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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정기국회에서 공해보도에 대한 제한이 있느냐 하는 질의가 있었다. 답변은 그런일은 없고 다만 정확한 보도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공해보도는 공해연구를 토대로 가능하다. 정확히 보도하려면 공해연구가 활발하고 권위있는 데이타가 공개되어야한다.

공해보도 이전에 공해연구가 활발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자연과학연구에서 어떤 제한이나 억압이 있다는 말은 우리주변에서 별로 들어보지 못한것 같다.

그러나 공해에 관한한 '자유롭게 연구되고 발표되는가'라는 질문을 공해연구학자들에게 던지면 모두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외면하고 만다. 알면서 물어보는게 이상하지 않느냐는 눈치다.
 

공장 폐수로 물고기가 떼죽음 했다


최초의 사건

12년전, 73년12월20일자 동아일보에는 '연구논문발표 인책설' 속에 부산수대학장 돌연사직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난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연구학자 수난사건으로 해석되면서 외국에까지 알려져 있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우리나라 연안해조류에대한오염도 조사'란 연구논문을 발표, 물의를 일으켰던 원종훈교수가 근무하고 있는 부산수대양재목학장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 20일 문교부에 의해 수리됐다.

문제의 원교수 논문은 우리나라 연안의 해조류가 크게 오염돼있다는 내용으로서 이 논문발표를 계기로 문교부는 교수들의 학술연구논문중 공해 수출등 국민생활에 영향이 큰것은 관계부처와 사전협의한 뒤 발표토록 지시, 학계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태를 빚었다.

28년동안 수산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온 양학장은 작년5월 세번째 학장에 연임, 아직 3년 가까운 임기를 남긴채 지난 8월25일자로 사표를 냈었다.

문교부측은 양학장의 사임은 논문발표와는 전혀 관계없고 학교운영상의 문제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학장과 원교수는 동 연구논문이 발표된 뒤 문교당국으로 부터 경위 해명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부산수대 교수들은 원교수의 논문발표후 문교부에서 사전허가없는 논문발표금지등 조치가 내렸고 양학장이 고민해왔던 점으로 보아 이에 관련되어 사표를 낸것이 아닌가 보고있다"

원교수는 이 기사에서 거론된 논문외에도 73년6월 한국수산학회지에 '한국산 어류중의 수은 카드뮴 납 구리의 함량', 한국해양학회지에 '해수오염원 추적자로서의 플루오르화물 이온 및 진해만의 플루오르화물 이온의 농도분포'등 공해연구논문을 계속 발표했다.

그런뒤 7월에 갑자기 수산청과 KIST공동으로 '우리나라 연안의 중금속오염농도가 외국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양학장이 사표를 제출하게 되었다.

사표압력

그로부터 7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해연구논문을 발표했다가 여러가지 형태로 어려움을 겪은 학자는 여러명에 이른다.

대학연구실의 젊은이들은 이점을 지적하여 '우리에게 다가오고있는 공해문제는 생에 대한 심각한 위협인데도 불구하고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공해문제의 지속적인 제기가 경제성장의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계속 탄압을 받아왔다. 일부 양심적인학자들이 공해문제를 거론하다가 곤욕을 치른 여러 사례들은 그러한 탄압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70년대 말에 공해관계논문을 발표했다가 강력한 사표압력을 받았던 서울에 있는 모대학의 K교수와 C교수의 케이스는 이방면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학자의 공해문제연구를 미숙하고 무책임한 조사로 돌려버린 결과가 된 케이스도 있다.

78년3월 전남 담양군 남면 만월리 무등부락 고은석씨 일가족6명이 전신이 마비되는 수은중독 증세로 입원한 사건이 생겼다. 당국이 대책을 서둘지않고 있는 동안에 공해전문연구기관에서 고씨 일가족과 한마을의 다른 주민등 11명을 조사한 결과 정상치의 3배나 되는 수은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고씨가족이 입원후 17일만에야 보사부는 병의 원인이나 병명은 밝히지 못한채 농약에 의한 수은중독이 아니라고 공식발표했다.

보사부는 "보건연구원의 측정기기가 한국에서 가장 정밀하며 기술의 숙련도및 검사물 처리과정에서 검사결과가 달리 나올수있다"고 전제, 고씨일가족 등으로부터 정상치의 3배나되는 수은이 검출되었다는 발표보다 공식발표가 정확함을 강조했다. 이 정확하다는 조사내용은 고씨등에게서 검출된 수은함량이 다른지역 주민의 것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이므로 정상으로 본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증상은 중금속 중독에서 뿐만 아니라 세균성질환일 경우에도 생길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발표로 고려대와 연세대등의 검출조사팀이 정밀하지 못한 기기로 미숙하게 검사처리한 격이 되고 말았다.

학자들의 공해연구가 자주 말썽이되자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던 몇몇 기관에서 공해문제연구부문에 대한 지원을 끊고 말았다. 학자들은 이 사태를 공해문제 연구를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연구비 지원 심사에 공해연구 전문가를 참가시키고 있는 것은 공해부문 연구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라고도 풀이했다.

다만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특정 케이스에 대한 연구조사를 학계에 의뢰하는 수가 있으나 이런 경우 보고서를 외부에 발표 못하도록 못을 박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기기나 시약을 구입할 자금이 달려 힘겹게 연구조사한 대학의 연구팀이 학회에 보고서를 내놓으면 또 문제가 되었다.

84년10월 중앙대 약대 정성분석화학연구실 손동헌교수 팀이 서울공기의 발암물질 '벤조피렌' 농도가 높다는 내용의 논문을 대한약학회에서 발표했다.

손교수는 이 논문을 발표한 뒤 강한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신문에 보도되었다.

85년에는 '온산공단 피해주민대책을 위한 조사연구'에 참여했던 학자가 내용을 외부에 자세히 알렸다하여 '어려운 경우'를 겪었다.

상반되는 조사결과

온산공단 일대 주민들이 팔과 다리, 허리에 심한 통증이 있고 온 몸에 반점이 생기며 눈이 충혈되고 통증이 심한 괴질을 호소하면서 '공해병' 논쟁이 일자 환경청은 1월19일 '온산공단 일대의 환경은 양호하며 주민의 질병은 공해병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3월12일 온산공단협회도 '온산일대의 공해는 주민들의 주장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4월에는 환경청이 온산에 파견한 역학조사반의 1주일간 조사를 통해 공단주민 1만여명중 통증을 호소하는 1천2백29명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이중 7백74명의 혈액과 오줌을 채취, 카드뮴 납 동 아연등 4개 중 금속의 함유량을 조사한 결과 모두 정상인의 기준치 이내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 부설 환경대책연구소, 한국 과학기술원부설 해양연구소,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세대등의 연구진 57명이 1년동안 온산공단지역 전반의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하여 7월8일 환경청에 제출한 최종보고서는 온산공단 주민 피해가 공해물질 누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조사보고서에서 온산공단에서 가동중인 중금속및 중화학공장에서 오염방지시설을 제대로 가동할 경우 환경오염 규제수준을 충분히 유지시킬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 실수나 고의로 가동 시키지 않아 대기및 하천을 오염시켰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이 지역 대부분의 공해배출업소가 공해방지시설을 가동시켜 공해요인을 처리하기보다 적발당한 뒤 벌금을 무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기오염 물질중 구리가 허용한 계농도 0.5마이크로 g/㎥보다 4.5배나 되었으며 농작물중 현미의 납 함량은 5.20~6.77ppm으로 전국 평균치 0.14ppm보다 37~38배나 검출되었고 수은은 0.02~0.04ppm으로 전국평균치 0.006보다 3~6배나 검출돼 오염상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주민들이 호소하는 자각증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급성피해가 예상되는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이주케하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다.

당국이 "온산공단 일대의 환경은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공장의 매연이 마구 뿜어나오고 있다


'어려운경우'라는 모호한 표현

이런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자 조사에 참가했던 학자는 '어려운 경우'를 겪어야만 했다. 그 '어려운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에 대해서는 '다 짐작이 가는 것 아니냐'며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용역을 받아 일한 결과에 대해 마음대로 발표 할 수 없고 비밀을 지켜야 하게 되어 있다'고만 설명했다. 이런 경우 학자들은 대개 질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애써 감추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학자의 양심으로 연구조사한 것을 죄지은 사람처럼 숨겨야 하는 괴로움은 행정적으로나 물리적인 압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풀이하는 교수도 있다.

서두에서 예를 든 원교수는 몇년전 타계했지만 다른 여러 학자들은 지금 증인으로 살아있다. 그 학자들은 지금도 환경오염문제를 다루는 것은 여전히 여러가지 형태로 견제 당하고 있다.

환경오염의 실상을 밝히기를 당국이 기본적으로 꺼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기오염은 여러가지 오염물질 중 아황산가스만, 수질오염은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 연안해수오염에서는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등 3개 부분에 대해서만 연평균 또는 일정기간(1~8월이라든지) 평균오염치는 정기공개(예:국회자료제출)하고 있다.

오염치는 연중 계절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대기의 경우 겨울철 오염도는 난방연료등으로 여름보다 3~4배 높다. 수질도 갈수기와 홍수기의 오염치가 크게 차이 난다. 따라서 최악의 때의 오염치를 공개하기 보다는 연평균치를 공개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오염물질별로는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대기의 경우 스모그 현상의 원인이 되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의한 옥시던트 오염치가 서울의 경우 전지역 평균치는 아직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기준을 초과하고 있는데 지역별 수치의 공개는 기피하고 있다. 또 서울지역 터널 안의 오염은 극심한데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다.

수질도 마찬가지로 중금속오염이 심한 지역의 오염치는 공개를 기피하고 있다.

이밖에 환경오염물질 배출업소의 명단 공개도 꺼리고 있다. 84년부터 전국 주요공단에 상설 단속반을 상주시켜 공단 입주업체의 폐수와 대기오염물질을 검사하고 있다. 이 검사에서는 대개 대기업이 많이 적발되는데 명단을 공개하기 꺼리며 국회에서 자료제출 요구가 있어야 마지못해 내놓는다는 것.

당국의 이런 기본태도 때문에 공해예방이나 발생한 사태에 대한 학자의 조사연구활동이 제약 내지 배제당한다.

이 때문에 생긴 부작용은 관계법률제정면에도 나타난다. 공해방지법 환경보전법등 관계법이 제정되어 있으나 학계의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제정되지 못하고 외국의 법조문이나 규제기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해 성안하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시책으로 보면 70년대이후 공해조사연구에 대한 당국의 방향은 두가지 흐름으로 풀이되고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국익에 해가 된다는 기준으로 다뤘고 이후에는 공해인식이 높아져 부분적으로 연구하도록 하기는 하나 국익에 해가되지 않는 범위안에서 연구자료를 토대로 개선해 나가도록하고 전적인 발표는 절제하도록 하고 있다고 본다"는 이름이 나기를 원치않는 Y교수의 설명이 이를 풀이해준다.

11월9일 국회 문공위에서 박 실의원(신민)이 공해보도를 통제키로 했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문공부장관은 이에대해 그런일은 없고 다만 북괴가 공해문제를 악용하여 올림픽 방해공작을 펴므로 좀 더 권위있고 정확한 보도를 해달라는 협조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공해보도문제가 이렇게 거론된 데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언론은 공해보도의 권위와 정확성이 과학적인 조사연구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또 그 조사연구 결과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공개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며 지금까지 진통을 겪어오고 있다.

취재원으로서 접근해야할 공해연구조사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일부기관에서 조사연구를 한다해도 그 결과 내용이 부분적으로만 발표되어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거나 그 부분발표를 전체로 오인하게 되면 권위있고 정확한 보도를 할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학자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조사연구한 공해문제가 발표됨과 동시에 보도되자 그 학자가 수난을 겪게되고 언론과는 거리를 멀리하게 되어 언론이 곤경에 빠진 경우도 있다. 이런 때 언론은 공해보도 문제에 앞서 공해연구의 자유가 먼저 보장되기를 바라면서 지난날에 있었던 사례들을 재음미해 보게되고 또 공해연구 기관의 현황이 어떤지를 살펴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해문제 연구기관 하면 국립환경연구소를 손꼽을수 있다. 이 연구소에는 박사 4명, 석사 33명, 학사 18명과 일반직원등 1백9명이 대기연구부, 수질연구부, 환경보건연구부등에서 일하고 있다. 시설로는 자동차 배기가스실험, 폐수처리실험, 폐하수및 분뇨처리기술연구, 열분해실험등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인원이나 시설면에서 국내 어느 기관보다 규모가 큰 이 기관이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공해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갖게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국내 여러곳에서 발생하는 공해의 진상을 조사하고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한채 어려운 전문지식을 동원해 은폐하고 호도하려는 인상을 주고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비 지원 적어

이밖에 각 대학의 연구실이 있어 종전에는 공해현장의 원인을 조사하여 밝히는등 활발했으나 연구비 지원도 없고 위축되어 현재는 주로 학문적인 연구에 비중을 두고 있다.

70년대 초 이후의 여러 공해소송사건을 통해서는 공해의 실상과 공해배출 기업의 진상은폐, 원고(피해주민)가 겪는 고통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공해소송은 짧아도 4~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고 그래도 결말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호남정유의 광양만 폐유오염사건은 72년에 소가 제기되어 76년에 원고승소로 끝났다. 한국동제련의 온산만 중금속오염사건은 79년에 제기되어 83년에 끝났다. 그러나 진해화학의 웅동만 공장폐수 오염사건은 72년에 제기되어 13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이런 공해소송사건을 맡아 수행했던 홍영기 변호사는 '대기업인 피고회사가 진상을 은폐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기 때문에 원고 주장을 관철하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 공해소송사건'이라고 말했다.

홍 변호사에 따르면 원고측이 공해원인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피고회사 지배영역 안에서 발생되어 원고가 접근하기 어려우며 이점을 피고회사측이 악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의 힘을 과시하여 연구진을 동원, 공해진상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케하여 유리한 증거로 제출하는 예도 있다는 것이다.

풍부한 자금과 기술진을 갖추고 있는 기업측, 더우기 중요한 데이타는 모두 쥐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주민에게 구체적이고 명백한 거증책임을 요구한다면 공해재판은 원고에게 불리하고 기업측에게만 유리하게 전개 될수밖에 없다.

개연성 입증의 문제

일본에서는 공해소송사건에서 인과관계에서의 개연성 입증으로 무과실책임도 묻게 되어있다. 전통적으로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유리한 주장을 한 쪽이 이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를 일본에서는 공해사건소송에서 신개연성설(간접증명이론)을 적용, 인과관계에서의 개연성 입증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신개연성설이 적용된 하급심판결이 여러건 나와 점차 정례로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개연성 입증이 인정되지 않고있는 상태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공해 사태와 공해소송사건을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발전된 법률이론이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홍영기 변호사의 주장이다.

오염지대 주민들의 피해는 명백한데 기업측이 그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버티는 동안에 몇년이 지나가 버린다. 그동안 주민들은 재산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오염지대에서 그대로 살 수 없어 살 길을 찾아 멀리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공해연구학자의 수난을 넘어 피해주민의 더 큰 쓰라린 수난상을 엿보게 한다.

문제는 공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공해연구가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공해연구는 까다롭고 시기 장소 연구자 또는 실험 기기의 조건 등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조사 연구하는 것이 가장 권위 있고 정확할 것인가. 대답은 누구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될 수 있는대로 자유롭게 연구하고 자유롭게 발표하게 하여 특정공해의 실태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당장의 국민적 저항감만을 의식하여 공해가 적다거나 무시해도 되는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망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서울대학 K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공해문제가 발생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를 은폐하거나 호도한다는 것은 한국의 장래를 암담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모름지기 모든 학문이 자유로와야 하듯, 공해문제 조사연구도 자유를 보장하여 공해를 예방하는데 기여하게 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국제기구의 공해 연구 실태

로마클럽은 지난 68년 4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오리베티'회사 부회장 '아우레리오 페체이'와 OECD전사무총장 '크리스텐센' 등이 제창하여 서구의 정치계 재계지도자와 학자들로 구성된 국제적인 미래연구단체로 공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과제인 식량위기 인기폭발 공해문제 핵문제등 25가지의 테마를 정해 각 테마마다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조사 연구케 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72년에 발표된 매사추세츠공대의 'D.메도우즈'의 논문 '성장의 한계'로 일약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76년에 발표된 '라즈로'의 '지구사회의 목표', 80년의 'O.가보르' 'U.콜롬보'의 '낭비의 시대를 넘어서' 등 보고서가 유명하다.

'성장의 한계'는 시스템 다이내믹스 방법을 쓴 세계모델 시뮤레이션에 의해 인류의 앞날에 놓인 위기의 성격을 대담하게 예측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경우 그것은 지구의 유한한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넘어 파멸적 결과를 갖어온다고 경고했다. 이런 전망에서 이 보고서는 인구증가와 경제의 성장을 감속시키고 안정균형 상태의 사회로 빨리 이행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에 따르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밖에 국제적인 움직임으로는 인간환경선언(70년 유엔에서, 선언) UN인간환경회의(72년6월 스톡홀름), 유엔환경계획(73년 나이로비에사무국 설치),OECD공해방지국제기준(72년 공해방지비 오염자 부담원칙 채택)등이 있어 범세계적인 조사연구와 방지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공해연구

미국에서의 공해연구활동은 '공해문제는 우리자신의 문제다'라는 명확한 시민의식이 자유로운 서민활동에서부터 밑바탕에 깔려 있다.

62년 살충제의 식품잔류와 환경오염 위험성을 한권의 책 '사일런트 스프링'으로 호소한 '레이첼 카슨'여사의 경우가 그러했고(케네디 대통령도 이책을 읽고 살충제사용규제를 단행키로 결의), 임산부가 사용하면 기형아를 낳는다는 살리도마이드(독일 개발 수면제) 판매허가를 여러가지 압력을 물리치고 단호히 거부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의사 '켈시'여사의 경우가 그랬다. 또 자연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DDT메이커를 고발하고 사용정지가처분까지 신청하여 법정투쟁에서 승리한 '야나콤'부인의 케이스가 그런것이다.

세계적인 주간지 타임은 69년8월1일호부터 '공해'란을 신설하여 대기오염, 농약, 세제, 수질오염, 방사성폐기물, 도시소음, 자동차배기가스문제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그중 DDT의 해독을 보도한 기사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

'살포된 DDT가 가까운 강이나 바다에 흘러들었을 때의 농도는 겨우 0.000003ppm, 그러나 해수중의 프랑크톤에 흡수되면 체내에서 0.04ppm이 된다. 이 프랑크톤을 먹고 사는 물고기체내에 들어가면 0.5ppm으로 농축된다. 다시 이 작은 물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큰 물고기 속에서는 2ppm으로, 그리고 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콘도르(머머리매·미국의 상징새)의 몸속에서는 25ppm이나 되어 실로 처음의 8백만배에 이른다."

식물(食物)연쇄에 의해 유해물질이 어떻게 농축되어 가는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DDT의 축적으로 미국의 심벌인 콘도르는 껍질이 없는 알을 낳게 되어 이대로 두면 멸종되고 만다고 경고했다.

이런 기사는 전문학자들의 자유로운 조사연구를 토대로 취재 보도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학자들의 조사연구활동과 과학이 뒷받침한 '액티비스트'의 반공해 민중운동이 번지자 닉슨대통령은 70년2월 '환경개선특별교서'를 의회에 보내고 공해전쟁에의 도전을 선언했다.

80년7월에는 대통령직속 환경문제위원회(CEQ)와 국무성이 방대한 학자를 동원하여 작성한 '2000년의 지구'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한 대책을 부르짖었다.

매사추세츠공대의 제임스 페이 교수는 미국의 공해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공해문제는 이제 미국의 영원한 정치문제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일본의 공해연구

59년'요츠카이치'시에서 발생한 '미나마따'공해병을 온갖 방해와 반대를 물리치고 철저하게 조사연구한 '쿠마모토'대학의 업적은 60년 10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국제신경병리학회에서도 높게 평가된 세계적으로 알려진 케이스다.

전후 일본에서는 산업우선정책 아래서 수많은 공해사건이 발생했다. 사건마다 학계의 과학적인 조사연구가 착수되었고 반대도 많았다. 심지어 산업우선을 해치는 것은 '국적'(國敵)이라고 들고 나올 정도였다. 그런속에서도 학자들이 땀 흘린 보람이 있어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어 재판을 받은 4대공해사건은 공해예방, 공해배상, 법률적용문제등에 획기적인 선례를 남겼다.

4대공해재판사건이란 ①71년9월28일에 판결된 니이가따 미나마따병 소송(원고 환자 가족 유족등 77명, 피고 '쇼와'전기공업), ②71년6월30일(제1차)과, 8월9일(제2차)에 판결난 토야마 '이따이 이따이'병 소송(원고 환자 유족 33명, 피고 '미츠이'금속광업), ③72년 7월에 판결된 요츠카이치 소송(원고 공해병 인정환자및 유족 12명, 피고 요츠카이치 석유콤비나트 6개사), ④72년10월에 판결된 쿠마모토 미나마따병 소송(원고환자 가족유족 1천4백, 피고 질소 회사)사건 등으로 각각 원고 승소가 확정됐다.

이중 요츠카이치소송과 이따이이따이병소송의 판결은 공해재판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앞으로의 소송에 미치는 영향이 클것으로 풀이된다.
요츠카이치 소송의 경우 대도시와 공업지대에서 일어나는 대기오염과 호흡기질환을 관련시켜 문제를 삼았다. 천식이 특이성질환과 달라 다른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대기는 물에 비해 확산 유동하기 쉬우며 도달경로를 포착하기 어려운 점 등 입증하기가 어려운데도 어디까지나 피해자 구제의 입장에서 인과관계에 엄밀한 입증은 필요치 않다하여 피고의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이는 집단공해구제에의 길을 열어 놓은 것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이따이이따이병 소송에서는 '카드뮴'과의 인과관계 인정이 주목되었으나 1심판결에서 뒷날 공해소송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된 역학적 방법을 지지하는 방향에서 엄밀한 과학적증명이 없는 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업측의 주장을 배재하고 피해자의 조기구제를 우선하여 다룬 것이다. 특히 고등법원 단계에서의 확정판결이어서 그 의의는 한층 크다. 또 공해피해의 손해액에 대해서도 환자측이 항소심에서 배로 늘린 청구액을 '헤아리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계산하여 구분할 수 없다고 하여 청구액을 전액 인정했다.

또 니이가따 판결에서는 피해자측이 접근할 수 있는 한계인 가해회사 외부의 공해배출에 대한 인과관계를 입증했을때는 그것을 충분히 부정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한 사건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쿠마모토 소송 판결에서는 공장폐수를 공장 밖으로 방출할 때는 사전 안전확인이 필요하며 그것을 태만히 한 공장측에 과실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런 판결이 모두 학계의 조사연구활성화가 뒷받침 된것이었다. 또 연구결과 보고를 토대로 공해백서를 의무적으로 발표공개하도록 법제화했으며 관련법률이 세분화되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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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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