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낮과 밤, 그것이 우주를 헤엄치는 천체들의 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걸 아시나요? 지구의 자전이 낮과 밤의 차이를 만들고, 지구의 공전은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과학자들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나아가 지구의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하게 됐습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법칙으로 말이죠. 중력법칙은 태양 역시 우리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중력법칙으로 가까운 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은하를 중심으로 도는 별들의 무리는 잘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언가 모이지 않는 힘이 별들을 더 강한 중력으로 묶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은하에 눈에 보이지 않는, 즉 빛나지 않는 물질이 있어 별들을 끌어당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물질을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릅니다.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며 암흑물질의 존재를 입증하고, 우리 우주가 담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암흑물질이 ‘구역벽(domain wall)’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광자력계(optical magnetometer)’라는 도구를 이용해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력의 세기를 측정할 수 있는 나침반
광자력계는 자기장의 힘을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나침반이 자기장의 영향을 받으면 나침반 침이 자기장의 N극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광자력계의 침은 자기장의 방향뿐만 아니라 그 세기가 얼마인지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광자력계는 빛과 매질의 상호작용이 자기장 속에서 조금씩 변화한다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졌습니다. 빛이 매질을 통과하기 전과 후의 상태를 비교함으로써 매질에 얼마나 강한 자기장이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로 기체 상태의 원자들이 매질로 사용되며, 이 원자들의 ‘스핀(spin)’이라고 불리는 물리적 성질이 광자력계의 나침반 침 역할을 합니다. 원자의 스핀은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빙글빙글 도는 세차운동(원자가 제자리에서 자기장 방향으로 도는 운동)을 하는데, 자기장이 강할수록 점점 더 빨라집니다.
세차운동을 하는 원자의 스핀에 빛을 쏴주면 세차운동에 따라 빛의 편광 상태가 조금씩 바뀝니다. 빛의 편광 상태가 바뀌는 정도를 통해 원자의 스핀이 얼마나 빠르게 세차운동을 하는지 알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기장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현재 빛과 매질의 상태를 정밀하게 조정하면서 지구가 만드는 자기장의 10억 분의 1 수준으로 약한 자기장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인류가 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 중 가장 정밀한 수준입니다.
이렇게 정밀한 도구와 암흑물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암흑물질의 후보로 거론되는 입자인 ‘액시온(Axion)’도 원자의 스핀에 미약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이 제기됐습니다. 빛의 편광을 이용해 약한 자기장이 원자의 스핀에 주는 영향을 측정할 수 있으니, 광자력계를 활용하면 원자들의 스핀을 통해 암흑물질의 존재를 규명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암흑물질 탐색을 위한 광자력계 그물
이 논문을 쓴 연구팀은 광자력계를 활용해 암흑물질을 탐색하고자 했습니다. 단 광자력계 감지기는 정밀한 신호를 잡아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주변 환경에 예민했습니다. 광자력계의 신호가 암흑물질에서 오는지, 주변 자기장의 미세변화에서 오는지 구분해야 했습니다.
연구팀은 광자력계에 전자기 차폐를 활용해 주변 자기장의 변화에 최대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원자의 스핀 운동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암흑물질 신호로 해석할 수 있게끔 말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광자력계 신호는 자기장이 아닌 요인에도 예민했습니다. 진동으로 광학 부품이 떨리거나, 국소적인 난기류로 빛의 경로가 바뀌거나, 혹은 감지하는 데 필요한 신호 처리 장비에서 발생하는 잡음이 마치 암흑물질이 있는 것처럼 신호를 왜곡시킬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광자력계 그물(네트워크)을 제안했습니다. 암흑물질이 우리은하에 넓게 분포해 중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 암흑물질은 단순한 도시 규모가 아니라 더 큰 규모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이 지구에 있는 원자들의 스핀에 주는 영향은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의 광자력계에서 암흑물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호가 나타나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 광자력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신호가 나타난다면 더 이상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연구팀은 그 신호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실제로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우연으로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방법은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력파 관측의 분석 방법과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간섭계에서 유사한 중력파 신호가 나타났을 때, 그 순간의 주변 환경이 우발적으로 중력파 신호의 모양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면, 그 신호는 중력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광자력계 그물로 알아보려는 대상은 구역벽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마치 비눗방울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눗물에 공기가 들어가 점차 팽창하면서 비누막이 공기를 둘러싸면, 공기가 들어있는 구역(domain)에 비누 벽(wall)이 쳐진 모양이 됩니다. 우연히 모기나 파리 같은 작은 생명체가 커다란 비눗방울에 갇혀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모기는 벽을 만나기 전까지 자기가 어떤 구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겠죠.
이처럼 액시온이 존재한다면 우주는 특이한 진공 구역을 만들 수 있습니다. 팽창하는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이 진공 구역들이 나뉘고, 구역을 둘러싸는 벽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를 ‘액시온 구역벽’이라고 부르며, 암흑물질의 후보가 됩니다. 우리도 모기나 파리처럼 구역 안에서 벽을 만나기 전까지 어떤 구역 안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셈이죠.
다행히 우주의 별과 지구 사이의 중력은 우리가 우주의 한 점에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은하 주변을 돌며 우주를 유영하게 해줍니다. 그러다 보면 구역의 경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역벽과의 만남이 광자력계 그물의 능력을 검증해줄 것입니다. 광자력계 그물로 구역벽의 모양과 밀도 등을 측정해 상관관계를 알아내면 암흑물질의 단서를 잡을 수 있습니다.
광자력계 그물로 암흑물질 대어 낚는다
광자력계 그물은 그물을 구성하는 광자력계 감지기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측정 기회도 많아집니다. 광자력계 그물이 좀 더 촘촘해져 암흑물질의 단서를 얻기 더 쉬워지는 셈입니다.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물리 연구를 위한 광자력계 국제 네트워크(GNOME)는 현재까지 전 세계 여섯 개 국가의 13개 도시에 설치된 광자력계를 동기화했습니다. 그중 대전 KAIST에 있는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광자력계 동기화에 참여해 암흑물질 탐색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바닷속에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지만 우리는 아직 바다의 비밀을 다 밝히지 못한 것처럼, 암흑물질 연구도 전 세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만든 그물 중 가장 큰 광자력계 그물을 펼쳐두고, 언젠가 여기에 낚일 암흑물질의 비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액시온 구역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우주의 미스터리인 암흑물질의 검출에 성공하면, 인류는 드넓고 광활한 우주의 원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 김동옥 연구원의 논문읽기 노하우
한 달 동안 읽는 논문 수는?
실제로 읽는 논문은 한 달에 서너 편 내외입니다. 논문의 내용이 맞는지 검증하는 데 오래 걸려서 많이 읽기는 힘듭니다. 대신에 꼭 다 읽지 않아도 매주 대여섯 편 정도는 새로운 논문을 찾아봅니다.
논문 한 편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은 논문은 하루에 다 읽기도 하지만, 길거나 어려운 논문은 한 주 내내 읽어도 다 이해하지 못 합니다. 논문을 읽는 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논문을 소화하려면 읽고 나서 주변 연구원들과 논의하거나 관련된 논문을 더 읽어보면서 숙성시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 달, 혹은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김동옥 연구원만의 논문 읽기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논문을 처음 읽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논문을 읽어 가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두 가지 비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논문의 저자와 소속을 같이 읽는 방법입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저자 이름만 봐도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전체적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는 논문을 문단 별로 나누는 방법입니다. 잘 쓰여진 논문은 대체로 문단 별로 주장하고자 하는 중심 문장이 있습니다. 큰 흐름을 따라가면 논문을 읽는 게 점점 수월해질 것입니다.
논문 읽기에 필요한 영어 실력은?
‘과학을 한다’는 활동은 영어를 비롯해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우수한 한국인 과학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영어를 꼭 같이 공부해야만 합니다. 영어 논문을 읽고 쓰거나, 영어로 대화하는 과학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를 잘 하면 잘 할수록 과학의 기회가 더 넓어집니다.
연구원을 꿈꾸는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준다면?
연구를 하는 것과 연구를 ‘잘’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분들께서 연구원이나 혹은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잘’ 하는 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독자분들께서 꿈을 꿀 때(꼭 연구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쉽고 어려운지에 따라 꿈을 결정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독자분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활동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어떤 일을 해도 잘 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과학동아의 논문탐독을 읽는 것도 연구를 잘 하게 만들어 주는 활동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