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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를 나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십여 년을 근무했다. 최연소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을 지냈고, 올해 4월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호수에 평화롭게 떠 있는 오리도 물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치열한 시간이었다.

 

-나의 성장기-

1996년
서울과학고 입학

2000년 
가톨릭대 의대 입학 

2016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2018년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조교수

2020년 
한양대 명지병원 
코로나19 역학조사팀장

2020년 
21대 총선 당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수학이 좋아 과학고로 진학했지만…


우리 집은 아버지의 외벌이 월급만으로는 딸 세 명을 키우기에 넉넉하지 않았다. 책 한 권이 귀한 시절이었지만, 생물교사였던 아버지 덕에 과학동아만큼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꾸준히 볼 수 있었다. 매달 새로운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학동아를 보면서 ‘아,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있다.


장래희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의 뜻도 있었고, 기독교 집안이라 어렸을 때부터 ‘현영이는 의료선교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픈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으니 의사가 되면 사회에 공헌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세 자매 중에서는 성적이 가장 좋은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수학을 특별히 좋아했다. 계산하는 과목은 외울 것이 적어 좋아했던 것 같다. 기억력이 나쁜 편이라 역사 등 암기과목은 완전 ‘꽝’이었다. 그래서 정말 악착같이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으로 버텼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진학한 과학고에서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학고는 정말로 치열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친구들이 한 데 모여 경쟁하다 보니 중학교에 비해 내신이 20~30점 깎이는 상황은 부지기수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 따라 내신등급을 조정하던 특수목적고의 비교내신제도 폐지에 반발해 학교를 자퇴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그때 자퇴한 친구들이 검정고시를 치르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성적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과학고에는 머리 좋은 것은 타고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천재적인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는데, 좀 노는 것 같은데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친구들을 보면 박탈감이 느껴졌다. 노력과 성적이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고나 할까.


특히 국제올림피아드에서 메달을 따오는 친구들을 보며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간혹 나는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기회를 얻어도 족족 다 떨어졌다. 어떻게 보면 동네에서는 공부 좀 하지만 전국 수준에서는 아니라는 게 증명된 뼈아픈 경험이었다.


대신 나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과학고에서는 소위 ‘노는’ 동아리였다. 그마저도 원래 별자리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 동아리에 떨어져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방황하는 별들’이라는 청소년 연극을 공연하고, 주변에 마침 대학로가 있어 연극도 정말 많이 봤다.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도 방송이나 무대 공포증이 별로 없다.


서울과학고의 많은 친구들이 2학년을 마치고 조기졸업 한 뒤 KAIST나 포스텍으로 진학한 반면, 나는 재수 끝에 가까스로 가톨릭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에서 보건학을 선택한 이유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제 뭐 하고 살지?”


안타깝게도 이런 고민은 의대에 진학해서도 이어졌다. 의대에서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전공 내용을 속속들이 외워 매주 시험을 치러야 했다. 나는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워낙 외울 내용이 많아 암기에 취약한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경쟁해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신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다양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외향적인 성격인 점이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주기적으로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평소 국제 구호 활동이나 재난 의료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사용 중인 국회의원 명함에도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사진이 담겨있다.


의료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5년 의대생 신분으로는 처음 떠났던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 현장이다.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 약봉지를 싸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엉덩이 주사를 놓는 정도는 직접 처치할 수 있게 됐다. 의료 활동의 정말 바닥부터 시작한 셈이다. 


전국적으로 활동 중인 의사는 10만 명 정도 되는데, 의료봉사는 내가 그중 한 명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의사들 대다수가 의학과 석‧박사과정을 밟는 것과 달리, 보건학이라는 좀 더 광범위한 전공을 선택한 것도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나는 보건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인 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역학은 질병의 발생부터 사망까지의 추이를 빅데이터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를 통해 질병의 예측모델을 만들거나 질병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통계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통계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꽤 고생스러운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때 배운 지식이 한양대 명지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학조사팀장으로 근무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세 번째 환자가 나온, 코로나바이러스가 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발생 초기, 멀쩡하던 환자가 갑자기 열이 나고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 폐렴 증상을 보이는 것이 중국 우한에서 보고된 질병과 유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질병 확산 초기일수록 사례를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곧바로 환자의 혈액과 체온, 혈압 등의 변화를 분석해 발표하는 성과를 올렸다.

 

 

롤모델 찾아 간접경험 쌓아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나는 항상 다양한 방향을 고민해보고 나의 적성에 맞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내가 꿈꾸는 과학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구체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예를 들어 여의사회에서 활동하면서도 국립암센터 등 국가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거나 간단한 고민을 상담하곤 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에서 근무 중인 지영미 위원에게 직접 e메일을 쓰고, 지역사무처가 있는 필리핀에 찾아가기도 했다.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선배는 나를 흔쾌히 맞아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줬다. 환자를 보는 전형적인 의사 외에 어떤 롤모델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과학을 전공하고 과학자로서의 삶을 기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갈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얘기하고 싶다. 나처럼 과학기술 정책을 논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기관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다.


과학과 관련된 단체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정책을 만드는 일도 꼭 필요한 일 중 하나다. 내게 ‘과학고 출신 1호 국회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때 정치계에 이공계 출신이 적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과학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과학계에서 일했던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의 생동감 있는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과학자의 경험을 살려 연구자들이 배고프지 않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Q1.  과학동아 구독 기간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3년 넘게 읽었다. 생물교사였던 아버지 덕에 과학 잡지는 항상 챙겨볼 수 있었다.


Q2. 기억에 남는 과학동아 기사가 있다면?
과학동아 기사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표지에서 본 우주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구 바깥에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과 동경이 생겼다. 나에게 과학동아는 과학적 탐구 정신을 배우고, 다양한 분야에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Q3. 과학동아에 바라는 점은?
과학동아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매체였다. 미디어가 발전하며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여전히 지면도 발행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과학동아가 앞으로도 꾸준히 미래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매체가 되길 바란다. 우리 아이에게도 꼭 선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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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영애 기자
  • 사진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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