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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현재 사용되는 냉장고가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열등한' 냉장고가 '최고' 로 포장됐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고 사용하는 과학기술은, 같은 목적으로 개발된 수많은 경쟁 상대들을 물리치고 선택된 한두가지에 불과하다. 역사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거나 사라진 과학기술을 사례별로 살펴봄으로써, 현대 과학기술이 변화하는 메커니즘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자.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때면 "소리 안나는 냉장고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소리 안나는 냉장고는 이미 몇십년 전 개발됐다. 더욱이 그 냉장고는 사용료도 저렴하고 부품구조도 간단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불행하게도 소음이 적은 '가스흡수식' 냉장고는 소리가 많이 나는 '전기압축식' 냉장고와의 경쟁에서 탈락했다. 편리성이 무시되고, 생산자의 의도와 생산구조 때문에 '불편한' 기술이 상점을 가득 메운 것이다.


냉장고는 왜 윙윙거릴까


냉장고가 북극으로 간 까닭은?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는 1917년 미국의 켈비네이터사가 개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격이 너무 비싸 일반인들에게 공급되지 못했다. 5백달러 짜리 냉장고는 연간 2천달러 이하를 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굉장한 부담이 됐던 것이다.

이후 선보인 첫 대중용 냉장고는 1925년 출하된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사의 '모니터 탑'(Monitor Top)이었다. 작동부품이 냉장고의 꼭대기에 위치한 원형상자에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것.

GE는 냉장고 판매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상천외한 판촉활동을 벌였다. 1928년에는 모니터 탑이 '믿거나 말거나' 의 저자 리플리가 탑승한 잠수함으로 북극에 보내졌고, 1백만번째 모니터 탑은 1931년 특별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근대화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포드에게 기증됐다. 1935년에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능가하는 완전한 전기 부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라는 필름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최초로 제작된 상업용 천연색 필름이었으며, 배역으로 할리우드 주연급 스타들이 등장했다.

냉장고 사업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매우 각광을 받는 업종이었다. 19세기 미국 사회는 도시가 팽창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해져 식품의 보존량과 보존기간이 증가돼야 했으며, 그 결과 기계식 냉장이 필요해졌다.

19세기 중엽 인공 얼음을 만드는 기계가 발명됐고, 19세기 말에는 냉장고의 기계장치에 대한 기초 설계가 완성됐다. 1890년 경 미국의 거의 모든 양조장은 맥주의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고 완제품을 보존하기 위해 냉장기계를 구입했으며, 1900년 경에는 육류 포장업자들이 육류를 가공·처리 · 운반하는데 기계적 냉장법을 이용했다.

GE는 거대한 발전소 설계로부터 전등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기 산업의 모든 분야에 관여했으며, 1910년대에 냉장고 사업을 모색하고 있었다. GE는 1911년 미국에서 냉장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던 한 회사를 대신해 상업용 냉장고를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1917년부터 가정용으로 적합하도록 설계를 수정해 시험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GE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사업으로 냉장고 분야에 박차를 가했다. 1922년 새로 사장으로 부임한 스워프는 냉장고 사업을 GE가 재기할 수 있는 관건으로 생각했다.

GE 공학연구소가 처음 당면했던 기술적 문제는 공냉식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상업용 기계들은 대체로 수냉식이었지만, 가정에서는 수냉식이 매우 불편했다. 자주 물이 새나가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졌으며, 겨울에는 몇몇 지역에서 수관이 얼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조용히' 사라지다

수냉식 대신 공냉식을 선택한 이유에는 전력 요금에 대한 계산도 포함돼 있었다. 공냉식 기계를 사용할 경우, 6개월에 1.3달러 정도의 전력요금을 절약할 것으로 예상돼 회사에 적잖은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GE 냉장고의 보다 큰 특징은 그것이 '전기압축식'이라는 점이다. 전기압축식이란 특수 전기펌프로 냉매를 압축함으로써 냉매의 기화와 응고를 조절하는 것. 발전(發電) 기술의 선두주자였던 GE가 전기압축식을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공학연구소 소장 스티븐슨은 "초기 단계만 지나면 수입이 크게 증가할 것이고 결국 중앙발전소의 수입을 증가시켜 GE에 도움을 줄 것" 으로 전망했다.

GE는 충분한 자본을 바탕으로 전기냉장고 개발에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했고, 적극적이고 기발한 광고·판촉 활동을 벌여 곧 냉장고 시장을 석권했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 같은 대기업들도 GE의 뒤를 따랐다.

이 과정을 통해 전기압축식은 냉장고 기술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부상했고,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기압축식 냉장고가 성공한 이면에는 '가스흡수식' 냉장고의 실패가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냉장고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20세기 초만 해도 냉장고 전문가들은 전기압축식보다 가스흡수식이 우세하리라 점쳤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25년까지 전기 서비스보다 가스 서비스가 널리 퍼져 있었고 사용료도 저렴했다. 둘째 기술적인 면에서도 가스흡수식이 전기압축식보다 유리했다. 전기냉장고는 압축기라는 별도의 전기펌프가 필요한 반면, 가스냉장고는 냉매가 가스 불꽃으로 가열되고 물에 흡수되면서 농축되는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가졌다. 셋째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도 가스압축식은 많은 장점을 가졌다. 압축기로 인해 전기냉장고는 윙윙 소리가 심하게 났던 반면 가스냉장고는 매우 조용했고, 작동 부품이 거의 없어 작동 비용이 저렴했으며, 유지와 정비도 쉬웠다.

그렇다면 가스냉장고는 왜 실패했을까. 가사(家事) 기술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탐구했던 코반에 따르면, 경제적·조직적 이유 때문에 가스냉장고가 적절한 개발의 시기를 놓친 것.

전기냉장고 제조업체들은 전기산업의 성장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냉장고의 개발과 판매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했다. 또한 대기업들 간 생산적인 경쟁과 전기설비회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속적인 혁신과 시장 팽창이 쉬워졌다.

물건보다 가격이 우선


전기압축식 냉장고 작동원리^냉장고 내 열을 흡수해 냉동기 부위에서 기체로 변한 냉매가  압축기를 거친 후  다시 액체로 변한다. 가스흡수식은 압축기가 필요없는 간단한 구조였다.


반면 가스냉장고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었다. 이들은 막대한 개발비를 제때 공급하지 못했고, 도중에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아 건전한 경쟁이 유발되지 않았다. 게다가 가스설비회사들은 보수적이어서 전기 서비스의 도전에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가스냉장고가 혼자의 힘으로 가사 활동의 패턴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겠지만 만약 그것이 유사한 과정을 거치며 폐기된 다른 기술들과 결합됐다면 가정의 지출과 도시 서비스의 패턴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가스냉장고가 실패했던 것은 기술적으로 열등하기 때문도 아니었고 소비자들이 전기냉장고를 선호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대기업들이 많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반면,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새로운 가사 제품에 대한 질문은, '그것이 가정에 유익한가' 혹은 '가정주부는 그것을 구입할 용의가 있는가' 등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제작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인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선택은 그들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상품들 중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제조업자들이 적절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 중에서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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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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