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난이도
‘청색광(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이 눈의 피로도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사슴이 님)
3월 28일 과학동아 사이언스 보드(www.scienceboard.co.kr) 팩트체크 코너에는 이런 제목으로 팩트체크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청색광이 눈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안경점에 갔다가 청색광 차단 제품을 사용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청색광과 눈 건강의 관계가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매일 컴퓨터 모니터와 씨름하는 기자 역시 평소 상당히 궁금했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4월 9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에 있는 한 안과를 찾아 시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막과 시신경, 망막 혈관의 상태를 확인하는 안저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눈 근육이 다소 경직됐지만 시세포의 상태나 안압 등은 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안과 전문의는 대뜸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냐’고 묻더니, 일정 시간마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번갈아 보면서 눈 근육을 의도적으로 움직여주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물었습니다. 청색광 차단 안경을 쓰는 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요. 하지만 그 전문의는 끝내 써라, 말라 어느 쪽으로도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죠. 일단 비교적 최근에 논란이 된 아지스 카룬아라스네 미국 톨레도대 화학및생화학과 교수팀의 연구 논문부터 따져 보기로 했습니다.
청색광이 망막세포 죽일까?
☞“일상생활에서는 걱정할 수준 아냐”
태양에서 오는 빛 중에서 지표면에 도달하는 빛은 250~2500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로 파장대가 다양합니다. 그보다 파장이 짧은 빛은 대부분 성층권에 위치한 오존층에 흡수돼 버립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은 보라색부터 빨간색까지 흔히 무지개의 일곱 색으로 대표되는 가시광선 영역(380~750nm)입니다. 이 중에서도 약 500nm 이하의 파장을 가진 보라색 및 푸른색 계열의 빛을 통칭해 흔히 청색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톨레도대 연구팀은 디지털기기나 태양 빛에 포함된 청색광이 망막세포막 위에 있는 인지질을 변성시켜 신호 전달을 방해하면 시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내용은 2018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7월 5일자에 실렸습니다. doi: 10.1038/s41598-018-28254-8
연구팀은 쥐를 그룹별로 나눠 각각 망막세포에 청색광과 적생광, 황색광, 녹색광 등 여러 파장대의 빛을 쪼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청색광을 쪼인 쥐의 망막세포만 곧바로 기능을 잃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카룬아라스네 교수는 논문에서 “청색광이 시력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라며 “인간의 망막이나 일반 렌즈도 청색광을 막거나 반사시키는 기능은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안과학회는 사람이 아닌 쥐의 망막세포로 실험했다는 점, 일상생활에서는 실험에서처럼 청색광이 망막에만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세포는 일정량의 청색광이나 자외선에 대해 자가 회복 능력이 있다는 점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카룬아라스네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최경식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학교실 교수(대한안과학회 이사)도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 적용할 수 없고,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청색광의 영향을 조사한 연구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눈 건강에는 자외선이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선글라스 같은 보호안경이나 모자를 착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최 교수는 “자외선이나 강한 햇빛에 장기간 노출되면 나이가 들수록 황반변성과 같은 눈 질환이 생길 위험이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색광이 수면 방해할까?
☞“청색광만 수면에 영향 주는 건 아냐”
2016년 지안루카 토시니 미국 모어하우스의대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분자 시각(Molecular Vision)’ 1월 24일자 온라인판에 ‘안구 생리와 생체리듬에 청색광이 미치는 영향(Effects of blue light on the circadian system and eye physiology)’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각종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된 청색광의 신체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PMCID: PMC4734149
논문에 따르면 낮 동안 청색광에 노출되면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촉진되고 이에 따라 수면의 질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수정체가 탁해져 황갈색으로 변하고 이에 따라 청색광의 투과도가 줄어들어 노년층의 수면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수정체가 탁해질수록 청색광을 많이 흡수하는 것은 맞다” 면서도 “노인이 밤잠이 없어지는 것을 꼭 청색광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토시니 교수도 논문에서 “청색광의 투과도와 수면,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는 실험 설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만큼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 논문에는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청색광을 덜 받기 때문에, 젊을 때보다 청색광이 주는 수면 방해 효과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언급됐습니다. 최 교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색광을 사람에게 직접 실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집단을 설정해 그 영향을 오랜기간 추적하는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청색광 외에 다른 파장의 빛이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김정윤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교수는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영향은 붉은색 계열의 빛이 청색광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어떤 빛이든 노출 시간과 강도에 따라 사람의 일주기 생체리듬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김 교수팀은 직업의 특성상 생체리듬이 불규칙해 불면증을 겪는 소방관을 대상으로 2500~1만lux(럭스)의 빛 노출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뇌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거실의 빛은 200~600lux, 책상 스탠드 전등의 빛은 1000lux 정도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밝은 빛”이라며 “오전에 이 정도의 밝은 빛을 쪼인 실험군에서 불면증 개선 효과를 확인해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청색광 차단 제품, 효과 있을까?
☞“환경에 따라 개인차 존재”
현재 시판되는 청색광 차단 안경이나 액정용 필름의 경우 ‘UV(자외선) 차단 100%’ ‘청색광 차단 99% 이상’ 등의 광고 문구가 붙은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런 효과를 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제품의 실제 성능이 기록된 제품안내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겁니다.
가령 국내 S 업체나 K 업체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각각 청색광 차단 렌즈와 청색광 차단 필름의 청색광 투과율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조사의 홈페이지에 이런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번거롭더라도 제조사에 직접 요청해서 받아보기를 추천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청색광도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100% 완벽하게 청색광을 차단하는 제품은 색을 인식하는 데 오히려 방해될 수 있습니다. 두 업체는 과학동아와의 통화에서 “(청색광 차단 제품이) 청색광의 투과율을 30~50% 낮출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업체에서 제공하는 성능과 실제 사용자가 느끼는 효과 사이에도 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각자 처한 환경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청색광이 미치는 영향과 청색광 차단 제품의 효과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며 “밤새 모니터를 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기적으로 눈을 쉬게 하는 등 스스로 눈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