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5월26일 서울대 조선공학과 학생회 주최로 열린 「한국조선공업의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 가운데 주제발표자의 한사람이었던 강성진군의 조선산업에 관련된 내용만을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조선산업은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엄청난 빚더미에 눌려 정부도 기업주도 손떼고 싶어하는 가운데 발버둥치는 '대우조선사태'를 보노라면 이말이 실감난다.
작업복을 입은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앞세우고 데모를 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주위로부터 조선공학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정말 한국의 조선산업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나보다'
이말은 언뜻 그러듯해 보인다. 분명 20여년동안 지속돼온 국내 조선산업은 일대 구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의 저변에는 현상적인 관찰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0년대초 조선산업이 호황의 절정에 달했을 때 한때 전체 수출액수의 30%선에 육박한 적이 있다. 당시 조선공업은 우리나라가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산업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선박건조량을 기록하고 있다.
신 유망산업(?)
오늘의 한국 조선산업을 이끌고 온 주역은 엔지니어들과 열악한 근로조건속에서도 묵묵히 일해온 현장노동자들이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별히 조선산업에만 국한되고 있는 사실이 아니다. 단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국내조선소의 거대 규모와 종합산업으로서의 사회적 파급효과, 그리고 80년대 중반 몰아친 세계적인 조선불황과 맞물리면서 그 효과가 증폭되었을 뿐이다. '분배의 정의'는 실현되야 한다. 수십년동안 산업역군으로 오늘의 부를 축적해온 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문제는 그동안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성장일로를 걸어온 한국의 조선공업이 이제까지의 안일한 자세를 탈피하고 얼마나 기술집약적인 산업구조로 변신해 가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앞에 펼쳐진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생각할 때 조선산업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그 가까운 사례를 일본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산업이든지 급변하는 현대의 기술혁신속에서 쇠퇴해가는 부문과 유망하게 떠오르는 부문이 교차한다. 일례로 사양산업으로 대표되는 섬유와 철강의 경우 최근 고분자섬유와 신금속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조선공업도 냉동선박과 쾌속선 및 해양구조물 등 얼마든지 미개척의 분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바다를 이용하고 바다를 통해 서로간의 왕래를 계속하는 한 조선산업의 몰락은 상상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으로 바다지향적인 지리적 요건과 이만큼 축적된 산업역량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중화학공업의 선두주자
조선공업은 기계 철강 전기 전자 해양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높은 연쇄효과를 지니는 종합조립산업이다. 다른 어떤 제조업보다도 큰 규모의 구조물을 다루는 까닭에 조선공업은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적이도 자본집약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제조공정이 대단히 복잡하고 위험한 탓으로 기술집약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이와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조선공업읕 산업시설이 미비한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어느 정도 경공업중심의 공업국가로 기틀를 세운 다음 중진국 대열로 오르는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조선공업이 시작되었던 것은 1929년 울산 방어진에 방어진철공소가 설립되면서 부터이다. 1945년 일제로 부터 해방되던 해에 모두 56개소의 조선 및 기자재업체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의 총 신조선 건조능력은 불과 2만t 즉 오늘날 대양을 횡단하는 일반적인 화물선 한척도 만들 수 없는 매우 작은 규모였다.
해방 이후 1950년까지 1백20여군데롤 늘어난 조선공업은 6·25로 인해 부산 이외 지역의 시설들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 후 복구작업과 6·25 당시의 전시특수경기 등으로 인해 조선업체수는 계속 늘어나 1959년에는 모두 198개소로 증가하였다. 건조능력은 50년대초 1만5천t까지 줄었으나 1961년에는 4만5천t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현대적인 배들에 비교한다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조선공업은 70년대에 들어 비로소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73년 현대중공업의 설립은 한국 조선공업 역사에 큰 전기를 마련한 중대사건이었다. 아직 시설공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첫 수주, 그것도 이전까지의 모든 시설을 총동원해도 만들 수 없었던 26만톤급 대형유조선. 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들이 기적처럼 실현된 것이다. 이는 조선산업에 종사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루어낸 쾌거였으며 이로 인해 한국의 조선공업은 국제적 공신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낮은 임금수준과 결합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한국의 조선공업은 현대화와 대형화로 줄달음치게 된다. 더나아가 조선공업의 발전은 한국경제가 경공업과 농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중화학공업 위주의 선진국형 산업구조 이행하는데 발판이 되었다.
이렇게 성장하기 시작한 조선공업은 세계조선경기의 불황에도 계속 발전하여 80년대들어 우리나라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대한조선공사 등 대형조선소들을 중심을 세계조선수주량의 약 20%를 차지하면서 일본에 이어 세계 제2의 조선공업국으로 발돋움했다.
불안한 세계 2위
그러나 80년대 중반 중동지역의 산유량 증가에 따라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유가조절 능력을 잃으면서 야기된 유가하락과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한 조선경기불황은 한국조선공업 역사상 가장 큰 불황을 가져왔다. 장기적인 미국경제의 불황으로 전세계 무역량이 감소하고 이로인해 당연히 해운업이 위축되었다. 여기에 그동안 축적되어 왔던 선복량의 과잉현상은 신규선박 발주물량을 현저하게 감소시켰으며 심지어 이미 건조해놓은 선박에 대한 인수기피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는 필연적으로 선가의 하락을 야기했으며 이로인해 그동안 엄청난 시설투자를 해온 조선업체들의 적자재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와중에 국내 4대조선소 중의 하나인 대한조선 공사가 지난해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기까지 했다. 이때부터 장기적인 불황에 빠진 조선공업은 더 이상의 회복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88년은 그동은 침체기에 빠져있던 우리나라 조선공업이 다시 활기를 찾은 한해였다. 유가가 서서히 인상되기 시작하였고 국제무역도 상승무드를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새로운 배를 건조하지 않았던 관계로 노후선박을 폐선시키고 나니 배의 공급이 부족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다시금 선가가 오르고 수주가 활발해지는 등 조선소들이 부산해졌다. 지난해에는 특기할만한 사항이 있는데 바로 수출선분야에서 최초로 일본을 앞서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주문을 받은 것이다. 물론 국내선까지 합쳐서 생각한다면 아직 일본의 그것에 못미치지만 이것만으로도 우리조선공업의 장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조선공업이 그동안의 불황을 딛고 일어서긴 했지만 앞으로 순탄한 길만을 걸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신흥조선국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른다. 신흥조선국 중의 하나인 중국은 아직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자국수요를 충족시킬때 쯤이면 필연적으로 수출선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임금수준이 우리보다 낮아 신조선 수주경쟁시 일본이나 우리나라보다 약 10~15%정도 낮게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아직 현대화의 문턱에 와있는 그들의 수준으로 볼때 중국은 현재의 경쟁상대라기보다 오히려 미래의 경쟁상대가 될 것이지만, 우리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그들에게 추월을 당할 가능성도 없지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술개발이 승패의 관건
우라나라 조선공업이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앞으로 계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려면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기술이라 함은 설계기술 등의 제조기술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생산관리기술이나 공정관리기술 등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제조기술분야는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서 있으나 생산기술이 일본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어 생산원가를 높이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어느 현장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정상적인 조업의 진행을 위하여 적재적소에 3일 작업 분량의 자재를 쌓아놓으면 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약 1.5개월 분의 자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와 같은 고도의 생산관리기술을 동원하여 임금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매우 높으면서도 선가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선박제조기술 면에서는 설계기술의 경우 대부분의 선형에 대하여 자체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아직까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특수선박들에 대해서는 선진국에서 설계기술에 필요한 전산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사용하는 수준이다.
건조기술은 건조공정 컴퓨터시스팀을 도입하여 선진기술의 경우 기능공 중심의 수동과 반자동 용접이 약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용접자동화율은 약 20%정도로 일본(40%) 미국(50%)에 비해 저조한 편이다.
선박구조분석 기술은 ▲에너지절약형 선형개발기술 ▲선박구조의 최적화 ▲경량화기술 등으로서, 선진국에서는 종합적인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용화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제 일부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나라 조선공업의 기술수준은 전반적으로 중위권 수준이며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적 조선공업의 역사가 이제 겨우 2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미 1백여년의 역사를 지닌 선진국에 비할바는 아니다. 문제는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기술개발에 들이는 노력일 것이며, 그 노력이 부족할 때에는 계속해서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조선업계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한 조선공업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각 업체별로 각각의 임금에 적당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또 필요한 형태로 개발될 것이며 그 부분적인 성과들은 이미 실제 조업에 적용되고 있다. 현재 대덕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기계연구소 선박분소에서 계획하며 추진하고 있는 CSDP(Computerized Ship Design & Production System)은 이러한 노력을 범국가적으로 묶어 한국 조선공업의 수준을 한단계 높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한 계기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이 GNP상승 등에 따르는 국제경쟁력의 약화를 만회하고 조선공업 생산량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현재 추진중인 CIMS(컴퓨터이용종합생산시스팀, 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 System)에 비견된다. 이 계획이 완료되면 조선생산성이 현재의 약 3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선박연구소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조선공업은 현재까지의 노동집약적 형태에서 기술집약적으로 옮아갈 것이다. 현재 소형선박들을 중심으로 실용화되어 있는 공기부양선 등 고속선의 개념이 보다 더 큰 선박에 발전된 상태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현재 일본 등지에서 추진중인 초전도추진선박은 현재까지의 선박의 개념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해상수송 부문에서 일대 혁명을 이룰 것이다. 물론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배의 수천년 역사를 생각할 때 수십년이란 짧은 세월에 불과하다.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부모가 될 무렵에는 아마도 이것이 현실로 나타날것이다.
부족한 연구개발투자
이렇듯 앞으로 조선공업의 미래는 밝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밝은 미래를 우리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효울적인 연구개발투자와 일관성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또한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계조선공업을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본다면 조선공업 뿐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앞으로 조선공업은 90년대 중반까지는 내부적 문제를 재외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현재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새로운 첨단조선공업의 시대를 꽃피울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역량에 달린 일이다. 여기에서는 조선공업의 기술적 측면에서 몇가지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우선 연구소와 연구인력이 부족하다. 조선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현재의 연구소와 시설, 그리고 인력을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이는 일본이나 서구 조선선진국은 말한 것도 없고 중국에도 훨씬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또 기업이나 정부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도 부족한 실정이다. 조선기술의 선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연구시설의 현대화, 연구인력의 확보와 함께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장기적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기술도입의 과잉과 중복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할 때마다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자체기술 개발보다는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손쉬운 방법을 취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각업체별로 서로간의 교류가 되지 않는 관계로 중복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적절한 규모의 인력확보 및 시설투자, 그리고 기업간 연구소의 정보교류를 통한 중복투자의 지양, 이는 궁극적으로는 공동연구소의 설립 등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조선공업을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살리는 길은 기술개발 뿐이며,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전체산업 역시 이러한 위기에 빠질 경우 넘어지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조선 1위국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에서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세계제패 이후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미국이 최근 우리나라 전체 조선공업 자본의 2배를 들여 다시 경쟁에 뛰어들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한국 조선공업이 여기에 머물지 않고 계속 선진해야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조선공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산업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더 이상 저임금에 집착해서는 안될것이다. 우리보다 더 싼 임금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조선산업의 나아갈 방향이 결코 저임금 구조를 온존시키는데 있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특수선 고부가가치선 ▲해양구조물 ▲조선소의 자동화 ▲초전도추진선 등 새로운 추진형태 ▲자동항법장치 등의 미래지향적인 연구들로 한국 조선공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의 주체는 앞으로 조선공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젊은 우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