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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힘, IBS ] 나노 패치 뭍여 여드름 잡고 스마트렌즈로 스트레스 측정

 

몸과 전자기기가 융합돼 스스로 진단하고 자가 치유하는 기술은 SF영화의 단골 소재다. 영화에서는 팔에 혈액 성분을 측정하는 센서를 이식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암이나 각종 희귀병을 나노 로봇으로 쉽게 치료한다. 


실제로 나노의학 분야에서는 이런 SF영화와 흡사한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전자부품을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수준으로 작게 만들고, 인체에 부착하기 위해 투명하면서 신축성 있는 물질을 찾고 있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도 최근 이와 관련한 나노 기술을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두 가지 나노 기술은 일상생활에 활용될 만한 수준까지 구현해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나노 패치_ 피부에 열 내는 첨단 패치 

 

얼굴에 여드름이 볼록 올라왔을 때 붙이는 패치에는 항균, 진정 성분이 들어있다. 우리 연구단은 이런 특정 성분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여드름을 치료하는 패치를 개발했다. 피부에 따뜻한 열을 가해주는 온열 요법을 이용한 나노 온열 패치다. 


피부에 열을 가하면 혈액순환과 물질대사가 촉진된다. 염증이 완화되고 콜라겐 분자 운동이 활발해져 약물의 효과가 높아진다. 열을 내는 패치는 이미 개발됐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부피였다. 원하는 시간에 온도를 정확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히터 전극, 배터리, 무선 통신 전자회로 등 필요한 부품이 많다. 이들을 피부에 잘 붙어있게 하려면 얇으면서도 신축성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기술은 그렇지 못했다. 


연구단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탈리아 밀라노대와 함께 신소재인 ‘메탈릭 글래스(Metallic glass)’로 이런 한계를 극복한 패치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 5월 4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21/acs.nanolett.0c00869 


메탈릭 글래스는 구리(Cu)와 지르코늄(Zr) 금속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된 비정질 합금이다. 일반 금속보다 신축성이 월등히 뛰어나며 상온에서 쉽게 녹슬지 않는다. 연구팀은 메탈릭 글래스를 그물 모양의 나노 섬유 형태로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히터 전극과 무선 안테나를 제작했다. 


투명 배터리도 직접 개발했다. 전해질을 잉크처럼 써서 부품 위에 찍어 내는 프린팅 기법을 이용해 은(Ag) 잉크를 격자무늬로 찍었다. 배터리는 무선 안테나와 직접 연결했다. 패치 내부의 무선 안테나가 스마트폰 등 외부 전력을 무선으로 전달받아 배터리를 충전하는 원리다. 


배터리와 히터 사이에는 스위치를 탑재했다. 피부에 부착한 상태로 패치를 가볍게 누르면 스위치가 켜져 열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가 나노 크기로 제작돼 눈에 잘 띄지 않아 시각적으로 일반 투명 패치와 비슷하다. 


온열 패치의 성능은 실험으로 입증됐다. 온열 패치를 사람 손등에 부착한 뒤 1분 정도 열을 가하자 수분 흡수도가 1.9배 높아졌고 혈류량은 13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온열 패치를 의료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비단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 유리 김 서림 방지 히터, 스마트 가전기기, 방한복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사실 온열 패치 개발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필자가 이끄는 연구실의 박사과정 연구원이 2018년 열린 미국재료학회(MRS)에서 투명 전극과 관련된 연구를 발표 했는데, 이를 본 이탈리아 밀라노대에서 메탈릭 글래스 소재의 나노 패치를 같이 개발해보자고 먼저 제안해왔다. 제안을 한 사람도 박사과정 연구원이었다. 


이 연구원은 밀라노대 에너지학부 소속이었다. 밀라노대 에너지학부는 첨단 합금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팀이지만 그동안 한국 연구팀과는 교류가 없었다. 


또 대부분의 공동 연구는 교수의 교류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공동 연구는 초면이었던 두 박사과정 연구원이 시작한 것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에는 이탈리아와 샘플을 주고받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 이따금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샘플과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다. 

 


스마트 콘택트렌즈_ 눈물 속 코르티솔 측정

 

나노 온열 패치가 치료에 집중한 기술이라면 두 번째로 개발한 기술은 진단을 위한 의료기기다. 연구단은 스트레스 수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7월 8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adv.abb2891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적으로 불릴 만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평소에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면역 시스템을 저하하고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자신의 스트레스 수치를 파악하려면 병원을 찾는 방법밖에 없다. 병원에 가지 않고 손쉽게 스트레스를 측정할 수는 없을까. 


연구단은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눈물에서 힌트를 찾았다. 콘택트렌즈로 눈물에 포함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측정하면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단은 연세대, 명지대 연구팀과 힘을 합쳤다. 


연구팀은 우선 벌집 모양의 탄소 구조체인 그래핀으로 트랜지스터 구조를 만들었다. 트랜지스터는 전자 신호를 증폭시키는 소자다. 그래핀은 전기전도성이 높은 데다 투명하고 휘어지기까지 해 새로운 트랜지스터 재료로 주목받아 왔다.


그래핀 트랜지스터는 코르티솔을 감지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그래핀 표면에 코르티솔이 결합하면 전극에 흐르는 전류의 저항이 미세하게 변한다. 저항의 변화를 측정하면 코르티솔의 농도를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은(Ag)을 그물 모양의 나노 섬유로 제작했다. 은 나노 섬유가 전극과 무선 안테나 역할을 하게 했다. 은은 잘 휘어지고 투명하기 때문에 콘택트렌즈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스마트폰과 무선 통신을 할 수 있는 근거리무선통신(NFC) 칩도 콘택트렌즈에 탑재했다. 마지막으로 초정밀 3D 프린팅 공정으로 배선을 인쇄해 센서, 안테나, NFC 칩 등 각 부품을 연결해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완성했다.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눈에 착용한 뒤 눈 가까이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콘택트렌즈의 은 안테나가 스마트폰으로부터 전력을 받아 그래핀 센서가 작동하고 코르티솔 농도가 측정된다. 측정값은 NFC 칩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전송되고, 사용자는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사람이 착용한 상태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또 렌즈에서 발생하는 열과 전자파는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었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일반 콘택트렌즈처럼 착용하지 않을 때는 렌즈 보관액에 두도록 현재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증강현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다. 이번 연구로 콘택트렌즈에 센서를 탑재할 수 있으며 무선 통신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SF영화에 등장하는 첨단 콘택트렌즈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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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위원(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 에디터

    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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