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미술품 경매로 유명한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특별한 돌이 경매품으로 나왔다. 공식 명칭은 ‘NWA 12691’, 달 운석이었다. 무게는 약 13.5kg. 1960년대 미국의 아폴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가져온 월석(月石)보다 월등히 크다.
이 운석은 2년 전 유성우와 함께 사하라사막에서 발견됐다. 크리스티 측은 보도자료에서 “지구에서 다섯 번째로 큰 월석”이라고 설명했다. 희귀한 이 월석의 경매 시작가는 무려 200만 파운드(약 30억 원)였다.
오래전부터 운석은 귀한 물건으로 취급받았다. 고대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보석으로 여겨져 희귀하고 값진 물건 대접을 받았다. 한 예로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왕은 운석으로 칼을 만들어 소지했다. 1922년 투탕카멘 미라가 묻힌 무덤이 발견됐을 때 무덤에는 각종 금은보화와 함께 운석으로 만든 단검이 있었다. 칼날이 운석이라는 사실은 2016년 이탈리아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doi: 10.1111/maps.12664
이렇게 귀한 운석이 국내에서 주목받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14년 3월 9일 오후 8시, 경남 진주 일대 하늘은 불바다가 됐다. 다음 날 진주 지역 4곳에서 커다란 운석이 발견됐다. 국내에서 운석이 발견된 건 1943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 떨어진 ‘두원 운석’ 이후 처음이었다. ‘진주 운석’이 생긴 것이다.
당시 진주 운석의 가치가 수억 원에 이른다는 등 운석의 적정 가격을 놓고 시끄러웠다. 진주 운석에 예상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기자 운석으로 일확천금을 노려보려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운석신고센터 관계자는 “진주 운석 발견 이후 지금까지 매년 평균 500건 정도 운석을 발견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며 “그러나 진주 운석 이후 운석으로 밝혀진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말했다.
운석 판별하는 ‘검은 흔적’
조금이라도 독특하게 생긴 돌멩이를 보면 운석인지 의심할 법하지만, 사실 운석 연구자들은 육안으로도 운석 여부를 일차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 박창근 극지연구소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선임연구원은 “겉모습의 특징을 보고 운석인지 아닌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석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표면에 있는 용융각(Fusion Crust·마찰시 발생하는 열로 운석이 녹았다가 식으며 운석 겉표면에 생기는 층)이다. 박 선임연구원은 “지구 밖 에서 온 운석이라면 반드시 용융각 흔적이 존재해야 한다”며 “대기권을 통과할 때 강력한 열 때문에 운석 표면에 최소 수mm 두께로 까맣게 그을린 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제아무리 희귀한 운석도 검증을 받기 전에는 한낱 돌멩이에 불과하다. 운석이 발견되면 각국의 전문가들은 운석 여부를 판별하고 분석해 국제운석학회에 최종 검증을 요청한다. 국제운석학회로부터 이름을 부여받아야만 비로소 운석이 된다.
대개 현미경을 통해 광물 종류, 화학 조성 등을 분석하는데, 이때 산소동위원소 분석 결과가 핵심이다. 산소(O)는 중성자에 따라 동위원소가 여러 개 있어 이 산소들의 조성비를 확인하면 어떤 행성에서 온 운석인지 알 수 있다. 태양계 물질마다 산소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달은 지구와 산소 동위원소가 동일하다.
2020년 7월 19일 기준 국제운석학회에는 6만3904개의 운석이 정식으로 등록돼 있으며, 7533개의 운석이 명명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운석학회는 두원 운석, 진주 운석처럼 운석이 떨어진 지역의 지명을 따 이름을 짓는다.
태양계 나이, 아옌데 운석으로 확인
진주 운석이 발견된 뒤 최변각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팀이 운석을 분석했다. 우라늄-납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으로 운석의 나이를 측정하자 45억9700만~44억8500만 년 전에 생긴 물질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국제운석학회는 이 운석의 이름을 ‘진주(jinju)’로 공인했다.
진주 운석은 ‘오디너리 콘드라이트(ordinary chondrite·정상구립운석)’의 한 종류다. 오디너리 콘드라이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운석 중 80% 이상 차지한다. 구조가 단순하고 워낙 흔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운석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는 비슷한 운석이 우리 돈으로 10만 원 내외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다만 국내에는 운석이 잘 떨어지지 않아 진주 운석이 기록의 의미는 있다.
운석의 기원과 종류를 알기 위해서는 운석 일부를 잘라 내부를 확인해야 한다. 박 선임연구원은 “수십만 분의 1g만 있어도 충분히 분석이 가능하다”며 “연구자들이 국제운석학회에 연구용 운석을 요청하면 빌려주거나 일부를 잘라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운석은 종류에 따라 내부에는 빗살 모양의 비드만스태튼(Widmanstatten) 무늬, 콘드률(chondrule·우주 공간에서 먼지가 뭉쳤다가 자체 열로 녹으며 만들어진 구형 덩어리) 등 운석만의 고유한 구조가 나타난다. 박 선임연구원은 “오디너리 콘드라이트 같은 운석은 내부에 열변성이 자주 일어나 여러 환경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섞여 균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며 “콘드률의 다양성이 적어 분석할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한편 운석 연구자들의 귀가 쫑긋해질 만큼 중요한 운석도 있다. 대표적으로 1969년 멕시코 대기중에서 폭발해 수천 조각 떨어진 아옌데 운석(Allende meteorite)이 있다. 아옌데 운석 내부에는 서로 다른 점무늬, 즉 콘트률이 수없이 많다. 모양과 색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은 물질들이 변성 없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에 따라 화학 조성 성분도 다르다는 뜻이다. 가령 밝은색을 띠는 무늬가 많으면 철이 많은 지역에서 생긴 물질이라는 뜻이다. 운석에 태양계의 역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2000년 캐나다 타기쉬 호수에 떨어진 타기쉬 운석은 물과 유기물이 굉장히 많이 함유된 운석이다. 그전까지 발견된 적 없는 특성의 운석이라 연구 가치는 더욱 컸다. 운석 일부를 습득한 사람이 무려 75만 달러(약 9억 원)에 팔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번에 경매에 오른 NWA 12691과 같은 달 운석이나 화성 운석은 지구에서 잘 발견되지 않아 희소성이 크다.
남극과 사막의 ‘운석 헌터’
운석은 우주 공간을 떠돌던 유성체가 지구로 유입돼 지구 대기 마찰에 타고 남아 지표면에서 발견된 유성의 잔해물이다. 지구로 유입될 때는 종종 하늘이 번쩍이거나 굉음이 동반된다.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운석은 흔한 오디너리 콘드라이트였지만, 공중 폭발을 일으켜 인근 주택의 유리창이 전부 깨졌고, 충격파가 지구 반대편에서도 측정될 만큼 강력했다. 이런 화제성 덕분에 운석의 잔해가 금보다 비싸게 거래됐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 중 일부에도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운석은 연간 수백 개가 떨어지지만, 운석이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에 유럽 일부 지역과 사막 지역에는 감시 카메라를 여러 곳에 설치해 두고 유성우를 포착한다. 물체가 포착됐을 때 여러 군데에서 찍은 사진을 조합하면 운석의 궤도를 파악해 낙하지점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궤도를 계산하면 출신 행성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발견된 운석 대부분은 남극이나 사막에서 발견되 것들이 많다. 운석이 잘 떨어지는 곳이어서는 아니다. 바다나 산림처럼 사람이 가기 힘든 곳이나 도심처럼 복잡한 곳에는 운석이 떨어져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반면 남극과 사막에서는 표면이 검게 탄 까만 돌멩이가 눈에 잘 띄어 비교적 발견이 잘 된다. 1969년 일본 탐사대가 남극에서 운석을 처음 발견한 이후 각국 연구자들은 남극에서 운석 탐사를 해오고 있다.
남극은 하얀 빙하 덕분에 까만 운석이 눈에 잘 띈다. 더욱이 빙하가 이동해서 발견하기 쉬운 점도 있다. 빙하가 이동하면서 돌멩이가 모이기 때문이다. 빙하가 흐르다가 산맥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멈추는데, 빙하는 계속 흐르려는 속성이 있어 결국 산맥 위로 치솟게 된다. 특히 남극은 바람이 강하고 건조해서 산맥을 따라 오른 빙하의 증발도 빠르다.
증발과 동시에 아래에서는 빙하가 계속 위로 치고 올라오니, 다른 빙하에 떨어진 운석들이 이런 빙하의 이동에 따라 한곳에 모이게 된다. 덕분에 한 장소에서 운석 수천 개가 발견되기도 한다. 현재 지구에서 발견된 6만 개가 넘는 운석 중 70%가량이 남극에서 발견됐다.
연구 목적으로만 방문할 수 있는 남극과 달리 누구나 갈 수 있는 사막에서도 운석 탐사가 이뤄진다. 그래서 운석을 찾으러 다니는 ‘운석 헌터’라는 직업(?)도 있다. 운석 헌터는 말 그대로 운석을 주워 팔아 돈을 번다. 이때 발견된 운석의 5~10%는 연구용으로 무조건 기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박 선임연구원은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탐사선을 보내 소행성, 화성, 달 등의 시료를 분석하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운석은 우주에 가지 않고도 모델링이나 관측이 아닌 실물로 다른 행성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운석 연구의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