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스트레스에서 암까지

늘어나는 처녀병·총각병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여성이 혼인과 임신, 그리고 출산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생식내분비 계통에 질병이 생길 수 있다. 나이든 미혼 남성은 심한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때를 놓친' 젊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이 '병'은 단순한 스트레스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은 병의 종류와 성격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은 몸이 성숙해지면서 호르몬 분비가 훨씬 복잡하게 나타나고, 그 결과 남성에 비해 급격한 신체 변화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월경과 임신이다.

월경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현상이지만 임신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보통 50대까지 매달 월경을 경험한다. 그리고 임신기간과 분만후 일정기간동안은 월경이 멈춘다. 만일 임신 경험이 없다면 신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나타날까.

15세전후에 시작되는 유암
 

초음파 기계로 유암 여부를 진단하는 모습. 현재의 의료 수준에서는 '조기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관찰되는 한가지 특징은 '월경주기성 유방통' 이다. 노만수박사(반더필트유방클리닉)는 "월경 전에 유방이 부풀고 아프다가 월경의 시작과 함께 이런증상이 사라지는 여성이 많다" 고 말한다. 그 이유는 배란을 전후해 분비가 늘어나는 성호르몬 때문이다.

배란이 시작되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등 성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들은 유방의 성장을 촉진시켜 임신에 대비하는데, 대체로 에스토로겐은 젖관을, 프로게스테론은 젖샘을 증식시킨다. 이 때문에 유방도 주기적으로 부풀고 아플 수 있다.

그러다 월경이 시작되면 유방의 부풀기도 가라않고 통증도 줄어들어, 월경 시작 후 4-7일째에 유방의 크기가 가장 작아지고 부드러워진다. 만일 여성이 임신 경험을 갖지 않으면 월경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될것이므로 '월경주기성 유방통' 역시 매달 나타나게 된다.

임신은 유암(乳癌)의 발생을 줄이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왜 그럴까.

유암의 발생빈도는 30세 이후부터 높아져 40대에 이르면 최고에 달한다. 그러나 그 근원은 10-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30세에 유암으로 판정된 사람의 경우 15세 전후에 이미 하나의 세포가 암으로 돌연변이를 시작한 것이다.

노만수 박사는 "초경이 시작되는 15세 전후부터 약 25세까지의 여성에게 유방세포의 돌연변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어떤 요인 때문에 이 시기에 위험도가 높은 것일까.그 해답은 간단하지 않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유암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확실히 정설로 된 것은 없다.

유근영교수(서울대의대 예방의학)는 "유암발생에는 유전, 임신, 분만, 음주, 흡연, 식이 등 무척 다양한 위험요인이 관여한다" 고 말하면서 "미국에서 1980년대에 유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고지방식 섭취였으나 요즘은 점차 호르몬설이 유력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암은 동양보다 서양에서 많이 나타나는 증세였다. 지난 20여년간 미국에서 유암 발생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3년 현재 여성 암 중 유암이 차지하는 비율이 1위였으며, 사망률로는 폐암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년에 유암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수는 무려 4만 6천여명.

198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가설은 "햄버거, 스테이크 등 고지방식이 유암에 걸릴 위험을 크게 증대시킨다" 는 것이었다. 이 가설은 아시아나 저개발국가 여성에 비해 북미나 유럽 여성에게 유암이 걸릴 위험이 5배나 높았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또한 유암 발생률이 낮은 국민이 북미지역으로 이민한 경우 유암 발생률이 미국인 수준으로 높아졌으며, 이민2세의 유암 발생률이 점차 증가한다는 점이 심증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임신하면 유암발생 줄어
 

(그림) 생리·임신 시기와 유방암의 위험도


만일 이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개인의 식생활 습관을 변화시켜 유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식이 요인과 유암과의 관련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연구비를 투자했다.

그러나 고지방식과 유암 간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점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물론 현재도 많은 논쟁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세는 '호르몬설'로 향하고 있다.

사실 '호르몬설'은 '식이설' 이 등장하기 이전에 오랫동안 유력한 설이었다. 그 시초는 1700년 "수녀가 결혼한 여성에 비해 5배 정도 유암발생 위험이 높다" 는 보고에서 비롯됐다.

'호르몬설'에서 현재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견해는 1970년대 하버드대 암역학자 맥매흔(B.MacMahon)박사의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유암의 발생에는 초경연령, 폐경연령, 첫 출산 연령등 세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초경 연령이 빠를수록, 폐경연령이 느릴수록 유암 발생 위험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 첫 출산 연령이 10내 20대 초반이면 유암의 위험은 감소한다. 예를 들어 20세 이전에 첫 출산자는 30대 이후 경우에 비해 유암 발생이 약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그림)

월경과 임신의 시기가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은 성호르몬이 유암 발생에 관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먼저 초경이 빠를수록, 그리고 폐경이 느릴수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에 노출되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호르몬들을 유암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

그러나 임신중에도 성호르몬의 양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임신이 빠를수록 유암 발생이 줄어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근영 교수는 "임신과 같이 아주 고농도의 호르몬이 분비될 경우 유방세포는 더욱 분화돼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는데, 그 결과 오히려 에스토로겐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다는 이론이 있다" 고 설명한다. 빨리 임신할수록 에스토로겐의 '악성' 위험이 감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설명은 없다. 프로게스테론이 유암을 줄인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임신이 유암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은 점차 인정되고 있다.

한편 최근 우리나라의 유암발생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1994년도 국내 암등록 현황을 보면, 여자의 장기별 발생빈도에서 유암(11.9%)은 자궁경부암(22.8%), 위암(15.7%)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1982년과 비교할때 순위는 동일하지만 유암(9.3%)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유근영교수는 그 원인이 "유암 발생을 촉진하는 환경이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소비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개인의 기호가 바뀐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의 식생활습관이 서구식으로 변하고 있고, 영양상태가 개선돼 체격조건이 좋아졌으며, 여가 생활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육체적' 성숙도는 더욱 증대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초경시기는 빨라지고 폐경 시기는 점차 늦어지고 있다. 더욱이 여성의 혼인 연령이 늦어지거나 임신 기피 경향이 늘어나고 독신주의가 확산되는 등의 사회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대책은 무엇일까. 임신을 빨리하면 되는 것일까. 노만수 박사는 "그렇다고 결혼을 서두르자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젊은 여성이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려 신체가 남성화되는 효과로 배란 억제를 유도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 이라고 설명한다.

미혼 여성도 산부인과 출입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근원적인 대책은 없다. 비교적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 '빨리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최신 방법은 항(沆)에스토로겐 약물 요법. 이 방법들이 어느정도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겠지만, 많은 학자들이 표현하듯이 좀더 완벽한 방법이 발견되기를 '고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지만 유암외에 미혼여성에게 잘 발생하는 질병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부유층여성에게 발견되는 자궁체부암. 박기복과장(원자력병원 산부인과)은 "국내에는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미혼 여성이나 임신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자궁경부암에 비해 자궁체부암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호르몬과 함께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등의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

미혼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런 질병들은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그러나 결혼을 안한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산부인과적 질병도 주의해야 한다. 최두석박사(삼성의료원 사춘기 여성클리닉)는 "10대 여성을 비롯한 미혼의 젊은 여성들도 산부인과 진찰을 받을 필요가 있다" 고 지적한다. 삼성의료원이 작년 1백 96명의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연령 17.7세, 초경연령 12.8세), 생리장애환자가 1백 26명(64.4%)으로 제일 많이 차지했고, 감염성 질환 39명(19.9%), 발달장애 11명 (5.6%), 기타 20명(10.2%)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대부분이 병원에서 쉽게 치료될 수 있는 질환인데도,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남의 눈 때문에'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또한 별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쉽게 지나쳐버리는 무관심도 작용한다. 최두석 박사는 "예를 들어 젊은 여성들이 배에 뭔가 이상이 느껴지면 배가 부르다 혹은 살이 쪘다고 판단하기 쉽다" 고 말하면서 "흔하지 않지만 질병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전문가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미혼 여성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나타날까. 결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있다. 결혼보다는 일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창순 과장(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은 "옛날에는 결혼을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미혼 여성이 열등감을 느꼈지만, 요즘은 자기일을 찾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자신감에 찬 미혼 여성이 많다"고 설명한다.

미혼 남성 세가지 유형
 

결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여성의 스트레스는 줄지만 애인이 없어 나타나는 정신질환은 늘고있다.


하지만 '외모 컴플레스' 는 오히려 늘고 있다. 양창순과장은 "꼭 결혼은 아니어도 자신이 남성으로부터 선택돼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그때문에 성형수술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컴플레스는 우울증, 위축감 등 정신질환 증세도 일으킨다. 그 결과 지나치게 많이 먹든지 반대로 아예먹지 않는 젊은 환자가 늘고 있다. 산부인과적으로는 괜찮은데 위장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거나 생식기 계통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양창순 과장은 이럴 경우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 약물 치료 방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미혼의 남성에게는 어떤 증상이 찾아올까. 남성은 여성처럼 체내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 없다. 따라서 결혼자체가 남성의 신체 변화에 중요한 요인이 될수 없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이민수교수(고려대의대 정신과)는 "노총각이나 독신남이 점차 느는 추세에서 고독감이나 배척감,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과업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열등감등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 결과 쉽게 우울증에 빠지거나 지나친 보상을 받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워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민수교수는 적령기의 남성이 결혼을 거부하는 유형을 세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자기도취형'.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 있고 결혼은 부차적인 일로 생각하는 자신감을 갖춘 경우다. 이 유형의 남자는 집중력이 강하고 일도 잘해 외형적으로 큰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순간적인 허탈감과 좌절감 증세를 보여 심하면 우울증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2-3일간 술만 마시고 직장에 나가지 않거나 이룰수 없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둘째는 '무능형'. 결혼할 자신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다. 심하면 성격파탄이나 정신박약, 자폐증 등 정신질환을 앓기도 한다.

셋째는 '잠정적 유보형'. 결혼할 생각이 있지만 가족, 금전 등 당장의 어떤 이유 때문에 일단 미뤄둔 경우다. 이들은 항상 무척 바쁘며 비슷한 나이의 동료에 비해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해 남과 잘 상의하지 않는다. 또한 늘 불안해 하거나 잠을 못자고 항상 쫓기는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한 예를 살펴보자. K씨는 현재 40대 초반으로 지방에서 염소를 기르고 있다. 1993년 가을 병원을 찾은 그의 모습은 몹시 불안했으며, 형제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며 지나친 적개심을 보였다. 식사도 하지 않아 몸이 몹시 여위었다.

면담 결과 그는 독신이었다. 체구가 작고 몸에 피부병이 있어 남들보다 더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혼은 그 뒤의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무리한 계획을 세웠으며, 결과는 늘 실패였다.

이민수 교수는 "결혼은 고립에서 친교로 바뀌는 계기이며 친교는 안정감을 준다" 고 전제하고 "요즘들어 독신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결혼 자체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풍토는 곰곰히 생각해 볼 일" 이라고 지적한다.

망상이 병을 부른다

한편 미혼 남성중에는 '쓸데없는' 성불안증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 최형기 교수(연세대의대 남성의학연구소)는 "사춘기 이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2차 성징에 대해서 '혹시' 하는 의심과 망상, 그리고 컴플렉스 등으로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많다" 고 말한다. 그 결과 이성을 건전하게 사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성기능 장애도 나타난다.

지난 1994년 최형기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성기능 장애자 4백98명 중 정신적 문제로 이상이 생긴 장애가 65%를 차지했는데, 이 중 미혼 남성이 49%나 발견됐다. 심인성 증세는 발기부전 38%, 조루증 20%, 두가지 모두를 갖는 경우가 30%였다. 최형기 교수는 "현재까지 1천명 이상 환자를 접한 결과 미혼남 중 심인성 장애가 늘어나는 추세" 라고 말하면서 "쓸데없는 불안증을 없애는 일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고, 만일 몸에 이상이 있으면 전문의와 빨리 상담할 필요가 있다" 고 설명한다.

결혼에 대해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했든 그렇지 않든간에 미혼의남녀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고유의 질환에 시달릴수 있다. 그렇다고 결혼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한다. 하지만 미혼 남녀에게 발생하는 여러 증세들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건강은 운동이나 영양섭취만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199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 진로 추천

  • 의학
  • 심리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