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와 함께 다친 야생동물의 구조와 치료, 방생과정에 관한 기사를 시작합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2010년 개소한 기관으로 야생동물을 구조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되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소개하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겨울마다 어김없이 한반도를 찾는다. 대부분 몽골에서 날아와 경기도 파주, 강원도 철원, 충남 서산, 전남 해남, 경남 고성 등 전국 곳곳에 머문다. 겨울이면 도래지 주변의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에도 다양한 사연으로 상처 입은 독수리가 구조돼 들어온다.
구조된 독수리의 목표는 단 하나, 봄이 오기 전에 회복해 다시 몽골로 날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독수리가 목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구조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독수리도 있고, 비행 연습이 부족해 다음 해를 기약하는 독수리도 있다. 평생을 구조센터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하늘을 잃은 독수리 ‘광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7년째 머무는 독수리 한 마리가 있다. 2013년 1월 30일, 이 독수리는 오른쪽 날개가 전깃줄에 걸린 위태로운 모습으로 구조됐다. 독수리는 몸길이가 약 98~120cm, 체중은 7~10kg에 달하는 대형 조류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조류는 비행 중 재빠르게 방향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멀리서 확인하기 어려운 가는 전깃줄에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독수리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검사를 했다. 방사선 사진 촬영이 기본이다. 야생동물은 온몸이 털로 덮여있고 신체의 손상을 감추려는 본능이 있어 겉으로는 어떤 신체적 문제가 있는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방사선 사진을 통해 내부 장기, 골격, 근육에 어떤 손상이 생겼는지 알아낼 수 있다.
검사를 진행해보니 요골과 척골이 부러진 상태였다. 사람으로 치면 손목부터 팔꿈치까지에 해당하는 부위다. 조류는 비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체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뼈의 밀도가 포유류에 비해 훨씬 낮다. 덕분에 체중은 줄였지만 작은 충돌에도 뼈가 쉽게 손상을 입는다. 자연에서 생활할 때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충돌할 것이 너무 많은 현대 사회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골절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개방성 골절이라는 점이었다. 개방성 골절은 뼈가 부러지면서 그 절단면이 근육을 찢고 나와 외부로 노출된 상태를 말한다. 근육이나 인대에 추가적인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 상처 부위를 통해 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손상이 심하다고 무조건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러진 뼈는 위치를 원래대로 바로 잡은 뒤 핀을 삽입해 이어놓고 고정해두면 자연스레 붙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독수리에겐 뼈를 붙이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날개를 구성하는 신경이 이미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신경 손상은 곧 감각과 운동성 소실을 의미한다. 자신의 의지로 날개를 펼 수도 접을 수도 없거니와 날개에 닿는 촉감을 느낄 수 없어진 것이다.
우리는 고민 끝에 날개를 제거하는 것이 적절한 치료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눌 수 없는 날개를 그대로 두면 또 다른 상처나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날개 제거 수술을 하기 전 마취부터 했다. 기계로 마취 약물인 이소플루레인을 기화시켜 독수리가 호흡을 통해 흡입하도록했다. 독수리는 삽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잠들었다기보다는 중추신경계의 활성을 억제했다는 표현이 맞다. 마취는 잘못하면 호흡이나 심장박동이 멎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과정이라 수술 중에도 독수리의 호흡수를 계속 확인했다.
마취가 성공한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날개를 제거했다. 날개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어깨 부위에서 근육을 절개했다. 이때 혈관과 신경을 피해 근육을 잘라내야 한다. 어깨 관절에서 상완골을 분리하며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날개가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수리는 한동안은 날아오르려고 부단히 애썼다. 수많은 시도가 모두 땅에 고꾸라지며 끝난 뒤에야 점차 자신의 신체에 적응해나갔다. 하지만 야생으로 돌려보낼 순 없었기에 구조센터에 머물게 됐다. 광주광역시에서 구조돼 ‘광주’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구조센터에 오는 동물들이 전부 치료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할 수 없어 생명을 잃는 동물도 부지기수다. 광주처럼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우 구조센터 직원들은 고민이 깊어진다. 대부분은 안락사를 하지만 구조센터에 계속 머물더라도 잘 적응할 거라고 판단되거나 구조와 치료 과정을 알려주는 교육적 가치가 큰 동물은 ‘교육동물’로 살아간다.
광주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가끔 산책을 나선다. 언덕에 올라 한쪽뿐인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면 광주가 하늘과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우린 광주의 존재가 인공구조물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다고 믿는다. 광주를 보며 많은 이들이 조류가 전깃줄이나 방음벽, 유리창 같은 인공구조물에 충돌하는 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부디 고민해주길, 광주와 같은 동물이 더이상 생겨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먹이의 죽음이 독수리를 위협하다
독수리를 위협하는 요인이 충돌사고뿐만은 아니다. 먹이 역시 생사를 결정한다.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만 먹기 때문에 먹이가 죽은 이유가 곧 독수리의 폐사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납탄에 맞아 쓰러진 동물을 먹은 독수리는 납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농약을 먹고 죽은 동물을 먹으면 독수리 역시 농약 중독에 걸릴 수 있다.
2018년 충남의 한 농경지에서 수백 마리의 가창오리가 농약 중독으로 폐사하자 사체를 먹은 독수리 약 30마리가 쓰러진 채 발견된 적이 있다. 이처럼 농약 중독은 독수리 무리에게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피해를 입힌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된 151마리의 독수리 중 81마리가 농약 중독 때문이었다. 2020년 겨울에도 약 30마리가 농약 중독으로 쓰러졌다 구조됐다.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는 과도하게 침을 흘리고, 맥박이 느려지며, 설사, 구토, 운동성 저하, 마비 등의 증상을 보인다. 다행히 빨리 발견돼 치료를 받으면 회복 가능성은 큰 편이다.
먼저 소낭(조류의 먹이 주머니)에서 먹이를 일일이 게워낸다. 사람으로 치면 위세척과 같은 과정이다. 농약이 소화되기 전에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독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부교감 신경을 마비시키는 아트로핀을 주사한다. 또한 설사 증상을 보이는 독수리는 수액을 투여해준다. 처치 후 2~3일이 지나면 대부분은 회복된다.
비행 능력을 비롯해 신체 활용능력을 평가받은 뒤 이상이 없다면 인식표를 부착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독수리에게는 주로 날개 인식표(윙 태그)를 부착한다. 구조센터에서는 완치돼 야생으로 돌아가는 동물에게 인식표와 추적장치를 부착한다. 생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고 방생 이후의 생존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가끔은 같은 인식표를 두 번 마주하게 된다. 2019년에는 ‘DJ’라고 적힌 몽골 연구진들의 인식표를 부착한 독수리가 농약 중독 사고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들어왔다. 다행히 치료가 잘 끝나 몽골로 되돌아갔지만 1년 후 다시 구조센터로 돌아왔다. 농약 중독으로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안타까운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한 후 ‘53’이 적힌 인식표를 부착해 야생으로 돌려보냈던 독수리는 2016년 우리나라에서 다시 관찰됐다. 다행히 야생에서 무리와 함께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올해 치료에 성공한 독수리들이 내년, 내후년, 어쩌면 그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발견될 땐 부디 이처럼 야생에서 잘 지내는 모습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