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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로켓] 태풍을 이겨낸 나로호의 마지막 도전

◇ 보통난이도

2012년 8월 29일 오전 7시 40분, 나로호 3차 발사에 쓰일 1단 로켓이 항공편으로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역준비, 세관검사, 통관, 하역작업 등을 거쳐 곧바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로 이송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강력한 태풍 두 개가 연이어 남해안 일대를 강타했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해 북한 황해도에 상륙한 후, 43시간 만에 제14호 태풍 ‘덴빈’이 남해안으로 상륙했다.

 

태풍이 유난히 많았던 3차 발사

 

볼라벤은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51.8m로 2012년 당시 역대 태풍 중 5번째로 바람이 강했다. 덴빈은 풍속은 볼라벤보다 약했지만 많은 비를 동반했다. 덴빈 왼쪽 반원에 속하는 호남 서부지역에는 하루 동안 최고 200mm 이상의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단 로켓은 태풍에 사흘이나 발이 묶여 9월 1일이 돼서야 나로우주센터 땅을 밟았다.


그런데 약 2주 뒤인 9월 16일 더 강력한 태풍이 찾아왔다. 제16호 태풍 ‘산바’는 중심 기압이 약 910hPa(헥토파스칼)로 2003년 역대급 피해를 가져온 태풍 ‘매미’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산바는 초속 50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채 남해안에 상륙했다.


당시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조립작업이 한창이었다. 3차 발사에 사용할 나로호 2단 로켓 조립 작업과,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 로켓 결합 준비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나로우주센터의 시설과 건물은 초속 60m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건설됐지만 자연의 힘은 인공적인 것을 초월하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로호 1단과 2단을 분리하는 부품인 역추진 로켓을 보관하는 창고가 폭우로 침수됐다. 어느 틈에 들이쳤는지 모르는 빗물이 창고 바닥에 흥건했고, 역추진 로켓을 보관 중인 상자의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역추진 로켓은 고체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히 습기에 민감했다. 여기에 물이 닿았다면 발사가 지연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천만다행으로 물이 역추진 로켓에까지 스며들지는 않았다. 상자 내부에 제습제를 가득 채워놓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후 정밀한 성능 검사에서도 역추진 로켓의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이라는 부담감과의 싸움

 

태풍을 견디는 시간이 지나니, 10월 26일 나로호 3차 발사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3차 발사는 나로호의 마지막 기회였다. 나로호 1단 로켓을 제작하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가 최대 3차례까지만 1단 로켓을 우리나라에 공급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에 발사일이 다가올수록 연구원들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때문에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발사일을 한 달 가량 앞둔 어느 날 새벽, 겨우 잠에 빠졌는데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3교대로 나로호를 밤새워 지키는 연구원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나로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귀신 소리 같은…,”


순간 용수철처럼 일어나 차를 몰고 나로우주센터로 달려갔다. 실제로 나로호에서는 ‘삐~’하는, 피리 소리와 유사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갔더니 나로호 내부에 이물질이 침투하지 않도록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멍이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공기 구멍 입구에는 얇은 실 하나가 끼어 휘날리고 있었다.


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외부 소음 등을 차단하기 위해 나로호 내부에 설치하는 탄소섬유에서 섬유 한 가닥이 떨어져 나온 듯했다. 나로호의 상태에 연구원들이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대망의 3차 발사일이 다가왔다.

 

 

발사 연기는 발사 실패보다 나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발사일 아침을 맞았다. 이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뼈 아픈 실패를 겪었던가. 3차 발사 때는 만일에 대비해 우리가 담당한 모든 시스템을 재점검하면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모두 수정하고 보완했다. 1차 발사 실패 원인이었던 페어링 분리시스템의 고전압 기폭장치를 저전압 기폭장치로 바꿔 방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2차 발사 실패 원인으로 오해를 받았던 2단 로켓 엔진의 비행종단장치는 아예 제거했다. 완벽에 가까운 준비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발사 당일 오전 10시 1분경, 나로호 내부에 있는 헬륨탱크로 헬륨을 충전하는 과정에서 헬륨탱크 압력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발사대로 접근해 상황을 살펴보니 나로호 몸체와 지상설비를 연결하는 장치(어댑터 블록)에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끼우는 실(Seal)이 파손돼 있었다. 어댑터 블록은 나로호에 연료와 헬륨을 공급하는 배관 역할을 한다. 공급하는 헬륨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시키지 못하면 발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발사 작업을 중단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현상이라 한국과 러시아 연구진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러 연구진은 발사대에 세운 나로호를 다시 조립동으로 내려보내 몇 가지 시험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시험 결과, 나로호 몸체와 어댑터 블록을 결합하는 체결력이 부족해 연료 공급라인 결합부에 틈이 발생한 것이 문제였다. 초기에 예상했던 실(Seal)의 불량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어댑터 블록을 교체하고 나머지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까지 진행하는 데 다시 한 달이 소요됐다.

 


그리고 찾아온 11월 29일 2차 시도. 모든 작업은 순조로웠다. 산화제인 액체산소와 연료인 케로신(등유의 일종) 충전도 이상없이 진행됐다. 그런데 발사 22분 전, “어! 이게 뭐야!” 외마디 비명이 발사통제센터에 울려퍼졌다. 발사준비 최종 점검 단계에서 2단 로켓 추력방향제어기(TVC)를 구동하는 유압모터 제어기에 순간적으로 과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포착된 것이다.


나로호 내부를 확인해보니 유압모터 제어기는 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과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눈치채지 못하고 발사했다면 1단 로켓으로 발사체를 무사히 쏘아 올렸더라도 2단 로켓의 추력방향을 제어하지 못해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실패했을 것이었다. 이미 한 차례 발사가 미뤄진 상황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더 이상 발사를 진행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로호 발사는 결국 이듬해로 넘어갔다.


나로호 발사가 2013년으로 미뤄지자 세간에는 3차 발사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나로호는 핵심 기술이 러시아 것이어서, 재발사를 통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무용론자들은 재발사 준비에 들어가는 인력과 장비를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발사체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사 연기가 발사 실패보다 더 나쁘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질책도 나왔다.


그러나 이 모든 압박을 견디고 나로호는 2013년 1월 30일 다시 한 번 발사대에 섰다. 3번째 발사, 3번째 시도, 마지막 기회였다. 운명의 카운트다운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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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나로호개발책임자)
  • 이영혜 기자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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