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난이도
눈밭을 달리던 호랑이 두 마리가 사냥감을 덮치듯 튀어 오른다. 앞서 있는 호랑이의 살짝 벌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인다. 뒤따라오는 호랑이의 눈빛에선 매서움이 느껴진다. 서울대공원은 2018년, 2016년 각각 생을 마감한 시베리아호랑이 ‘코아’와 ‘한울’의 박제 기록을 4월 공개했다. 장장 1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한 박제사에게 직접 과학적인 박제 방법과 박제의 의미를 들어봤다.
박제는 무지개를 쫓는 일과 비슷하다. 열심히 쫓아도 절대 무지개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동물의 생전 모습을 아무리 똑같이 재현하려 해도 완벽할 수 없다.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료를 공부하고 또 공부할 뿐이다.
눈가루가 휘날리는 하얀 눈밭에서 발을 푹푹 빠뜨리며 걷는 호랑이 영상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추운 서식지 환경을 박제와 함께 담아내면 시베리아호랑이의 생태적인 특성까지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호랑이가 달리는 슬로 모션(slow motion) 영상을 수백 번 봤다. 동물학 책을 찾아 읽고 호랑이 사육사의 도움을 받아 살아있는 호랑이의 사진도 찍었다. 마음에 드는 포즈를 포착한 뒤 유토(기름에 반죽한 찰흙)로 모형을 만들었다. 다리 관절의 각도, 발의 위치와 순서 등을 결정했다. 본격적인 박제 작업의 시작이다.
STEP1. 가죽 벗기기┃ 털이 밀리지 않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영하 25도로 유지되는 냉동고에서 사체를 꺼낸 뒤 냉장고에 넣고 해동시킨다. 해동이 완료된 뒤에는 몸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신체 부위별 치수를 측정한다. 박제 표본의 크기를 실제와 같이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다음은 복부를 절개해 가죽을 벗긴다. 혹자는 이 과정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정확히 피부 두께만큼 칼집을 내 가죽을 벗기기 때문에 내부 장기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다. 작업실에는 고약한 냄새도 피도 없다.
코아와 한울의 가죽 상태는 좋지 않았다. 동물이 죽은 뒤 기온이 높은 장소에 오래 있거나, 내장 분비물 등의 오염물질이 가죽에 묻으면 부패가 진행된다. 부패된 가죽은 손끝만 스쳐도 털이 떨어져 나간다. 박제사들은 이를 ‘털이 밀린다’고 표현한다.
동물의 생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털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털이 밀리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하고 조심스럽게 가죽을 벗겼다. 코아의 얼굴 부분은 털이 밀려서 추후 털 이식을 해야했지만, 나머지 털 대부분을 보존할 수 있었다.
무사히 가죽을 벗겨내면 가죽에 붙어있는 살점을 떼어내는 ‘견도’ 과정이 남아있다. 칼이나 기계를 사용하는데, 가죽에 구멍을 내지 않도록, 또 모근을 잘라내지 않도록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작업이다. 견도 과정을 마친 가죽은 마지막으로 화학 처리를 해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든다.
STEP2. 마네킹 제작하기┃역동적인 자세의 비밀은 용접
다음은 박제 표본의 몸체인 ‘마네킹’을 만든다. 재료로는 가볍고 잘 썩지 않는 우레탄폼이 주로 쓰인다. 과거 박제사들은 목화나 솜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재료의 특성상 근육을 세밀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우레탄폼은 칼로 조각하기 쉬운 재료여서 달리는 호랑이의 근육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마네킹의 크기는 앞서 기록해 둔 호랑이의 신체 치수를 참고해 똑같이 제작했다.
역동적인 자세는 용접을 통해 구현했다. 두 발로 선 코아와 한 발로 지면을 박차는 한울의 자세를 구현하기 위해 각진 파이프를 용접해서 마네킹 뼈대를 만들었다. 경우에 따라 철사나 두꺼운 나사처럼 생긴 전산볼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코아와 한울처럼 몸체가 큰 동물을 불안정한 자세로 박제할 때는 용접과 같은 골조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표본 아래쪽에 무게중심을 두기 위해 발-종아리-허벅지-척추로 타고 올라가는 뼈대를 두껍고 튼튼하게 제작하고, 상체의 뼈대는 최대한 가볍게 제작했다.
그 다음은 가죽을 씌울 차례다. 박제사들에게는 가장 조마조마한 작업이다. 마네킹에 가죽이 딱 맞지 않으면 마네킹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네킹 위에 가죽을 올려놓고 조금씩 움직여가며 가죽을 씌운다.
가죽을 씌운 뒤에는 얼굴, 발, 생식기 등 세부적인 신체 부위를 제작한다. 이 단계에서 박제사의 실력이 잘 드러난다. 추측과 상상은 절대 금물이다. 살아있는 호랑이의 사진 자료를 참고해야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 발톱과 코, 수염은 코아와 한울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빨과 혀는 본을 떠서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었다.
눈은 유리나 아크릴 재질의 인공 눈알을 넣는다. 박제 용품을 파는 곳에서는 실제로 동물 종류와 크기별로 다양한 의안을 판매하고 있다. 코아와 한울에게는 특별히 실제 호랑이의 눈처럼 어둠속에서 빛을 반사하도록 유리 재질의 특수 의안을 넣었다.
STEP3. 건조 및 마무리하기┃수분을 빼내 부패 가능성 차단
마지막 단계는 가죽 봉합이다. 세부적인 신체 부위를 제작하면서 절개했던 배 부분을 꿰매는 데 호랑이 한 마리당 일주일이 걸렸다. 털 길이가 짧은 동물일수록 실로 꿰맨 봉합 부위를 감추기 어렵기 때문에 까다롭다.
박제 표본에 남은 수분은 부패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죽을 씌운 뒤 1~2개월은 가죽에 남아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도록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킨다. 건조 과정에서 가죽이 변형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가죽의 모양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수분이 빠져나가면 색도 변한다. 코아와 한울은 눈, 코, 입, 발바닥 부위의 색이 바래 색칠을 다시 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투명한 레진을 사용해 눈가를 촉촉하게 하고 꼬리와 앞발에는 하얀 가루를 묻혀 눈밭에서 뛰노는 시베리아호랑이를 재현했다.
현재 두 호랑이는 서울대공원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수장고에 있는 박제 표본은 500점에 달한다. 박제 표본은 생물의 형태를 연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며, 생물자원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교육 자료다. 수백 년 뒤 해당 생물이 멸종해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박제가 더 큰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생물을 ‘기록’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터뷰
윤지나 박제사가 들려주는 ‘박제사’에 관한 이모저모
Q 박제사가 된 이유는?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 예중, 예고, 미대 조소과에 진학했는데, 마음 한편에는 늘 동물을 연구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수의대 동물해부학 연구실에서 동물의 골격 표본을 처음 접했다. 박제가 전공을 살리면서도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동물 관찰을 좋아해 동물의 생김새나 근육 형태에 익숙했다.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Q 박제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박제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생물 종이나 박제사가 선택한 자세에 따라 재료, 박제 방법 등이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박제사 스스로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늘 어려운 부분이지만 박제사의 일 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Q 박제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맞다. 동물을 죽어서까지 괴롭힌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박제사들은 절대 동물을 일부러 죽이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동물을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은 박제를 동물의 ‘죽음’과 연관 짓는데, 박제사들은 박제하면서 동물의 ‘생명’을 본다. 동물 사체를 보면서 그 동물이 가진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그것을 재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Q 박제사로서 받은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도 박제가 가능하냐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인권의 관점에서는 적절한 답이 아닐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만 보면 피부가 있기 때문에 사람도 박제가 가능하다. 다만 동물에 비해 털이 부족하기 때문에 건조한 피부를 지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반려동물을 박제해 영원히 곁에 두고 싶다는 분들도 종종 있다. 추천하진 않는다. 박제사는 결코 반려동물과 평생을 같이 살아온 사람만큼 반려동물에 대해 알 수 없다. 세밀한 부분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색한 결과에 오히려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