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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 지구는 어디에 있을까




193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 대학 교수인 폴 디랙은 1902년생으로 당시 29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영국에서 제일가는 이론물리학자였다. 특히 양자역학 분야에서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그 앞에는 양자역학을 정립하고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놓은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정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디랙은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브리스틀대에서 공학을 전공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취직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학교에 남아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그를 아깝게 여긴 은사들의 도움으로 1923년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다. 여기서 디랙은 상대성이론과 당시 막 떠오르던 양자역학을 공부하게 된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고안해 최초로 양자역학을 수식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을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불리는 파동역학으로 기술했다. 당시 무명의 신참 학자였던 디랙은 ‘변환이론’을 고안해 이들 두 방정식이 결국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할 뿐이라는 걸 증명해 일약 스타가 됐다.

그 뒤 디랙은 독자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양자역학에 상대성을 도입한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디랙 방정식’이 탄생했다. 그런데 디랙 방정식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양(+)의 에너지와 함께 물리적으로 의미가 없는 음(-)의 에너지도 나온다는 것. 디랙은 음의 에너지를 해석하기 위해 고심했고 이런 저런 설명을 제시했지만 그를 라이벌로 생각했던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 같은 사람들의 강한 반발만을 불러일으켰다.



1931년 디랙은 음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영역의 빈 자리(구멍)에 양전하(+)인 반전자(antielectron)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제안했다. 전자와 양전자는 전하만 반대일 뿐 질량이나 반지름 같은 다른 물리량은 동일하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성자의 짝이 되는 반양성자(antiproton, 음전하)도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은 익숙한 용어인 반물질(antimatter)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정작 디랙 자신도 반전자가 당장 발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자연에서 반전자를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전자와 만나 바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공에서 실험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매우 안정할 수 있고 관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물질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쓰이고 있다. 양전자단층촬영(PET)이 대표적인 예로 양전자를 내놓는 방사성 동위원소 시약에서 방출된
양전자가 전자와 만나 소멸되면서 빛(감마선)을 낸다. 이 빛을 분석하면 체내 시약의 분포를 알 수 있어 암 같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우주선의 이상한 궤적
같은 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대학원생 칼 앤더슨은 우주선의 궤적을 추적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 물리학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가 자꾸 나왔다. 검출기의 자기장 때문에 음전하를 띠는 전자는 특정 방향으로 휘어져야 하는데 정반대로 휘어지는 입자도 검출됐던 것. 그는 세미나 참석차 영국에 가 있던 지도교수 로버트 밀리칸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자와 양의 입자가 동시에 방출되는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썼다.

이 현상은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입자가 있다고 해석하면 깔끔하게 설명이 되지만 문제는 그런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당시 디랙의 이론을 알지 못했던 밀리칸 교수는 만류했지만 추가 실험으로 결과를 재현한 앤더슨은 단독으로 학술지 ‘사이언스’(1932년 9월 9일자)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난센스’란 평가를 듣는 게 고작이었다. 1933년 그는 이 입자를 양전자(positron)라고 명명했다.

한편 1931년 영국에 있을 때 밀리칸은 앤더슨의 발견을 잠깐 언급했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케임브지리대의 물리학자 패트릭 블래킷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디랙의 반물질 이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우주선 검출장비를 만든 그는 역시 비슷한 패턴을 얻었다. 1932년 가을(아직 앤더슨의 논문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디랙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의 관측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대다수 참석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디랙조차 “오, 하지만 양전하 전자(양전자)는 오랫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것인데…”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론의 주창자조차 이처럼 신중했듯이 반물질의 발견은 물리학의 역사상 가장 믿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수학적 이론으로 예상한 입자가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디랙은 1933년 슈뢰딩거와 함께 양자역학을 정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반물질의 발견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때 그는 불과 31세였다. 한편 앤더슨은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193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역시 31세였다. 블래킷도 1948년 우주선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주선에서 어떻게 반전자가 만들어질까.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우주선 입자가 대기 중의 입자와 부딪치면서 그 충돌 에너지가 전자와 양전자 쌍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더 큰 운동 에너지를 갖는 두 입자가 부딪칠 경우 질량이 더 큰 입자-반입자 쌍이 만들어질 수 있다.

1955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서 마침내 양성자의 반물질인 반양성자가 발견됐고 이듬해 같은 곳에서 반중성자(antineutron)가 발견됐다. 1965년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과학자들과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과학자들은 각각 중양성자(중수소의 원자핵으로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로 이뤄짐)의 반물질인 반중양성자(antideuteron)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95년 CERN에서 마침내 처음으로 반물질 원자인 반수소(antihydrogen)가 관측됐다. 반수소는 음전하인 반양성자 주위에 양전하인 양전자가 분포해 있는 구조다. 2002년 CERN은 반수소 원자 수천 개를 한꺼번에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BNL의 중이온가속기에서 금원자핵을 충돌시켜 초입자원자핵의 하나인 초삼중양성자(양성자, 중성자, 람다입자로 이뤄짐)의 반물질인 반초삼중양성자(antihypertriton)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를 진행한 국제연구그룹 ‘스타(STAR)’에는 부산대 물리학과 유
인권 교수팀과 이창환 교수팀이 포함돼 있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10년 4월호 ‘빅뱅 직후 우주에는 쿼크가 흘렀다’ 참조).

‘네이처’ 5월 19일자에는 스타 그룹이 헬륨원자핵(알파입자)의 반물질인 반알파입자(anti-α particle)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반양성자 2개, 반중성자 2개로 이뤄진 원자핵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유인권 교수는 “반알파입자가 만들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생성되어 검출기에 직접 그 궤적을 남겼다는 일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라며 “당분간 이보다 더 무거우면서 방사성 붕괴로부터 안정한 반물질이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수소를 포획하라
이처럼 다양한 반물질의 존재가 확인되고 PET(양전자단층촬영)처럼 일상에서도 반물질이 쓰이지만 반물질의 정확한 특성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반물질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도 그 특성을 측정할 시간 동안 반물질을 ‘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로 이뤄진 우리 세상에서 반물질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질과 충돌해 빛을 내고 사라진다.

예를 들어 CERN에서 만든 반수소는 불과 수 밀리초만에 (물질로 이뤄진) 주변 벽에 부딪쳐 사라진다. 따라서 반양성자 주위에 분포한 양전자의 특성을 조사해 물질인 수소와 다른 점이 있는지 실험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네이처’ 2010년 12월 2일자에는 자기장을 이용해 생성된 반수소를 용기 가운데 모아두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반수소의 수명은 0.17초로 일상의 기준으로는 무척 짧은 순간이지만 입자물리학에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연구자들은 용기의 외벽에 자석을 교묘하게 배치해 용기 벽 근처는 자기장을 강하게 하고 가운데는 약하게 해 반수소 원자가 가운데에 모이게 했다. 이런 식으로 반수소 원자의 개수를 늘이고 수명을 충분히 길게 유지하면 이들이 물질인 수소와 똑같이 중력의 작용을 받는지, 전자기장의 효과는 어떻게 나오는지, 반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이 수소원자의 스펙트럼과 같은지 다른지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반물질의 존재를 찾는 연구에서 반물질의 특성을 규명하는 쪽으로 연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셈이다. 유인권 교수는 “우리는 물질로 이뤄진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실 빅뱅 초기 생성되는 물질-반물질 쌍에서 왜 물질만 살아남아 지금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
터리”라며 이런 연구가 그 해답을 주기를 기대했다.

반우주는 존재하는가
“우리가 어떤 발견을 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소립자인 프사이(ψ) 입자를 발견해 쿼크 이론의 확립에 도움을 준 공로로 197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 MIT의 사무엘 팅 교수는 우주관에서는 비주류다. 물리학자 대다수는 우주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팅 교수는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로 이뤄진 별이나 은하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반물질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았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떻게 물질과 반물질이 분리돼 각자의 천체를 이루며 존재하는가’라는 역시 만만치 않은 의문이 생기지만.

놀랍게도 팅 교수는 이런 궁금증을 관측을 통해 확인해보려는 거대 프로젝트(16개 나라, 600여 명의 과학자가 참여)를 지휘하고 있다. 무려 20억 달러(약 2조 원)가 드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AMS-02(Alpha Magnetic Spectrometer, 알파자기분광계)라는 분석장비를 국제우
주정거장에 설치하는 일이다. 17년의 준비 끝에(프로젝트가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인데버호가 AMS-02를 싣고 5월 16일 발사됐다.

우주공간에서는 대기가 없기 때문에 우주선 입자를 고스란히 검출할 수 있다. AMS-02는 전하를 띤 우주선을 검출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는 물질 뿐 아니라 반물질도 많이 포함돼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는 저 멀리 반물질로 이뤄진 별과 은하에서 온 다양한 원자핵들도 검출될 수 있다는 것. 만일 반헬륨원자핵뿐 아니라 반탄소원자핵, 반산소원자핵도 발견된다면 정말 우주 어딘가에는 반물질로 이뤄진 별과 은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대해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많다고 한다. 이 정도 실험이라면 검출기를 실은 기구를 띄워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AMS는 지금까지 우주공간에 나가는 입자검출기 가운데 가장 정교한 장비다. 내부에는 지구 자기장의 3000배에 이르는 자기장이 형성돼 입자의 이동궤적을 크게 휘게 할 수 있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우주선 입자의 실체를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 폴 디랙은 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연설에서 우주 어딘가에는 반물질로 이뤄진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뒤 주류 물리학은 우주가 물질로 이뤄져 있다고 가정했으므로 디랙의 코멘트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어쩌면 디랙의 이 말이 그의 또 다른 예언으로 부활하지 않을까.

“지구(그리고 아마도 태양계 전체)가 주로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양성자로 이뤄져 있다는 걸 우연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로 양전자와 음전하 양성자(반양성자)로 이뤄진 다른 별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사실 별들이 절반씩 각각의 종류로 이뤄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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