란 봉을 연결하면 되겠거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오킹 님은 이걸 야외에서 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야외라는 말은 바닥이 평평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자전거와 케밥 기계의 높이가 다른 상태에서 일직선 봉으로 연결했다가는 고속 회전하던 봉이 뒤틀려 이탈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자전거와 케밥 기계의 사이 간격도 주변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려심 깊은 메이커 잭키 님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추진축’을 달았습니다. 추진축은 자동차에 많이 사용됩니다. 자동차의 어떤 움직임 속에서도 엔진의 동력을 안정적으로 바퀴에 전달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추진축에 사용되는 조인트(이음 장치)는 몇 가지 있는데, 잭키 님은 그중 슬립 조인트(Slip Joint)와 유니버설 조인트(Universal Joint)를 이번 작품에 사용했습니다. 유니버설 조인트는 자전거와 케밥 기계의 높낮이에 맞게 추진축의 각도를 조절하고, 슬립 조인트는 자전거와 케밥 기계의 알맞은 간격을 위해 추진축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입니다.


추진축을 설치하면서 또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진동입니다. 고속으로 회전하면 아무래도 축이 심하게 진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기어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음이 요란하게 나곤 합니다. 그래서 진동을 줄이기 위해 축의 무게중심이 최대한 가운데에 있도록 하고, 기어가 맞물리는 부분에 윤활제를 발랐습니다.


축의 나머지 한쪽 끝을 케밥 기계의 꼬챙이와 연결할 차례입니다. 꼬챙이에는 악마의 80:1 비율 기어가 장착됐습니다. 이 기어에 축을 연결한 뒤 시연을 해봤습니다. 잭키 님이 페달을 힘차게 밟아봅니다. 잭키 님이 만들어낸 동력은 자전거 바퀴-PTO 기어-추진축-80:1 기어-꼬챙이까지 차례로 전달됩니다.


근데 생각보다 꼬챙이가 빠르게 돕니다. 대략 페달을 여덟 번 밟으면 꼬챙이가 한 번 돌아갑니다. 잭키 님은 “자전거 바퀴와 PTO 기어에서 증속이 돼 실제로는 80번까지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꼬챙이가 한 바퀴 돌게 돼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거, 이거 오킹 님이 고생을 덜해서 케밥이 맛없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케밥 기계는 전체적으로 열에 강한 스테인리스로 제작했습니다. 화로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야 하기 때문이죠. 혹시나 오킹 님의 손이 불에 델까 봐 손잡이는 나무로 덧대고, 화롯불이 날리지 않도록 바람막이도 설치했습니다. 고기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아래쪽에 넓은 쟁반도 놓아줬습니다. 잭키 님의 배려심에 마음마저 훈훈해지네요.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제 오킹 님이 고생고생해서 만든 케밥을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맛있을까요. 2월 초 긱블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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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 사진 및 도움

    긱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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