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민초(민트초코) 좋아하세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의 취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친(親)민초단과 싫어하는 반(反)민초단이 서로 철저히 대립하는 첨예한 화두기도 하다. 그런데 반민초단을 위한 희소식이 나왔다. 민트가 사실은 식물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독극물이라는 연구결과다. 천적을 쫓기 위해 진화적으로 만든 결과물을 본의 아니게 인간이 디저트에 넣어 먹는 셈이다. 이렇게 식물의 생존 전략이 오히려 인간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된 사례를 꼽아봤다.
1. 민트 │ 천적을 쫓아내는 천연 살충제
민트초코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쓴맛이 강한 카카오를 좀 더 부드럽게 즐기기 위해 박하를 섞어 먹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됐다. 우리가 아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은 1948년 처음 만들어졌다.
민트초코는 먹으면 입안에 청량감 있는 향이 돌며 ‘화한’ 느낌이 들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는 민트(박하)의 멘톨 성분 때문인데, 이런 청량감으로 샴푸나 파스, 치약에도 포함돼 있다. 비슷한 물질로는 유칼립투스에 들어있는 유칼립톨이 있다(코알라도 민초단인 것인가).
멘톨은 상피와 장기 표면 등의 열 수용체인 TRPM8에 결합해 뇌로 전기신호를 전달한다. TRPM8은 원래 8~26℃의 낮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데, 온도와 관계없이 멘톨이 TRPM8에 결합해 활성화되면, 우리는 온도가 26℃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도 시원하다고 느끼게 된다.
원래 민트는 개미나 나방, 진딧물 등 천적을 쫓아내기 위해 식물이 만들어낸 물질이다. 곤충은 보통 화학물질에 의한 후각 자극을 인식해 방향을 찾고 움직인다. 멘톨 성분이 포함된 에센셜 오일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작용을 방해해 후각을 포함한 신경전달과정을 교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doi: 10.3390/molecules23010034 태어난 장소에서 한평생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식물이 곤충에 의한 공격을 피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사람도 이 같은 특성을 활용한다. 정원에 페퍼민트를 심어 모기 등 해충을 쫓는 게 대표적이다.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2. 캡사이신 │ 천적에게A는 매운맛, 새에게는 꿀맛
불닭볶음면, 엽기 떡볶이, 청양마요 치킨…. 매운맛을 이렇게 다양하게 즐기는 민족이 또 있을까. 매운맛이 일품인 고추는 김치와 비빔밥 등 우리 전통 음식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 중 하나다.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닌 통증(통각)이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미각 수용체가 아닌 열 감지 수용체(VR1)에 결합한다. VR1은 원래 43℃ 이상의 온도에서 활성화되는데, 고추의 캡사이신이 여기 결합해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따끔거리고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한다. 앞서 언급한 민트의 화한 느낌과는 정반대의 효과다.
흥미롭게도 새는 매운맛을 느끼지 못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연구팀이 2002년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닭(조류)의 열감지 수용체(VR1)는 캡사이신이 결합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수용체의 구조 차이가 꼽혔다. 유전자 분석 결과 조류의 VR1은 포유류와 8개의 아미노산이 달랐다. doi: 10.1016/S0092-8674(02)00637-2
이런 특성은 고추나무 등 캡사이신을 보유한 식물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는 데 유리하다. 캡사이신 때문에 쥐 등 포유류는 고추를 먹기 꺼리지만,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새는 다른 열매와 구별없이 고추 씨앗을 먹고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식물이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번식하는 데 캡사이신이 핵심 역할을 했다.
3. 카페인 │적을 헤롱헤롱하게 만드는 강력한 독성
커피나무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의 성장을 방해하는 독성화합물인 카페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새싹에는 에스프레소 열 잔 분량의 카페인이 담겨있다. 식물 입장에서는 처절한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커피로 내려 전 세계에서 즐기고 있다. 한 때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만 자라던 커피는 이제 아시아와 남미 등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품종으로 개발돼 널리 재배되고 있다.
카페인은 커피 외에도 초콜릿이나 차 등에도 포함돼 있다. 카페인은 우리 몸에서 억제성 신호를 전달하는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해 억제 기능을 떨어뜨린다. 또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해 각성 효과를 일으킨다. 덕분에 바쁜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카페인의 무시무시한 독성은 1995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거미가 집 짓는 패턴을 관찰해 카페인의 독성을 실험했다. 그 결과 거미줄의 중심부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집을 지어가는 정상 거미에 비해, 카페인을 섭취한 거미가 지은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거미줄의 완성도는 만들어진 면의 개수로 파악하는데, 카페인을 섭취한 거미는 마약인 마리화나(대마초)나 각성제인 암페타민을 섭취한 거미보다도 면의 개수가 적었다.
김경수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성인 기준 하루 평균 카페인 섭취 권장량은 400mg로 아메리카노 2~3잔에 해당한다”며 “과다 섭취 시 수면장애와 불안감, 심하면 위염이나 위궤양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4. 양귀비 │ 신경안정제로 천적을 잠재우다
양귀비 봉오리에 상처를 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데 이를 건조시켜 굳히면 아편이 된다. 마취, 진정, 최면의 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매우 강한 물질이다. 이런 강력한 방어전략 덕분에 실제 양귀비는 해충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일찍이 아편의 효과를 알고 활용했다. 기원전 3세기 초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서에서 양귀비를 언급한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고, 로마인들은 양귀비를 수면과 죽음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아편에 들어있는 알칼로이드 성분 중 하나인 모르핀은 중추신경계의 뮤(µ)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작용하는 신경억제제다. 모르핀은 마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강력한 진통제로도 사용된다. 암 수술과 같이 큰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마지막 수단으로 모르핀을 투여하기도 한다.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은 양귀비 2만 3000여 종을 분석해 양귀비 식물에서 모르핀 성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물화학’에 2010년 발표했다. 연구팀은 테바인 6-O-디메틸레이스(T6ODM)가 양귀비 열매 속의 알칼로이드 성분인 테바인을 코데인으로 바꾸고, 여기에 다시 CODM 효소가 작용해 코데인에서 모르핀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oi: 10.1038/nchembio.317
5. 담배 │ 꿀벌을 유혹해 서서히 중독시킨다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식물이 해충을 죽이기 위해 만든 물질이다. 담배 외에 토마토와 감자, 가지와 피망 등에도 소량 들어있다. 니코틴은 마비를 통해 살충 효과를 낸다. 애벌레가 담뱃잎을 갉아 먹으면 몸속에 니코틴이 흡수돼 몸이 마비된다. 사람이 담배를 피울 때에도 이와 유사하게 니코틴이 흡수되면서 신경계가 이완되고 몽롱한 느낌이 든다.
담배는 니코틴의 중독성을 이용해 벌이 더 열심히 꽃가루를 옮길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2015년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은 니코틴 유사 성분인 네오니코티노이드를 꽃에 뿌렸더니 수분매개율이 40%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oi: 10.1038/nature14414 마치 사람이 담배에 중독되듯 벌도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에 중독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담배에는 꿀로 벌을 유인하는 향기 물질인 벤질아세톤도 들어있다. 꿀벌은 처음에는 향기에 홀리고, 이후에는 니코틴에 노출돼 점점 익숙해진다. 여러 단계로 꿀벌을 유도하는 무시무시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꿀은 달콤하고 담배는 감미로웠지만, 중독의 대가는 크다. 제럴다인 라이트 영국 뉴캐슬대 신경과학연구소 교수는 “벌이 한 번 네오니코티노이드가 들어있는 꿀을 벌집으로 가져오면 이는 전체 개체군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