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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르쿠스와 브래들리

하늘 북극의 움직임 잡아내다

5000년 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북쪽하늘에 떠있는 별 하나를 주목했다. 신기하게도 그 별은 하늘에 고정돼 있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그 별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바퀴씩 회전하는 게 아닌가.

바로 용자리 알파별이었다. 이 별은 현재 ‘투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4등급의 다소 어두운 별이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투반을 기준으로 정북을 잡아 건축물의 방향을 정하며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중국인들은 3000년 전, 하늘에 떠있는 별에 계급과 관직을 부여했다. 당연히 수많은 별 중에서 왕이 될 별이 필요했다. 그 별은 바로 하늘의 주인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인 ‘천주성’이었다. 천주성은 오늘날 작은곰자리 베타별로 2등급의 밝은 별이다.
현재 북극성으로 알려져 있는 작은곰자리의 알파별이 하늘의 북극에 자리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 전부터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극성이 바뀌는 원인인 세차운동은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쿠스(Hipparchus)가 발견했다.
 

현재 하늘의 북극에는 작은곰자리의 알파별9북극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3000년 전에는 처눚성(베타별)이 하늘의 북극에 있었다.


지축 운동 주기는 2만6000년

히파르쿠스는 지금부터 약 2200년 전 터키의 북서부 지역 니케아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가 당시에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그의 모습이 새겨진 주화가 발견된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히파르쿠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관측 천문학의 과학적 토대를 처음 마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tk

히파르쿠스가 1028개의 주요 항성(별)에 대한 위치 목록을 작성하던 때였다. 이전부터 내려오던 바빌로니아와 그리스의 기록과 그의 관측 기록을 비교하자 이상한 점이 드러났다. 별의 황위 좌표(지구공전궤도인 황도에서 남북으로 잰 각도)가 꾸준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지구의 자전축이 가리키는 방향, 즉 하늘의 북극이 바뀐다는 의미다.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던 히파르쿠스는 마침내 지구의 자전축이 약 2만6000년을 주기로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세차운동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태양의 위치를 면밀히 측정해 1년의 길이를 6.5′(1′=60분의 1°)내의 오차로 정확히 계산했다. 이 과정에서 태양이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는 기간이, 태양이 계절의 시작점(춘분점)으로 되돌아오는 기간과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세차운동의 영향을 보여주는 발견이었다. 히파르쿠스가 계산해낸 춘분점의 이동량은 46″(1″=60분의 1′)로 오늘날의 정확한 값인 50.26″에 거의 근접한 값이다.

히파르쿠스는 일식 관측 기록을 토대로 달이 지구에서부터 지구 반지름의 59~67배만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거리는 현재 측정값(지구 반지름의 60배)과 비교하면 매우 정확한 값이다. 또 별의 밝기를 6등급으로 나눠 가장 밝은 별에 1등급을 부여했다. 그의 업적은 그가 죽은지 약 300년 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책 ‘알마게스트’에 전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히파르쿠스와 브래들리.


브래들리의 외삼촌은 뉴턴의 친구

세차운동이 발견된지 1900년 뒤 근대에 들어와서야 세차운동의 상세한 모습이 드러났다. 여기에 영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의 공이 컸다.

브래들리는 1693년 영국 북동부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목사였던 외삼촌 파운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운드는 당시 유명한 과학자였던 뉴턴과 핼리의 친구였다. 때때로 뉴턴과 핼리를 위해 관측을 해주고 감사의 글을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했다. 브래들리는 외삼촌의 집에서 옥스퍼드대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천문학을 접하게 됐다.

그는 24세 때 외삼촌과 함께 태양의 시차를 관측해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를 구했다. 그 거리는 현재의 정확한 값에 비해 다소 큰 1억5000만~2억km라고 나왔으나 당시의 천문학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브래들리는 목성 위성이 목성 주변을 도는 주기를 계산하고 목성이 위성을 가리는 식 현상을 관측하는 열성을 보였다. 파운드는 그의 열정과 능력에 놀랐고 25세의 브래들리를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천했다.

브래들리는 대학을 졸업한 뒤 2년간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잠시 목사직을 맡기도 했으나 옥스퍼드대에 천문학교수 자리가 비자 후임자로 발탁됐다. 원래 교수 후보는 파운드였으나 목사직과 교수직은 겸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파운드는 브래들리를 추천했다. 브래들리의 남다른 직관력과 관측에 대한 열정, 성실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래들리는 고민 끝에 목사직을 포기하고 옥스퍼드대 천문학교수로 취임했다. 아마추어 천문가에서 천문학자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광행차와 시차운동^01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움직임 때문에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별의 위치가 실제 위치와 달라진다. 02 지구 자전축이 황극을 중심으로 2만6000년을 주기로 회전하는 운동(파란점선)이 세차운동이고, 더 작게 19년 주기로 흔들리는 움직임(빨간선)이 장동이다.


유람선의 깃발처럼 별 위치 바뀐다

당시 많은 천문학자들은 별의 시차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브래들리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친구인 아마추어 천문가 새뮤얼 몰리눅스와 함께 용자리 감마별을 정밀하게 관측하기 시작했다. 이 관측에 사용된 망원경은 초점길이가 무려 7.4m인 굴절망원경이었다. 별의 시차 현상에 따르면 천정에 있는 감마별의 좌표는 분명히 1년 동안 남북으로 크게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관측한 별의 움직임은 예상과 달랐다. 이상하게도 그 움직임은 거의 정반대였으며 그 크기도 거의 1′에 달했다. 아무도 이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템즈강에서 유람선을 탄 브래들리는 배에 매달린 깃발의 방향에 주목했다. 배에 탄 사람이 보는 깃발의 방향은 바람 방향에 의해 결정되지만 배가 방향을 바꿈에 따라 깃발의 방향도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사실에 근거해 놀라운 직관력을 발휘했다. 깃발의 방향이 바람과 배의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별의 위치(방향)도 별빛과 지구가 움직이는 방향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바라보는 별의 위치는 실제 위치가 아니라 지구의 움직임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광행차(光行差) 현상이다.

브래들리는 1729년 이 사실을 핼리에게 보고했고 이 발견 덕분에 브래들리는 최고의 천문학자 위치에 올랐다. 1742년 핼리가 죽자 브래들리는 최고의 영예인 그리니치 천문대장에 임명됐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보이는 북쪽하늘. 현재의 북극성이 하늘의 북극에 자리잡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 전부터다.


19년 주기로 자전축 흔들림

브래들리는 광행차 발견 이후로도 계속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관측했고 1747년 새로운 발견을 했다. 광행차에 의하면 별의 위치는 1년 뒤 다시 정확히 원래 위치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관측에 따르면 별의 위치는 당시에 알고 있던 세차운동의 영향을 빼고도 1년 전과 미세하게 차이가 났다. 브래들리는 이 현상을 설명하고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브래들리는 1727년부터 1747년까지 20년간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검토한 결과 별이 19년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현상은 장동(nutation)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동은 지축이 움직이는 세차운동의 일부로 지구가 완벽한 공이 아니라 지구 자전에 의해 적도가 부풀어 오른 형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축이 2만6000년을 주기로 커다란 원을 그리는 원인은 황도에 대해 지축이 기울어진 채 회전하는 과정에서 태양이 지축을 잡아당기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더 작은 19년을 주기로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현상은 달에 의한 영향이다. 이 때문에 별의 위치도 미세하게 변화하며 19년마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광행차와 장동. 이 두 현상은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브래들리의 노력에서 나온 성과였다. 그것도 한순간의 노력이 아니라 무려 20년에 걸친 집념의 결과였다.


시차 : 떨어진 두 지점에서 한 물체(천체)를 관측할 때 보이는 위치가 배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변하는 정도.
 

200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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