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가장 관심을 받은 야생동물은 박쥐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인간으로 옮아 왔다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코로나19가 전파된 것은 박쥐와 사람의 ‘만남’ 때문이지 박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박쥐와 사람의 관계에서 더 큰 피해를 입어온 것은 늘 박쥐였다. 추운 겨울에 야생동물구조센터에 근무하다 보면 그 피해를 더 실감할 수 있다. 서식지 파괴로 원래의 터전을 잃고 도심지에서 겨우 잠을 청한 박쥐를 안타깝게도 너무 자주 마주치게 된다.
추운 겨울, 겨울잠에서 깨어난 박쥐
“집에 박쥐가 나타났어요!” 박쥐가 겨울잠에 드는 11~12월이 되면 이런 신고가 종종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들어온다. 창문틀이나 방충망에 붙어있거나 집을 보수하려 천장을 뜯어냈다가 여러 마리의 박쥐를 발견한 경우도 있었다. 보통 깜짝 놀란 상태로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집에 박쥐라니!
박쥐는 원래 동굴이나 산림에서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하지만 개발 때문에 점점 터전이 사라지자 도심지 건물의 외벽, 창문틀, 처마와 같이 사람이 드나드는 장소에서 겨울잠을 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건물에서 겨울잠을 자는 박쥐에게 가장 위험한 요인은 거주민들이 발생시키는 소음이나 진동 같은 물리적 자극이다. 박쥐는 겨울잠에 들면 심박수와 호흡수를 최대한 낮춰 산소와 에너지 소비량을 줄인다. 예기치 못한 자극에 의해 깨어나면 갑자기 계획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박쥐가 사람이 많이 드나들고 큰 소음이나 진동이 예상되는 곳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으면 지체없이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신고해야 한다.
구조센터에 박쥐가 도착하면 우선 충분히 살이 쪘는지 확인해야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체중의 20~40% 정도의 지방을 축적해 자는 동안 에너지로 활용한다. 지방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거나 예기치 못하게 깨어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상태에서 다시 잠이 들면 결국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충분히 살이 찌지 않은 박쥐는 밀웜이나 애벌레, 곤충 같은 먹이를 먹여 목표 체중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겨울잠을 재운다. 야생동물구조센터 내에서 박쥐가 겨울잠을 자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단연 냉장고다. 습도와 온도를 맞춰줄 수 있고 공간도 널찍하다. 칸칸이 다른 온도와 습도를 설정해 여러 동물을 겨우내 재운 적도 있다.
물론 냉장고에 동물을 넣어두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잠깐 깼을 때 마실 물과 몸을 숨길 은신처도 조성해줘야 한다. 냉장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2~4주에 한 번씩 깨워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체중을 다시 올려준다. 세상이 꽁꽁 어는 겨우내 이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 어느새 박쥐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봄이 온다. 건강이나 비행 상태를 확인한 후 기온이 3~4℃ 이상으로 오르는 날 방생한다.
박쥐에게 날개막 손상은 치명적
개나 고양이에게 공격 당하거나 충돌에 의해 날개가 손상된 상태로 구조되기도 한다. 박쥐는 포유류 중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하늘다람쥐 등의 동물이 비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지를 펼쳐 활강할 뿐 엄밀히 말하면 비행은 아니다. 박쥐만이 지닌 비행 능력은 박쥐가 세계 곳곳에 퍼져 서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에 퍼져나간 박쥐는 현재 1200여 종으로 진화해 살아가고 있다. 전체 포유류 종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종 다양성이 높다.
이처럼 비행이 생존 무기인 박쥐에게 날개 손상은 치명적이다. 2018년 안주애기박쥐(18-1227) 한 마리가 겨울잠을 자던 중 고양이에게 공격당해 구조센터로 이송됐다. 날개막이 찢어진 상태였다. 날개막은 길게 늘어난 손가락 사이를 물갈퀴처럼 감싸고 있는 피부다.
우리가 피부를 꿰매듯이 날개막의 찢어진 부분을 봉합하는 치료를 했다. 그러나 결국 치료 후 날개막의 면적이 정상 날개에 비해 좁아져 비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비행 능력을 잃은 박쥐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자연으로 되돌려보내지 못했다.
박쥐와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
한국에는 집박쥐, 안주애기박쥐, 붉은박쥐, 관박쥐 등 23종의 박쥐가 서식하고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박쥐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과거부터 ‘흡혈 동물’이라는 오해를 받은 데다 최근에는 ‘바이러스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추가되며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동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박쥐를 대신해 변명하자면, 대부분의 박쥐는 과일이나 곤충을 먹기에 흡혈과는 거리가 멀고, 바이러스는 접촉하지 않는 이상 사람에게 넘어올 일이 없다.
하지만 최근 박쥐가 도심에 출현하는 빈도는 점점 늘고 있다. 야행성이라 평소엔 눈에 띄지 않지만, 요즘처럼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계절이 오면 결국 사람과 맞닥뜨리게 된다. 박쥐가 도시로 오게 된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터전을 앗아가버린 탓이다. 동굴성 박쥐의 서식지였던 동굴은 안전을 위해 폐쇄되거나 관광을 위해 밝은 조명과 계단, 사다리가 설치됐다. 산림성 박쥐가 살던 산림은 도로나 도시가 돼 버렸다. 인간이 편히 살자고 벌인 개발과 훼손 때문에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살아갈 터전을 잃어가는 박쥐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소가 건물 외벽 구석이라면, 우리도 기꺼이 그들이 편히 쉬어갈 자리를 내줘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도심 어딘가에 자리잡은 박쥐가 부디 올겨울을 잘 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