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9, 8, 7, 6 … 3, 2, 1, 발사!”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 마지막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나로호는 화염을 내뿜기 시작했다.
발사통제동에 모인 연구원들은 모두 최면에 걸린 듯 화면을 응시했다. 발사체가 무사히 발사대에서 이륙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나로호는 외벽의 얼음을 떨치고 천천히 상승하더니 20여 초 만에 900m 상공까지 힘차게 솟구쳤다. 앞선 두 번의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날씨가 화창해 육안으로도 발사체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 그거야! 잘 작동해야 해!’
필자를 비롯해 전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가운데 나로호는 페어링 분리, 1단 로켓 분리를 차례로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 2단 로켓을 점화하더니 마침내 목표궤도에 나로과학위성을 올려놨다. 2번의 발사 실패와 8번의 발사 연기를 극복하고 얻은 귀한 성공이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 나로호 날다
발사 약 1시간 30분 후 노르웨이에 있는 지상국에서 나로과학위성의 비콘신호를 확인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3시 28분경 나로과학위성은 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지상국과의 교신에도 성공했다. 나로호 임무의 성공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나로호의 성공은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했다. 나로호가 전송한 비행 중 데이터는 우리 연구팀이 사전에 예측한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로켓 엔진이 내는 총에너지의 합인 ‘총역적’은 예상치와 단 0.06%의 오차를 보였으며, 총역적을 추진제 중량으로 나눈 값인 ‘비추력’도 예측과 같았다. 2단 로켓 엔진인 킥모터가 정확하게 작동했다는 증거였다.
또한 로켓 엔진에 들어가는 점화기의 압력도 지상시험과 1차 발사 때와 유사하게 변했다. 점화기 헤드의 표면 온도는 22.8℃ 상승해 1차 발사 때와 동일하게 나타났다. 노즐부에서 측정된 온도 데이터에서도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로호 2단에 탑재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는 2단 엔진이 정상적으로 점화되는 순간이 생생하게 담겼다. 페어링 한쪽이 분리되지 않아 결국 실패로 돌아간 1차 발사 때처럼, 2단 로켓의 자세에 이상이 생기거나 영상이 끊기는 등의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2단 엔진은 점화 후 60초경에 연소가 종료됐다. 촬영된 영상을 분석한 결과, 2단 엔진이 연소하는 과정 중에도 외관이나 노즐 파손 등 이상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스페이스 클럽’ 세계 11번째 가입
한·러 전문가들은 드디어 마음껏 서로를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자국 위성을 자국 발사체로 자국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한 우주강대국만 들어갈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의 세계 11번째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 연구진들은 우리 연구진들을 ‘함께 소금과 후추를 한 더미 먹은 사이(러시아 속담으로 ‘동고동락’과 유사한 뜻)’라고 표현하며 나로호의 성공을 진심으로 반겼다.
국민들의 박수와 환호도 쏟아졌다. 발사 2주 전부터 전국의 모든 방송사는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 매일 같이 뉴스로 발사체 조립동 내부 준비상황, 발사대 이송, 기립 과정 등을 보도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나로호의 성공에 더 큰 자부심을 느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생각에 우리 연구원들도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온 지 거의 10년 만에, 두 다리를 뻗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한국형발사체의 초석을 놓다
하지만 자축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로호의 후속인 ‘한국형발사체(누리호)’ 프로젝트가 2010년 3월부터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리호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첫 우주발사체로, 고도 600~800km 지구저궤도에 1.5t(톤)급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로호를 개발한 경험은 누리호라는 거대한 발사체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우리 연구팀은 누리호의 높이를 47.2m, 무게는 200t으로 나로호보다 약 1.5배 크게 설계했다. 또 나로호는 2단으로 된 로켓이었지만, 누리호는 3단으로 설계했다. 누리호를 우주로 올려 보내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1단 로켓에는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병렬로 연결해 총 300t의 추력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엔진의 효율과 위성의 무게, 목표 궤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다.
75t짜리 액체엔진을 개발하고, 이것을 묶어서 병렬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나로호 개발 당시 선행연구로 개발했던 30t 액체엔진에서 2배 이상 규모를 키워야 했다. 연소기, 터보펌프, 가스 발생기, 공급 계통 등 액체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전부 다시 설계하고 조립해야 했다.
75t 액체엔진의 하드웨어를 모두 완성한 뒤에도 기술적 난제는 산적해 있었다. 가장 큰 것이 연소 불안정(Combustion Instability) 현상이었다. 연소 불안정은 연소 과정에서 연소실 내부의 유동과 압력이 요동치며 정상적인 연소가 이뤄지지 않는 현상으로, 기존의 유체역학 공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75t 액체엔진은 1초에 250L의 연료를 태우는데, 이처럼 다량의 추진제를 고온, 고압 상태에서 짧은 시간 태우면 교란이 발생한다. 그 결과 연소실 내부의 압력과 진동이 급격히 높아지고, 심각한 경우 폭발로 이어진다.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설계를 바꿔 연소기를 제작하고 시험하고, 다시 설계를 바꾸는 시행착오를 2014~2016년 지속했다. 10여 차례의 설계 변경과 20회가량 연소 시험을 진행한 끝에 연소 불안정 현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2018년 11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어렵게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한 75t급 액체엔진 1기를 시험발사체에 적용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엔진은 발화 후 목표 연소시간인 140초를 넘어서 151초간 안정적으로 연소된 뒤, 상공 200km 이상 고도까지 도달했다가 제주도에서 일본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공해상에 떨어졌다. 우리 독자기술로 개발한 75t급 액체엔진의 비행 성능이 확인된 것이다.
시험발사체의 성공 발사는 2021년 예정된 누리호 발사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였다. 현재는 2단, 3단에 들어가는 엔진을 시험 중이고, 이것이 무사히 끝나면 드디어 75t 액체엔진 4개를 묶은 인증모델(QM)의 연소시험에 들어간다.
인증모델 연소시험이 무사히 끝나면 남은 것은 1~3단 발사체 조립이다. 실제 발사할 비행모델(FM)을 조립하는 것이다. 누리호가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등에 이어 독자적인 위성 발사체를 보유한 우주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로호 사업의 끝이 누리호의 시작과 맞물렸듯, 누리호 사업의 끝도 또 다른 시작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22년부터 누리호를 상업성을 갖춘 발사체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신뢰도 및 성능 개선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4년 내 탐사선을 달까지 수송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켓의 연비가 지금보다 향상돼야 한다. 누리호에 들어가는 엔진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로켓의 단을 추가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성공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번의 실패, 8번의 발사 연기를 통해 나로호를 결국 성공시켰듯 누리호도, 그 이후의 한국 발사체도 인내와 끈기 속에 꽃을 피우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