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LE
“한국 수학자, 58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학 난제 ‘소파 문제’ 해결.”
2024년 12월 16일, 이런 헤드라인이 세계 수학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백진언 연세대 수학과 연구원이 수직으로 꺾인 복도를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소파의 면적을 구하는 ‘소파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거든요. 간단해 보이는 문제가 뭐 그렇게 어렵길래 58년이나 걸렸을까요? 정신 꽉 잡고 따라오세요! 수학과 출신 기자가 낭만 넘치는 소파 문제, 쉽게 말아드립니다.
소파 문제가 뭘까?
“단위 너비의 직각 형태의 복도를 지날 수 있는 가장 큰 면적의 소파는 어떤 모양일까?”
90도로 꺾인 복도로 소파를 이동시키려 한다. 이동 가능한 가장 큰 소파의 넓이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레오 모서가 처음 제시한 소파 문제다.
문제만 읽고 바로 이해 되셨나요? 이해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김미래 기자가 이사를 위해 소파를 새집으로 운반합니다. 그런데 새집에는 가로세로 길이가 1인, 수직으로 꺾인 복도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복도를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소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것을 수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소파 문제’입니다(소파를 들고 수직으로 세워서 옮길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에서는 2차원으로만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복도를 움직일 수 있는 소파의 모양새를 상상해 봅시다. 먼저 미래 기자는 너비를 가득 채우는 지름이 1인 원 모양의 소파를 쉽게 복도 반대쪽으로 빼냅니다. 그럼 이 복도를 통과하는 소파의 최대 면적은 적어도 지름이 1인 원(π/4)보다는 클겁니다. 수학에서는 이를 하한이라 부르는데요, 하한은 이 값보다는 더 크거나 같은 값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기준을 뜻합니다. 하한은 계속해서 수정될 수 있습니다. 복도를 통과할 수 있는 더 큰 값을 찾으면 그 값이 하한이 될테니 말이죠. 반대로 미래 기자가 얼마전 구입한 가로 1, 세로 5의 거대한 소파는 구석에 꽉 끼어 복도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복도를 통과할 수 있는 소파의 넓이는 적어도 5보단 작겠네요. 이렇게 구하려는 값의 가장 큰 한계를 상한이라 부릅니다.
1966년 오스트리아-캐나다 수학자 레오 모서가 문제를 처음 제시한 후 여러 수학자의 도전이 있었지만, 58년이 지난 2024년까지도 이 문제의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수학자들은 소파 면적의 상한은 낮추고, 하한은 높여가며 정답에 가까운 값을 찾아왔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처럼 정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만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수학 문제가 더 많거든요.
그래도 꽤 괜찮은 접근이 몇 개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68년 영국의 수학자 존 해머슬리가 처음 고안한 ‘해머슬리 소파’입니다. 해머슬리 소파는 양쪽에 반지름 1인 원의 사분원 2개와 가운데에는 반지름이 r인 반원만큼 구멍이 난 세로 1, 가로 2r의 직사각형이 연결된 모양입니다. 그려보면 옛날 전화기 모양이죠. 직각 형태의 모서리를 지나기 위해서 가운데 부분이 동그랗게 뚫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 모양의 넓이를 계산해 보면 양쪽 사분원 2개가 π/2, 가운데 구멍 난 직사각형이 2r - r2π/2로, 정리하면 2r + π(1 - r2)입니다. 해머슬리는 이 함수를 이용해 소파 넓이의 하한값을 2.2074로 구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중학교 수준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단계입니다.
면적을 더 키울 순 없을까요? 해머슬리 소파가 가장 최선일까요? 1992년 조셉 거버 미국 러트거스대 수학과 명예교수가 해머슬리 소파의 모양에서, 가운데 뚫린 반원의 모서리를 매끄럽게 만든 소파를 제안합니다. 모양만 보면 해머슬리 소파에서 일부분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여 거버 소파가 해머슬리 소파보다 넓이가 작아 보이지만, 거버 교수는 소파의 모든 경계가 복도 벽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곡선을 정밀하게 설계했습니다. 모양만 비슷할 뿐 소파 전체 모양을 최적화해 해머슬리 소파보다 넓이가 크죠. 거버 교수는 이 소파 모양으로 계산한 결과 하한이 2.2195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해머슬리 소파보다 약 0.0121이나 커진 면적이었죠! 아쉽게도 거버 교수 역시 자신의 소파가 가장 큰 최적의 형태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약 58년간 정답에 도달할 듯 도달하지 못하며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해머슬리 소파
해머슬리 소파는 사분원 2개와 반원 모양이 뚫린 직사각형으로 이뤄진 옛날 전화기 모양이다. 넓이 하한이 2.2074이다.
거버 소파
거버 소파는 소파의 모든 경계가 복도 벽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곡선을 정밀하게 설계한 모양이다. 넓이 하한이 2.2195이다.
백진언 연구원은 어떻게 문제를 풀었을까?
그러던 2024년 11월 29일, 수학자들을 흥분시킨 내용이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됐습니다. doi: 10.48550/arXiv.2411.19826 많은 수학자가 58년간 도전했지만 풀지 못했던 소파 문제에 대한 완전 증명이 등장한 거죠. 이 연구는 많은 수학자들에 의해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문제를 푼 수학자가 20대의 한국 수학자, 백진언 연세대 수학과 연구원이라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수학동아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인 백진언 연구원이죠! 기자도 백 연구원과는 과거 여러 번 취재했던 인연이 있던 차라 너무나 반가운 마음으로 논문을 펼쳤습니다. ‘그럼 백 소파가 등장하는 걸까’ 하는 기대를 안고 말이죠.
백 연구원의 이번 논문은 정확하게 말하면 거버 소파가 진짜로 가장 큰 소파임을 수학적 증명을 통해 밝혀낸 것입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간단한데요. 복도에서 소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소파를 가운데 두고 복도를 돌리며 복도가 지나가지 않는 공간의 교집합을 찾는 식입니다. 큰 찰흙 덩어리를 두고 복도를 지나가게 해 깎여 나가는 부분을 제외하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수학이라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는 쉽지만요, 그 증명은 아주 사악합니다. 논문이 109페이지에 달할 정도니 말이죠. 지금부터 그 증명을 따라가 보죠.
Still Watching Netflix/유튜브 캡쳐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한 장면. 소파를 90도로 꺾인 공간에서 옮기고 있어 소파 문제와 같은 상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3차원 소파 문제는 더욱 어렵다.
소파 문제 증명, 하나씩 따라와!
스텝 ❶ 소파의 움직임을 단순화해라!
첫 번째 단계는 소파의 움직임을 단순화하기였습니다. 소파가 어떻게 회전하느냐에 따라 소파가 복도와 닿는 외곽선의 조건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시로 손가락에 꽉 낀 반지를 빼낼 때를 생각해봅시다. 일직선으로 쭉 빼낼 때 손가락과 반지의 접촉면을 계산하는 건 단순하지만, 이리저리 돌려가며 빼낼 때 손가락과 반지의 접촉면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해집니다. 소파의 동선 역시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동할수록 따져야 할 것이 늘어나고 계산도 복잡하죠.
이런 이유로 백 연구원은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회전하는 소파, ‘모노톤 소파’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 개념은 거버 교수가 최적값을 구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었습니다. 모노톤 소파를 이용하면 소파의 움직임을 각도 t에 따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상상해 봅시다(86p 위 그림 참조). 소파는 그대로 두고 복도를 회전할 건데요. 이때 복도의 모서리, 90도 꺾이는 부분의 점을 기억해 봅시다. 복도가 각도 t로 회전할 때 그 점의 궤도를 x(t)라는 함수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럼, 소파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죠. 이를 기반으로 소파의 면적을 나타내는 함수를 정의하고, 면적을 극대화하는 최적화 문제로 바꿀 수 있죠. 결과적으로, 복잡한 소파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단순화할 수 있는 겁니다.
백진언
위 그림은 소파를 그대로 두고 복도가 회전할 때, 여섯 각도로 회전한 복도 부분을 파낸 소파의 모양이다. 위쪽 파란 선 a와 아래쪽 파란 선 b1과 b2 의 합이 같아야 넓이는 최적이 된다. 차이가 있으면 소파의 넓이는 더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스텝 ❷ 최적의 소파는 균형 잡힌 소파?
두 번째로 백 연구원은 복도를 통과하는 가장 넓은 소파의 모습은 균형 잡힌 모습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위와 아래의 길이 합이 같으며, 양쪽 팔받침대의 길이가 같은 소파말이죠.
오른쪽 위 그림 속 소파의 위쪽 부분, a 길이가 소파의 아래쪽 부분 b1과 b2의 합보다 큰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a의 길이가 3이고 b1, b2의 합이 2인 거죠. 그리고 b1, b2를 길이 0.1만큼 안쪽으로 파내고요, a를 길이 0.1만큼 위쪽으로 늘려봅니다. 그럼 아래에서는 넓이 합이 0.2만큼 줄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는 넓이가 0.3만큼 늘었습니다. 그럼 총 0.1만큼 넓이가 늘어난 셈입니다. 이는 a의 길이가 b1, b2 길이의 합과 같지 않으면 넓이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넓이가 최대한 커진 소파가 아니니 최적화 소파가 아니죠.
설명을 들으며 ‘그렇게 막 위쪽으로 늘려도 복도를 지나갈 수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셨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최적의 소파는 복도를 완벽히 채우는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에 위쪽 파란 선 a와 아래쪽 파란 선 b1, b2의 위치를 살짝씩 조정하더라도 소파는 모든 각도의 복도에 포함되기 때문에 복도를 지날 수 있거든요.
백 연구원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소파가 복도를 통과하면서 좌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이 좌우 균형 조건은 수학적으로 소파 외곽선 함수의 기울기(미분값) 합이 0이 되는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는 소파의 좌우 변의 길이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정의했습니다.
스텝 ❸ 소파는 무조건 90도를 돌아야 한다!
다음은 소파의 회전 각도를 알아봅시다. 소파가 복도를 통과하려면 정확히 90도를 회전해야 한다는 사실은 거버 교수가 1992년에 이미 증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소파가 90도보다 더 많이 회전하면 소파의 면적이 더 작아진다는 것을 보여 90도가 최대임을 증명했습니다.
백 연구원은 이를 기반으로, 소파가 90도보다 더 적게 회전하는 경우도 최적해가 될 수 없음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파가 80도만 회전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소파의 좌우 균형 조건에 의해 소파가 추가로 10도를 회전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깁니다. 이는 곧 소파의 크기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소파가 정확히 90도를 회전해야만 복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며, 이때 소파의 면적이 최대로 유지됩니다. 결국, 소파의 회전각이 정확히 90도일 때만 최적의 넓이를 가지는 소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백진언
노란색 부분은 소파가 차지할 수 있는 전체 공간이고 빨간색 부분은 소파가 움직일 때 벽과 겹치면서 파이는 부분이다. 파란색 점선은 스텝 ❶번 설명에서 복도의 모서리, 90도 꺾이는 부분의 점 궤도로 x(t)함수다. 이는 소파의 움직임 궤적을 나타낸다.
중요한 점은, 이 파란색 점선이 스스로 엉키거나 교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면적을 계산할 때 오류가 없고, 정확한 값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수학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백 연구원은 파란색 곡선이 ‘겹치지 않도록’(일대일 함수) 만드는 방법을 증명했다.
스텝 ❹ 면적을 구하기 위한 조건 설정!
자, 이제 소파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모양과 어떻게 움직이면 되는지를 앞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소파의 넓이를 정확하게 계산하면 되는데요. 이때 ‘그린의 정리’를 사용하면 쉽습니다. 그린의 정리는 곡선 x로 둘러싸인 영역을 x와 x의 미분값을 활용한 적분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 경우 소파의 외곽선을 x로 두고 그린의 정리를 사용하면 쉽게 넓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린의 정리를 사용하려면 곡선 x가 자기 자신과 교차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차가 발생하면 면적이 잘못 계산되거나, 계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차로 인해 일부 영역이 반복적으로 계산되거나(과대 계산), 일부 영역이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 연구원은 소파의 외곽선 중에서도 가장 교차 가능성이 큰, 회전하는 복도의 안쪽 모서리(위 그림에서 파란 점선)를 다뤘습니다. 이 곡선이 일대일 함수를 만족한다는 조건을 증명해, 곡선이 자기 자신과 교차하지 않도록 했죠.
스텝 ❺ 면적을 구하긴 어렵다! 소파 면적의 상한을 설정하라!
앞서 여러 기준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파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대략 가운데가 파진 형태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죠. 정확한 모양을 모르는 상태에서 면적을 구하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그래서 백 연구원은 “소파의 면적이 절대로 이 이상일 수 없다”는 소파 면적의 상한 Q(S)를 먼저 구했습니다. Q(S)는 볼록한 이차 함수의 형태를 띠는데요. 이 이차 함수 그래프는 꼭대기가 하나만 있는 민둥산처럼 생겼기 때문에, 최댓값 또는 최솟값을 구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실제 소파의 최대 면적이 Q(S)값의 최대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는 다릅니다. ‘우리 반 친구들은 170cm보다는 작아’라는 말이 ‘반 친구 중 가장 큰 키의 친구가 170cm’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백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Q(S)의 최댓값과 실제 거버 소파의 하한이 일치함을 증명하기 위해, 거버 소파의 회전 각도, 외곽선을 기준으로 그린의 정리를 사용해 소파 면적 함수(아래 그림에서 파란 범위 속 검은색 선)를 구했습니다.
백진언
이 그림은 소파 면적의 최대값이 상한 Q(S)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검은 곡선은 실제 소파 면적, 파란 곡선은 소파 면적의 상한값이며, 거버 소파의 면적(G)이 Q(S)의 최댓값과 같음을 보여, 거버 소파 최대임을 증명할 수 있다.
스텝 ❻ 거버의 소파가 최적임을 증명하라!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앞서 Q(S)가 우리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소파 면적의 상한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Q(S)가 소파 면적의 실제 최댓값과 같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거버 소파 면적이 Q(S)값과 정확히 일치함을 보여야 하죠. 계산 결과 다행히 거버 소파 면적(G)과 Q(S)값의 최댓값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냐면요. 모든 소파 면적은 Q(S)보다 작거나 같고, 거버 소파 면적은 Q(S)에 정확히 도달하는 유일한 소파라는 겁니다. 즉, 어떤 임의의 소파 넓이보다 거버 소파 면적이 크거나 같다는 말이되므로, 가장 큰 소파의 넓이는 2.2195인 셈이죠! 증명 완료!
Baku Hashimoto
일본 아티스트 하시모토 바쿠는 ‘소파 문제’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시네마 4D와 파이썬을 사용해 작품을 계산하고 디자인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소파가 어떻게 움직이며 복도를 통과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소파 문제의 쓰임은 무엇일까?
장장 6단계를 거쳐 거버 소파가 최적의 해임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증명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2024년 12월 18일, 연세대에서 만난 백진언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파 문제는 모션 플래닝과 넓이 최적화 문제가 결합한 문제입니다.”
모션 플래닝은 수술용 로봇 팔이나 전기차처럼 딱딱한 물체가 특정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하는 분야로, 산업 현장에서 널리 연구되고 있습니다. 반면 넓이 최적화 문제는 15세기부터 다뤄진 순수 수학의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백 연구원은 이어 “각각의 분야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고 수많은 답이 나왔지만, 두 분야가 결합한 가장 단순한 문제인 소파 문제조차 현대 수학으로는 풀리지 않았다”며, 이 문제의 난이도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에 모션 플래닝과 넓이 최적화가 결합한 문제가 산업 현장에서 등장한다면, 제 논문의 방법이 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58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난제를 해결한 데 비해, 실용적인 쓰임새가 적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또 ‘왜 이런 걸 해야 해?’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죠. 그 질문에 가우스가 한 말,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며,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학문”이 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수학은 쓰임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수학은 ‘왜?’라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앎의 기쁨이 원동력입니다. 새로운 것을 정의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수학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이 과정 속에 등장한 발견들이 언젠가 과학과 기술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여해 왔습니다.
백 연구원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파 문제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흥미로운 변형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3차원 기역(ㄱ)자 복도에서 소파의 최적 모양을 찾는 문제도 있고,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모두 꺾을 수 있는 소파의 최대 넓이를 찾는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앞으로의 도전 과제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Shutterstock
백진언 연세대 수학과 연구원이 해결한 소파 문제는 로봇 팔이나 전기차처럼 딱딱한 물체가 특정 조건 아래서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하는 모션 플래닝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낭만 수학, 너도 도전해볼래?
백진언 연구원의 연구는 해외의 많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8일 연세대 과학관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연세대 수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수학에 관심 있는 외부인들,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온 한국영재과학고 학생들까지 참석해 열띤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친 백 연구원은 참석한 후배 수학자들에게 ‘낭만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소파 문제를 해결한 이후 김연응 서울과기대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께서 저를 보며 ‘너 낭만 수학했구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자리에도 제가 해결한 소파 문제, 즉 낭만 수학에 매력을 느껴 오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낭만 수학이란 ‘단순해 보여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수학 문제’를 칭하는 말로 쓰이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습니다. 이 정리는 ‘세 제곱수 이상으로 표현된 방정식 xn + yn = zn에는 자연수 해가 없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중학교 수준의 수학 실력만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이론은 350년 넘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94년, 앤드루 와일스가 현대 수학의 모듈러 형식 이론과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학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백 연구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이론이 아직 없을 수도 있고, 이런 이론을 혼자 만들어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낭만 수학의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그 역시 이 고민 속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합니다.
“약 2~3년 동안 문제를 잡고 씨름했는데, 별다른 진척이 없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혹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이론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문제를 파고들수록 조금씩 이해도가 높아지는 걸 보고, 리스크가 비교적 적다는 판단 아래 계속 도전했습니다. 다행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수학적 도구들이 이미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판단과 도전 정신,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잡아야 합니다. 수학의 낭만은 그 줄다리기 속에서 꽃피는 것 아닐까요?”
백진언
2024년 12월 18일, 연세대 과학관에서 백진언 연세대 수학과 연구원의 ‘소파 문제’ 세미나가 열렸다. 현장엔 수학과 학부생뿐만 아니라, 한국영재과학고 학생들까지 찾아와 자리를 가득 메웠다.
백진언 연구원이 제안한 낭만 수학
낭만 수학을 풀기 위해선 현실적인 판단과 낭만 사이에서 현명한 줄다리기가 필요하지만 시도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수학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백 연구원이 제안한 낭만 수학 문제에 도전해 보세요! 해답을 찾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사고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1. 변의 길이가 1 초과인 (예: 1.0001) 정육각형을 변의 길이가 정확히 1인 정삼각형 7개를 회전하거나 이동해서 덮을 수 있을까? 단, 정삼각형끼리는 겹쳐도 된다. (알렉산더 소이퍼 교수의 문제)
2. 한 변의 길이가 자연수 n인 정사각형 안에 n2 + 1개의 서로 안 겹치는 작은 정사각형들이 있다. 각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모든 정사각형들에 대해 합하면 최대 n2임을 보여라. (수학자 에르되시 팔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