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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의 비하인드 로켓] 나로호 운명의 9분, 대한민국에 '성실실패'란 존재하는가

‘5, 4, 3, 2, 1, 0, 쿠쿠쿠쿠쿵’.


자동 발사 초읽기 시계가 0을 가리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나로호 1단 엔진에서 수증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엔진이 가동하며 분출되는 2000도짜리 연소 가스가 발사대를 녹이지 않도록 초당 1400L의 물을 쏟아부어 생긴 수증기였다. 


곧이어 나로호는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이륙했다. 그 진동은 발사대 반경 2km 땅을 뒤흔들었다. 날개 하나 없는 140t(톤) 발사체가 중력을 거스르며 상승하더니 이내 작은 점으로 멀어졌다. 발사통제동에 있던 연구원들 모두 나로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나로호의 역사적인 첫 비행이었다.

발사 540초 후 위성 분리 성공, 그러나… 

 

발사통제동은 흥분으로 들썩였다. 일주일 전 발사 시도에서는 이륙 7분 56초를 남겨두고 자동 발사 초읽기 시계가 멈춰 아쉽게 나로호를 발사대에서 철수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900초가 순조롭게 지나갔다. 날씨도 우리를 돕는 듯 화창했다. 그런데….


“페어링(위성보호덮개) 한쪽이 분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륙하고 215초가 지날 무렵 이상 조짐이 포착됐다. 나로호 2단에 부착한 카메라에서 나로호 2단의 한쪽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페어링 분리는 나로호 비행 중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벤트다. 이륙 215.4초 후 페어링이 분리되고, 231.7초에 1단 분리, 395초에 2단 엔진(킥모터) 점화, 452.7초에 2단 엔진 연소 종료, 540초에 위성 분리가 차례로 이뤄지도록 나로호 탑재 컴퓨터에 사전 프로그램된 상태였다. 


페어링은 두 개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데, 계획대로라면 고도 177km 상공에서 양쪽이 동시에 떨어져 나가야 했다. 하지만 한쪽 페어링은 끝내 분리되지 않고 있다가, 위성 분리가 이뤄진 다음에야 분리됐다. 


이는 위성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려면 초속 약 8km로 비행해야 한다. 그런데 페어링 한쪽의 무게(약 330kg)가 늘어난 탓에 2단 로켓이 뒤집혀 회전하는 텀블링 현상이 일어났다. 결국 위성이 속도를 초속 6.2km밖에 내지 못했다.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위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비행궤적을 계산해보니 호주 북부의 사막지대 방향으로 낙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하는 물체가 300km가 넘는 높은 고도에서 초속 5km 이상의 속도로 추락하는 경우 공기역학적 마찰열에 의해 거의 다 타버린다. 때문에 잔해물이 지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절반의 성공 vs. 무능한 실패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번 발사가 ‘절반의 성공’이나 ‘부분 실패’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비록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페어링 분리 외에 1단과 2단의 성공적 분리, 2단 엔진의 안정적인 연소, 그리고 위성 분리까지도 차질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위성이 궤도 진입에 실패한 뒤 낙하하는 과정에서 배운 점도 있었다. 우주에서 대기권으로 물체를 재진입시키는 기술은 발사체 연구에서는 매우 민감한 영역에 속한다. 위성 발사체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가장 큰 차이가 우주로 보낸 물체의 대기권 재진입 여부다. 즉, 재진입시키면 미사일이고 재진입시키지 않으면 위성이다. 따라서 재진입과 관련된 실험을 수행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일인데, 위성이 추락하면서 대기권에 재진입했고 이는 재진입에 대한 러시아의 경험을 습득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발사 3일 뒤 꾸려진 나로호 발사조사위원회는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와 연구진의 무능함에 조사를 집중했다. 발사조사위원회는 5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페어링이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이유를 2가지로 추정해 발표했다. 


하나는 발사 후 214.4초에 페어링 분리 명령이 발생한 이후 페어링 분리장치로 고전압 전류가 공급되는 과정에서 전기배선장치에 방전이 생겨 페어링을 분리해낼 화약이 제대로 폭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다른 하나는 화약은 정상적으로 폭발했으나 이후 페어링 분리장치가 불완전하게 작동해 기계적 끼임 현상 등의 이유로 페어링 한쪽이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발사조사위원회는 그에 따른 개선방안도 제안했다. 전기배선장치에 방전이 생기지 않도록 연결 부위를 몰딩(moulding) 처리하고, 페어링 분리 화약의 기폭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기폭회로 구성을 보완하며, 발사체 조립과정에서 페어링 분리장치의 조립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발사조사위원회 위원들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 사이에는 깊은 불신의 골이 생겼다.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국내에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발사해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사고조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발사조사위원회에는 나로호 개발에 직접 참여한 연구원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해외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사고조사는 발사체 개발 경험이 많은 해외에서도 어려운 주제였다. 1950년대부터 일본의 발사체 개발을 이끈 고다이 도미후미(五代富文) 박사는 ‘개발 초기 많은 실패가 있었는데, 어떻게 사고조사를 했는가’라는 질문에 “초기에는 사고가 일어나도 사고조사를 할 수 없었다”며 “전문가가 없는데 누가 조사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나로호를 함께 쏘아 올린 러시아측 전문가들도 “사고조사는 개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실패는 연구원들이 마치 죄인이 된 듯 주눅들게 만들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연구원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유명무실한 실패 인정 문화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나로호 개발에 참여한 모든 연구진이 무능하다고 낙인찍히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나로호가 이륙할 때 약간 기우뚱했는데, 그때부터 조짐이 안좋았다’ ‘나로호 엔진이 바뀌었다’ 등 괴담에 가까운 소문도 돌았다. 


나로호는 이륙할 때 실제로 북동쪽으로 잠깐 기우는 게 맞다. 이륙 직후 10여 초간 회피 기동을 하기 때문이다. 나로호에서 분출되는 화염이 발사대 시설에 손상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로호는 몸을 살짝 틀어 화염의 방향을 발사대 바깥으로 돌리도록 설계됐다. 이 모습을 보고 부정적인 조짐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과학적인가. 


또 몇몇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연소시험을 진행한 엔진과 실제 나로호에 적용된 엔진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엔진 개발기업인 에네르고마시가 2009년 7월 30일 연소시험을 진행한 엔진은 RD-191로, 나로호에 탑재된 RD-151 엔진과 다르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러시아측 인증서를 공개하고서야 소문은 겨우 잠잠해졌다. 인증서는 러시아가 연소시험을 진행한 엔진은 나로호와 같은 RD-151이고, RD-151은 RD-191을 나로호에 맞게 튜닝한 엔진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로호 재발사 예정일을 지정하는 시점에는 나로호를 추운 날씨에 발사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겨울로 갈수록 발사가 가능한 시간대인 ‘발사 윈도’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계절에 관계 없이 발사는 가능하다. 심지어 나로호는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를 사용하는데, 날씨가 춥다고 발사할 수 없다는 것은 발사체의 작동원리와 운영과정을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였다.

 
수많은 논란을 매일매일 해명해가며, 우리 연구원들은 도전적인 연구를 한다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고, 실패하면 한없이 비참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성실하게 연구 과정을 진행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성실실패’로 인정해 모험적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보호한다는 말들이 실로 공허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로호 발사를 끝내 성공시키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어둡고 긴 터널의 시간이었다. 

202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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