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손에 쥔 리모콘 안에는…

적외선의 마술사

초음파 시대를 끝내고 적외선시대에 들어선 이 원격조정장치는 도플러효과 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필자가 리모콘이란 장치를 처음 대하게 된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용돈을 모아 샀던 플라스틱 모델 탱킁(tank)를 조립해 만들고 있었는데 이 탱크는 전진 후진 좌우회전을 할 수 있었다. 이때 이를 조정하는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탱크와 전선으로 연결된 '리모콘'이라는 원격장치였다. 리모콘에 붙어 있는 두개의 조이 스틱(joy stick)을 앞뒤로 움직이면 전선으로 연결된 탱크는 이에 따라 동작하는 재미있는 모형이었다.

이 신기한 리모콘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뒤의 일이었다. '리모트 컨트롤러'를 약해서 우리는 리모콘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리모트(remote)는 '공간·시간적으로 거리가 먼'이란 형용사고 컨트롤러(controller)는 '조정장치, 제어장치'를 가리킨다. 결국 리모콘은 제어하려는 대상과 떨어져서 원하는 동작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장치를 뜻한다.

신뢰성이 높아지고

그렇다면 왜 리모콘을 사용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기기에 리모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단정적인 대답은 이 시점에서 매우 어렵다. 지금 생각으로는 기술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필요한 대부분의 기기에 리모콘을 사용하는 추세로 나갈 것이라 예상된다.

리모콘은 유선과 무선으로 크게 구분된다. 유선은 말 그대로 대상기기와 리모콘간에 정보를 주고 받는 '선'이 필요하다. 반면 무선은 이런 선이 없어도 조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통상 우리가 가정에서 쓰고 있는 리모콘은 무선이고, 산업용이나 레저용으로는 주로 유선이 사용된다.
유선을 쓰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값이 싸고, 둘째 신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선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유선리모콘이 모형비행기나 장난감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반면 공장 등에서 무거운 물건을 움직이려 할 때 유선을 사용하는 것은 무선은 잡음(노이즈, noise)을 일으켜 큰 재해가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근래에는 높은 신뢰성이 요구되는 분야에까지도 무선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리모콘과 제어 대상 사이에 완전한 정보 송수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특히 공장에는 전파를 교란하는 요인들(예를 들어 전기용 접시에 생기는 고압의 스파크 등)이 많으므로 먼저 전파교란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리모콘이라고 할 경우는 보통 무선리모콘을 말한다. 무선리모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것과 그밖의 다른 곳에 쓰이는 것으로 분류된다.

가전제품에 쓰이는 리모콘중 초기의 제품들은 초음파를 활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음파가 갖는 특성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않고 곧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요즘에는 대부분 적외선을 그 작동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리모콘들이 사용되고 있다.

가전제품 외에 모형비행기 헬리콥터 자동차 그리고 원격제어(tele-operator)용 로봇등은 무선전파를 이용해 정보를 전한다. 적외선은 원거리 송수신이 무선전파에 비해 어렵고 리모콘과 제어기기 사이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대상기기를 조정할 수 없다. 때문에 먼 거리의 전달시에는 적외선이 적합치 않다. 무선전파는 보통 라디오의 FM과 같은 방식을 응용한다. 성능과 가격면에서 FM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임무가 다양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리모콘에도 반도체 칩이 들어간다.
 

초음파의 단점을 극복하고

산업용 리모콘은 일반 가정용과 성능·기능면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리모콘이라 부르지도 않고 원격조정장치로 통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등장하는 리모콘은 가정용을 뜻한다.

가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광(光) 리모콘은 신호전파매체로 근적외선을 사용하고 있다. 리모콘에 대해 서술하기에 앞서 일반 가정의 조명광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가정내의 광원으로는 태양광 백열전구 형광등이 일반적이다. 백열전구와 태양광은 가시광선에서 적외선 영역까지 걸쳐 있는데 반해 형광등은 가시광선 영역과 적외선보다 약간 짧은 파장(1천24nm)에서 선(線) 스펙트럼을 갖는다.

따라서 광리모콘은 이러한 빛들과 구분되는 파장에서 근적외선을 이용, 신호를 보낸다.(9백40nm). 바로 이 점이 광리모콘이 적외선을 쓰는 이유다.

적외선을 응용한 리모콘장치는 주로 TV VTR 오디오 등에 보급되고 있다. 종래의 초음파리모콘이나 유선리모콘에 비해 △도플러효과에 의한 오(誤)동작이 없고 △응답이 빠르며 △소형화하기 쉽고 △값이 싸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정보전달체로 사용했을 경우, 음파가 1초에 3백40m를 이동함에 따라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해 왔다. 특히 사용자가 리모콘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송신을 하면 도플러효과에 의해 수신장치가 오동작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러나 적외선을 이용하면 빛의 속도로 신호가 전달되므로 도플러효과는 거의 무시할 수 있다. 수신장치의 응답이 빠른 이유도 광속이 음속보다 빠르다는데 있다. 또한 적외선을 송수신하는 부품이 초음파 송수신장치보다 부피가 작으므로 소형화하기 쉽과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적외선을 발사하는 부품에는 적외선 발광다이오드, 수신하는 부품에는 실리콘 PIN 포토 다이오드 등이 있다).


TV 오디오 등을 조정하는 리모콘은 저고이선 신호로 명령을 전달한다.
 

여러 제품이 동시에 작동되기도

리모콘에 사용되는 센서는 크게 발광다이오드와 수광다이오드로 나눌 수 있다. 각 소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자.

발광다이오드는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리모콘에서 기기로 보내는 신호를 발사하는 부품으로, 여기에 전류를 흘려주면 전류에 비례해 빛이 나간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면 빛의 강도가 약해져 수신하는 기기가 이를 알아볼 수 없으므로 빛을 모으기 위해 렌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치 등대에서 빛을 모아 먼 거리까지 나가도록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리모콘에서 발사된 빛을 받기 위해서는 수광다이오드가 필요하다. 이 부품은 발광다이오드와 반대로 동작한다. 다시말해 빛이 이 부품에 닿으면 전류가 흐르도록 돼 있다.

이 두가지 부품은 가정용 전자제품 외에도 사격연습용 장난감이나 리모콘을 이용하는 스위치 개폐장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격연습용 장난감 중에는 '킹콩'이 서 있다가 총에 명중되면 뒤로 넘어지게 돼 있는 게 있다. 이 게임기는 총구에 적외선 발광다이오드를 붙이고, 킹콩의 가슴 한복판에 수광다이오드를 부착한 것이다. 발광 다이오드에 의해 발사된 빛이 가슴 가운데에 정확히 닿았을 때만 수광다이오드에 전류가 통하기 때문에 훌륭한 사격연습용 장치가 될 수 있다.

가전제품용 리모콘도 이와 유사한 원리로 동작되지만 이 경우 보다 복잡한 기능이 필요하게 된다. TV를 예로 들면, 채널에 따라 구분을 해야 하고 소리를 크게 또는 작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VTR일 경우에는 테이프에 대한 조작까지도 적절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장난감의 리모콘은 빛이 수광소자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만 알면 되지만 가전제품의 리모콘은 빛이 닿았을 때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빛이 갖는 고유의 '암호'를 암기(?)한 뒤 같은 빛이 왔다 하더라도 이들 암호를 적절히 해석, 각 암호에 맞는 독특한 동작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정용리모콘 송수신장치에는 소형의 마이크로컴퓨터가 내장돼 암호를 해석하고 암호 내용을 실행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가전제품용 리모콘의 동작원리를 살펴보자. 잘 알다시피 발사되는 빛에는 신호가 실린다. 신호가 실린다는 것은 빛을 아주 빠르게 껐다 켰다 하면서 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등·소등을 어떤 순서로 하느냐에 따라 각 신호의 특성, 다시 말해 '암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ON OFF ON OFF하는 것과 ON ON ON OFF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때문에 이러한 조합을 적절히 해서 빛을 보내면 수신하는 장치는 "ON OFF ON OFF일때 7번 채널로 TV를 돌리고 ON ON ON OFF이면 9번으로 돌려라"하는 동작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코드(code)라고 하는데 이 코드가 바로 암호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도 이와 유사한 방법이 쓰이고 있는데 '모르스부호'가 대표적인 예다. 모르스부호를 사용해 무선통신을 하는 원리와 리모콘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리모콘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의 암호, 즉 코드가 있다. 커스텀(custom) 코드와 데이터(data) 코드가 그것이다.

커스텀 코드는 각 제품모델마다 부여되는 일종의 고유 '이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전제품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원하는 기기만 동작을 하도록 하는데 필요하다. 만약 이 코드가 없다면 리모콘으로 TV를 켰을 때 근처에 있는 VTR이나 오디오도 동시에 켜지게 되므로 다시 손으로 VTR이나 오디오를 꺼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 커스텀 코드는 보통 2백56가지 종류가 있어 각 회사마다 각 제품모델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제품모델만 같으면 한 리모콘에 의해 여러 대의 제품이 동시에 동작하게 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TV 여러 대를 한 곳에 놓고 시청하거나 같은 모델의 VTR를 한장소에 놓고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큰 문제는 안된다.

어떤 리모콘은 TV와 VTR를 모두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TV를 동작시킨 뒤 다시 VTR를 작동시키려면 전환스위치를 바꿔주어야 한다. TV용으로 놓았을 때 발사되는 커스텀코드는 VTR로 스위치를 전환시켰을 때의 커스텀코드와 다르게 돼 있기 때문에 TV와 VTR를 구분지어 동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집에 있는 리모콘을 잘 살펴보면 이 커스텀코드 전환스위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음에는 데이터코드가 활약할 차례다. 리모콘에서 발사된 커스텀코드를 수신한 TV(또는 VTR)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커스텀코드와 일치되면(즉 리모콘과 TV가 같은 회사 동일 모델 제품임이 확인되면), 데이터코드를 받을 준비를 한다. 만약 커스텀코드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에 들어오는 데이터코드를 무시한다. 커스텀코드가 일치되어야 리모콘에서 데이터코드가 나오므로 수신측인 TV나 VTR는 그때서야 이 코드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코드는 리모콘에서 보내는 일종의 '동작 명령 암호'이므로 가전제품은 이 데이터코드를 해석, 그에 해당하는 동작을 한다. 이 코드는 2백56가지의 종류가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용 전자기기는 보통 10여가지의 기능만 지니므로(불과 몇가지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동작을 한다. 2백56가지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8비트(bit)의 정보가 필요하다. 데이터코드를 다 보내고 나서는 데이터코드를 모두 보냈다는 신호를 해준다. 수신측에서는 이 신호를 확인하고 모든 동작을 마친다.


신뢰성 확보가 중요^중량감 있는 자동차 차체를 공장의 천장을 통해 이동시킬 때도 리모콘이 활용된다. 이때는 대개 안전성을 고려해서 유선리모콘을 사용한다.
 

CPU가 탑재돼

얘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커스텀코드를 발생시키기 전에 리모콘이 하는 일을 알아보자. 이때 리모콘은 리더(leader)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는 수신측의 회로가 안정되게 동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말해 수광회로의 신호레벨을 설정(수광회로에서 그 입력신호의 강도가 커지면 동작이 안정화 된다)해 주고 수신용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잡음을 줄여주고 리모콘신호의 판별을 쉽게 해준다.

이 리더신호의 필요성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리모콘을 사용하는 사람이 고정된 위치에서 일정한 빛의 강도를 갖고 적외선을 보낸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수신측까지의 거리의 장단, 그리고 리모콘이 보내는 빛의 강도의 강약을 불문하고 수신측에서는 일정하고 안정된 동작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송신측(리모콘측)의 사정을 수신측에 제대로 알려주어 기기가 오(誤)동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송신측과 수신측의 복잡한 관계를 극복해야 비로소 정상정인 동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복잡하다. 코드를 보낼 때도 한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앞서 보냈던 신호와 반전된 신호를 다시 보낸다. 수신측에서는 이 두 신호를 비교, 서로 반대의 신호임을 확인했을 때만 동작하게 돼 있다.

이러한 신뢰성 확보의 문제는 가전제품에서보다 산업용 기기에서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수 톤(ton)의 무게가 나가는 기계를 공장의 천장을 통해 운반하는 컨베이어가 오동작에 의해 기계를 떨어뜨렸을 때 발생되는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용일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들을 개발해야 함은 물론이다.

리모콘이 정상적인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처리를 해야하므로 소형의 CPU(중앙연산처리장치)가 탑재된다. 현재 각 회사마다 전용의 CPU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삼성 대우 금성 기타 전자제품관련 회사에서 이 칩(chip)을 설계하고 있다.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리모콘 하나에도 이런 여러 기술들이 필요하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첨단기술'이 이미 생활 깊숙이 파고 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사회에서는 이런 현상들이 더욱 두드러지리라 예상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가민호 대학원생

🎓️ 진로 추천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 정보·통신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