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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우주 면역력, 비타민이 필수

➒ 우주에서 건강 지키기



문을 들어서자 정돈이 잘 된 작은 진료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를 맞이하고 있던 것에 흠칫 놀랐다. 하우스 박사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킴선.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 설마 아직 적응을 못했나?”

하우스 박사는 내 이름 김선홍을 늘 헷갈려 짧게 두 글자로 킴선이라고 부른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 당황해서, 나는 말을 우물거렸다.

“아닙니다. 비행이 길어서 좀 피로했던 거겠죠.”

“뭐, 보면 알겠지….”

하우스 박사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내 팔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나는 초조한 기분이 됐다. 사실 ‘잘못’을 좀 한 게 있기 때문이다. 우주와 화성은 온도 변화가 극심하고 우주방사선이나 미세 중력 등 지구와는 환경 차이가 크다.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몸의 면역력이 달라진다. 면역계에는 필수 미네랄이나 비타민 등이 특히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우주 비행 동안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했다. 입맛도 적고 귀찮아서였다. 하지만 설마 그 정도로 문제가 있으려고…?

“킴선. 혈액검사 결과 약간의 문제가 생겼네.”

“네?”

“자네 몸의 면역세포 중 T세포 수가 많이 감소해 있네. 또 NK세포(자연살해세포)도 많이 줄어들어 있어.”

한 마디로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비타민제 빼먹은 게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면역력이 떨어지면 밀폐된 우주선 환경에서 곰팡이,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의 감염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게 감소한다네. 특히 긴 우주 임무를 수행할 때 문제가 되지. 만약 한 명의 우주 비행사라도 병원균에 감염되면, 같은 우주선에서 활동하는 다른 우주비행사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기는 어렵지.”

하우스 박사는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 7년 전의 비극, 기억하지?”

그 사고라면 우리 모두가 기억한다. 끔찍한 기억이다. 민간회사가 주도한 또다른 화성행 우주 비행선의 시험비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원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탑승했다. 밀폐된 우주선 공간 안에서 모두의 면역력이 떨어지자, 대원 전원이 순식간에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됐다. 손 쓸 시간도 없었다. 지상의 기지국에서는 이들이 괴로워하다 죽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이 사고 이후, 외부 감염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하고 민감한 규정이 겹겹으로 생겼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주 비행사가 우주선 밖 활동으로 태양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NK세포 수가 줄어들어 면역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

하우스 박사는 그래서 당분간 외부 활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화성까지 와서도 실내에 갇혀 지내는 신세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비타민제를 열심히 먹어둘 걸 잘못했다.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하우스 박사는 신랄하게 말했다.

“격리 치료시설에 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게.”

대신 하우스 박사는 면역증강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우선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우주 식단을 짜줬다. 면역력 증강 기능식품인 홍삼도 권했다. 운동도 더 해야 했다.

우주에서 하는 선외 활동은 피부의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 자외선과 전리방사선 등을 우주복이 효율적으로 막아주긴 하지만, 활성산소 발생에 따른 노화까지는 막기 힘들다.

우주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다? 아니다. 러시아 우주인 발레리 폴랴코프는 1995년 우주정거장 미르(Mir)에서 438일 동안 연속 체류하는 기록을 세웠다. 여성 우주인 중에는 195일 동안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렀던 수니 윌리엄스(사진)가 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크리칼레프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803일 동안 우주에 머문 기록도 있다.


우주유영은 피부노화를 부른다

“그리고 피부노화도 측정 결과인데…. 대원들보다 피부가 좀더 늙었네.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우주공간에서 4일 동안 작업한 적이 있지? 아마 그 때문인 것 같군.”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우주복이 자외선과 전리방사선 등을 100% 차단하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문제는 내부에 있어. 우주 유영을 할 때는 산소소비량이 많아 활성산소가 많이 발생하거든. 이들이 피부를 공격해 노화가 촉진될 수 있어. 우주복 안은 100% 산소로 채워져 있지? 또 출발하기 몇 시간 전부터는 순수한 산소로만 호흡을 해. 활성산소가 빠르게 증가하기 좋은 조건이지. 그런데 아직 우주복으로도 이 활성산소를 순식간에 제거할 수는 없어.”

다음은 골밀도와 근육량 검사 결과였다. 둘 다 다른 연구원에 비해 감소가 적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우스 박사는 지구의 중력 영향을 받고 살던 인간이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 나가면 노화가 빠르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우주에서는 체내 단백질과 칼슘이 1개월에 1% 꼴로 줄어든다. 만약 우주에서 1년을 머문다면, 뼈와 근육의 12%가 사라진다. 그만큼 늙는 것이다.

“제가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먹기도 잘 먹었거든요.”

내가 의기양양해서 말하자, 하우스 박사가 말을 멈추고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비타민은 안 먹었잖아.”

‘헉, 알고 있었던 거냐.’

나를 보는 눈빛이 하도 서늘하고 엄격해 순간 웃는 표정을 거뒀다. 이 때부터 박사의 잔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박사는 내게 다시 비타민을 먹을 것을 강조했다. 활성산소는 90% 정도의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다. 활성산소를 없애는 과정을 항산화라고 하는데, 우리 몸에도 항산화 효소가 있다. 하지만 공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자체적인 항산화 효소만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비타민 A, C, E를 열심히 먹는 거라네. 열무․피망․시금치․딸기․오렌지․사과 등 과채류를 많이 섭취하면 좋지만, 그러자면 우주농장이 이것들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몸 속 변화

그래도 몇 가지 당부와 지적이 끝나자, 다음부터는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궁금했던 몸의 변화에 대해 물어봤다.

“우주에 가면 체액이 몰려 얼굴이 붓는다는 건 들었지? 근데 얼굴만이 아니네. 체류기간에 비례해서 폐의 크기나 기능도 떨어지지. 숨을 쉬어보면 횡격막이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이것도 중력과 연관이 있거든. 이렇게 몸의 많은 부분이 우주에서 변하는데, 사람의 몸이란 게 또 적응을 하게 마련이라 금세 편안해져. 하지만 다시 지구로 돌아가게 되면 또 힘들어지지. 수영장에서 한 시간만 있다가 나와도 몸이 무거워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우주에서 몇 달 보내고 나면 오죽하겠어. 심지어 우주여행때문에 빈혈이 생길 수도 있다네. ‘우주인 빈혈’이란 단어가 있을 정도야.”

나는 빈혈로 갑자기 쓰러졌던 대학 친구가 생각났다. 나같이 건장한 사람이 빈혈로 쓰러진다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혹시 속이 거북하거나 소화가 예전과 다르지 않던가?”

듣고 보니 식사 후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늘 더부룩했던 기억이 났다. 우주여행에 따른 긴장과 멀미 때문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우스 박사가 말을 이었다.

“혈액 순환과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는 음식물의 소화도 다르다네. 지구에서도 눕거나 물구나무 선 상태로는 음식을 먹기 어렵지? 음식이 위까지 내려갈 때는 중력이 큰 역할을 하게 되네. 물론 식도에서 연동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반 고형 음식은 밑으로 내려 보낼 수 있어. 하지만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지. 그래서 우주에선 꼭 누운 상태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소화가 잘 안 되는 거야. 아! 소장과 대장에서는 반대야. 장은 소화물을 아래로만 내려 보내는 게 아니라, 형태에 따라 다시 위쪽으로 올리기도 하지. 그런데 중력이 없는 상황에선 이 운동이 훨씬 쉬워. 그래서 지상에서보다 소화도 빨라.”

하우스 박사는 마지막으로 체중을 쟀다. 우주에선 중력이 없기 때문에 지구에서 사용하는 체중계를 사용할 수가 없다. 우주에서는 뉴턴의 법칙(F=ma)을 이용해 체중을 잰다. 체중을 재는 판에 올라가면 기계가 우주인을 밀어내는데, 이 때 우주인이 날아가는 속도를 측정해서 무게를 측정한다. 체중이 많이 줄어 있었다.

“우주 멀미, 소화 불량, 스트레스 등의 이유도 있지만, 뼈나 근육이 많이 줄어든 탓도 있네. 또는 체액이 빠져 나가서 체중이 줄어들지. 보통은 지구로 귀환하고 나면 다시 회복되니 걱정 말도록.”

진료가 끝났다. 진료실을 나서는데, 하우스 박사가 다시 한번 힘 주어 강조했다.

“운동 처방 꼭 받게. 체력단련실에 전화 해 두겠네.”

마지막 목소리는 어째 지상에서 훈련 받던 시절의 교관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더 혹독하게 시키려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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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택중 연세대 교수
  • 이태훈 전남대 교수
  • 박준수 연세대 교수
  • 일러스트

    박장규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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