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전기’. 단어만 들었을 땐 새로 등장한 전기의 종류 같지만 실은 정전기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겨울에 코트를 벗으면서, 어릴 때 풍선을 머리에 문질러보면서 정전기를 느낀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이렇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마찰전기 현상이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란 새로운 에너지 기술로 이어지며 그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 발전기는 바람, 인체의 움직임, 소리 등의 기계적 에너지로 마찰전기를 일으켜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죠. 이 분야는 2006~2020년 전 세계 논문을 수집한 네덜란드 라이덴대 데이터에서도 높은 연평균 성장률(CAGR)을 나타냅니다.
마찰전기는 두 가지 다른 물질이 접촉했을 때 발생하는 전기적 현상(정전기)을 의미합니다. 이 현상은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 발견했죠. 그들은 호박을 빗자루에 문지르면 빗자루와 호박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호박을 치운 후에도 빗자루는 다른 물체에 달라붙었습니다. 이후 인류는 마찰전기 현상을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여왔습니다.
하지만 마찰전기를 발생시켜 에너지로 사용할 생각은 그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바람, 인체의 움직임, 소리 등의 기계적 에너지로 마찰전기를 발생시킵니다. 두 물체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두 물질 표면 간에 자유전자의 이동이 발생하는데요. 이후 두 물질을 분리시키면 앞서 이동한 자유전자들로 인해서 전위차가 생겨 전류 흐름이 형성되는 원리를 적용한 겁니다.
마찰전기는 어떤 재료에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변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들을 전기에너지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죠. 특히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출력이 높고, 구조가 단순하며,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어져 혁신적인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에너지 하베스팅 대표 선수, 마찰전기 나노발전기
직접 착용 가능한 웨어러블 전자기기와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술의 발전 등으로 미래에는 더 많은 인간지향 전자기기가 일상에 들어올 겁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우리 삶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위해선 꼭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크고 불편한 배터리입니다.
배터리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에너지 하베스팅입니다. 이 신기술은 열, 빛, 기계적 에너지 등 주변에서 흔히 버려지는 에너지를 유용한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지속 가능한 전력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에너지 기술의 한계도 극복 가능합니다. 최근에 개발된 웨어러블 전자기기나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 등은 대개 작고, 전력 소비가 적으며, 배터리 교체 또는 충전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는데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이용하면 배터리 사용 시간을 연장시키거나, 심지어 처음부터 교체할 필요가 없는 배터리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바로 이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의 대표 선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구조가 간단하고 유연성이 높아 소형화에 유리하며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적인 소재로 제작 가능해 상용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2년에 개발된 이래 관련 기술이 급격히 발전해 이젠 우리의 에너지 사용 패러다임을 크게 바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초기 연구단계에선 출력이 100만 분의 1A(암페어) 수준이었지만, 고출력 소재 개발, 최적 구조 도출 등 출력 향상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지난 10년간 수천 배 이상 출력이 향상됐습니다. 그 덕분에 여러 응용 연구도 수행되고 있죠.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이 기술은 이제 자가발전 센서와 의료기기, 자가충전 배터리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배터리가 필요한 다양한 기기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에 대한 기대가 특히 높은 분야가 바로 웨어러블 전자기기입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와 결합한 웨어러블 전자장비는 사용자의 움직임에 반응해 자체 전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걷거나 달릴 때, 심지어 심장이 뛰거나 위장이 움직일 때마다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더 나아가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센서 네트워크, 무선 통신 시스템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를 토대로 미래엔 저전력 소형 웨어러블 기기의 사용자들이 별도의 배터리 충전 없이도 자체 생산한 전기로 계속해 해당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가 바꿀 의학의 미래
최근 저희 연구실에선 인체에 무해한 초음파로 체내에서 전기에너지를 얻는 초음파 구동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를 발표했습니다. 초음파는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 주파수 20kHz 이상의 음파로, 초음파 진단 같은 의료 분야에서 안전성이 검증됐죠.
저희가 개발한 기술은 인체 외부에서 체내로 안전성이 검증된 초음파를 전파해, 이것으로 인체에 삽입된 초음파 구동 나노발전기를 빠르게 진동시켜 높은 전기 출력을 발생시키는 원리입니다. 장기의 움직임과 같은 체내의 기계적 에너지를 활용한 기존 인체 삽입형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보다 출력이 1000배 이상 높아서, 체내에서 만든 전기만으로 체내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완전 충전하는 기술적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를 응용해 아예 배터리가 필요 없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전기적으로 병원균 및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는 마스크와 의복, 전기에너지를 직접 상처에 전달해 회복 속도를 높이는 웨어러블 밴드 등 복잡한 회로나 배터리 없이 자체 전력으로 동작하는 의료기기들입니다.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를 체내에서 분해되는 생분해성 소재로 만드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인체 삽입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녹아 별도의 제거 수술이 필요 없는 생분해성 자가발전 의료기기가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미래 의료 분야도 크게 바꿀 겁니다.
상용화 위해선 내구성・안정성・효율성 확보해야
마찰전기 나노발전기의 보편화, 상용화까지는 장애물들이 남아있고 많은 후속 연구도 필요합니다. 특히 소재의 내구성, 효율성 등을 보장하기 위한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고출력 소재로 이 발전기의 출력을 높이는 것도 주요 목표입니다. 그동안 개발한 여러 소재로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를 만들어 배터리 충전까지 성공했죠. 하지만 현실의 생활 환경과 동떨어진 특정 환경에서만 달성되는 등 보완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상용화를 위해선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 및 변환 시스템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생산한 전기를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죠. 현재까지의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높은 전압 및 낮은 저항의 교류 전류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저장 효율은 아직 매우 낮습니다. 기존 변환기는 대량 발전에 최적화된 탓에, 소량의 교류 전류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장치도 개발돼야합니다. 마지막 문턱은 출력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입니다. 태양전지는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같은 기관들이 출력을 인증하는 반면, 마찰전기 나노발전기는 이런 기관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현대 문명의 발전은 소재와 에너지 기술의 첨단화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찰전기 나노발전기 기술이 단순한 에너지 변환 방식을 넘어, 사람과 기계가 원활하게 연결되는 인간 지향적 기술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치 있는 기술로 마찰전기 나노발전기가 성장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김상우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연세 월드클래스 펠로우 교수). 2004년 일본 교토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후연구원, 금오공대 조교수,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거쳐 2023년부터 연세대에서 재직 중이다. 마찰전기 에너지 하베스팅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인 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 마찰전기 소재 및 소자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kimsw1@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