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에 열 대신 압력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단백질 등 고분자화합물은 열을 가했을 때와 똑같지만 향 색소 비타민 등 저분자화합물은 파괴되지 않아 싱싱함이 그대로 유지된다.
최근 일본에서는 압력식품 또는 고압식품이라고 불리는 '하이테크 식품'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음식을 익히는 방법은 열이다. 그런데 '열'이 아닌 '압력'만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 바로 하이테크 식품이다. 교토대학 식량과학연구소 하야시 교수는 "이전부터 단백질연구자들 사이에는 압력이 단백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를 식품연구에 적용해보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자연계에서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독자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자는 열과 압력 두가지뿐이다. 열을 이용한 음식의 조리는 1만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런데 압력조리법은 왜 빛을 보지 못했을까. 사실 고압물리학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압력이 본격적으로 공업분야에 이용되기 시작한 역사가 짧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세라믹가공이나 알루미늄새시의 성형가공, 워터제트(일명 물칼)의 커팅분야가 고작이었다. 수천 수만기압을 이용한 가공기술이 확립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다.
하야시 교수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식품에 초고압처리를 시도해 가공 살균 저장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식품에 높은 압력을 가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간단히 말하면 단백질이나 전분(녹발), 핵산 등의 생체고분자 입체구조가 완만히 파괴된다. 예를 들어 식품속의 단백질분자는 복잡한 입체구조를 한 상태에서 물에 떠 있다. 여기에 고압을 가하면 수용액 전체의 체적이 감소하면서 물분자가 단백질의 아미노산 사슬을 파괴시킨다. 결국 물의 체적감소로 단백질분자의 입체구조가 영향받는 것이다.
식품에 열을 가하면 단백질분자가 진동해 입체구조가 파괴된다. 결과적으로는 가압이나 가열 모두 비슷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야시 교수는 이제까지 열처리의 독점물이었던 식품의 살균 살충 그리고 응고(또는 유동화)등을 고압처리로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생물은 단백질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2,3천기압을 가하면 막세포가 파괴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압처리의 장점은 무엇인가. 식품속의 비타민 향 색소 등의 저분자화합물은 압력을 가해도 변화가 없다. 때문에 가열시와 같은 변색 등이 일어나지 않고 싱싱한(살아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영양보급만이 아니고 눈으로 음식을 맛보는 문화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면 가압처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일본의 포카코퍼레이션사는 몇년전부터 미국 플로리다의 오션스프레이사와 제휴하여 그레이프후레시 과즙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이 제품이 최근 일본에서는 슬럼프에 빠졌다. 그 원인을 조사한 바 주스에서 쓴맛이 난다는 것. 그레이프주스는 열매 전체를 짜 과즙을 만들어도 직후에는 쓴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과일 가운데 포함돼 있는 '리모닌'이라는 쓴 물질이 점점 많이 생성된다. 포카사는 고압처리를 통해 리모닌의 생성을 억제한 결과 대단한 판매신장을 이룩했다.
일본 농수성에서는 어육 등의 살균에 초고압 처리기술을 응용할 것을 검토중이다. 냉동제품 뿐만아니라 알젖류 등 염장품(소금에 절인 식품)에 응용도 고려중이다. 냉동생선을 고압처리하면 광택이 나며 투명감이 두드러져 보다 신선하게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고압처리로 '묶은 쌀을 햅쌀화' 시키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묶은 쌀을 1천기압에서 10분간 처리한 후 밥을 한 결과 관능실험(직접 맛을 보는 실험)에서 햅쌀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보고도 있다.
식품의 가압처리는 요즘과 같이 가공식품이 범람하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로 등장할 것이다. 가공의 방법으로 압력이 주목받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온도라는 가로축만 존재했던 식품가공의 세계는 이제 세로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압력의 등장으로 한차원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식품소재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됐고 한 소재에도 이중처리를 통해 자연의 신선미라든가 영양소의 원상보존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가압처리는 식품분야 이외에도 많은 응용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방약 등의 생약에 열을 가하지 않고 살균하는 방법등이다. 에너지 측면만 보아도 가열처리는 외부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낭비하지만 가압처리는 밀폐식이므로 거의 외부로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구두쇠 조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식품압력처리가 앞으로 좀더 널리 활용되려면 처리비용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 또한 처리시설의 위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