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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학일기]전공, 교양, 연구까지 소방호스로 쏟아붓는 공부량

◇술술 읽혀요

‘학생들의 입을 벌려 소방 호스로 물을 마시게 한다’


캘리포니아공대 수업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지난 3년간 이곳에서의 공부량을 생각해보면 무리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캘리포니아공대는 공대 중에서도 학과 과정이 힘들기로 유명하다. 


 1년에 2학기를 이수해야 하는 한국 대학과 다르게 캘리포니아공대는 1년이 3학기(quarter system)로 운영된다. 연중 방학도 겨울(3주), 봄(1.5주), 여름(15주) 세 번 있다. 학기는 수업 10주와 기말고사 기간 1주로 총 11주다. 한 학기에 수업 일수는 적지만, 다른 학교 한 학기 분량을 똑같이 다룬다. 그래서 진도가 굉장히 빠르고 한 번 뒤처지면 다시 따라잡기 힘들어 캘리포니아공대 학생들은 항상 할 일을 쌓아두고 지낸다.


거의 모든 수업은 매주 과제가 있다. 보통 전체 성적에서 과제는 대략 50% 비중을 차지하지만, 시험 없이 과제 점수로만 성적이 결정되는 수업도 있다. 수업할 시간은 부족하고 다룰 내용은 많다 보니 수업과 과제의 난이도 차이는 매우 크다. 수업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에서 과제가 주어지는 경우도 허다해 과제를 하기 위해 시간을 따로 내서 공부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는 힘드니 주로 조교(TA)의 도움을 받거나 친구들과 협업해 과제를 해결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토의하며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을 권장하며, 이는 캘리포니아공대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캘리포니아공대의 시험은 대부분 자율 시험이다. 시간제한은 있지만 언제 어디서 시험을 볼지는 학생 자율에 맡긴다. 학생의 양심을 믿는 명예 규율(Honor Code) 정책이 자리 잡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감독관이 없어 부정행위를 저지르기 쉬운 조건이지만 오랫동안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학생 대부분이 양심적으로 시험에 임하고 있는 것 같다.


 캘리포니아공대를 졸업하려면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도 많이 들어야 한다. 특히 학교가 자연과학을 중시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은 1학년 3학기 모두 물리학을 들어야 하고, 화학과 생물학도 각각 2학기, 1학기 동안 수강해야 한다. 졸업 전에 물리 실험과 화학 실험 수업도 하나씩 들어야 한다. 심지어 나와 같은 컴퓨터과학 전공자들은 이외에도 자연과학 수업을 두 개 더 들어야 한다. 


여기에 인문학(역사, 철학, 문학 등)과 사회학(경제, 경영, 심리학, 정치학 등) 수업에서 4년 동안 총 12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5000단어 이상의 에세이를 써야 하는 수업도 3개를 필수로 들어야 한다. 


나는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이미 3년을 보냈지만, 아직도 들어야 할 인문학 수업이 3개나 더 남아있다. 내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수업 때문에 새벽까지 과제를 할 때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학에서 시키지 않으면 내가 평생 이 내용을 공부할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엄청난 양의 졸업 필수 수업들은 좋기도 싫기도 하다.


캘리포니아공대의 컴퓨터과학 수업은 이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그램을 잘 짜는 방법보다 프로그램의 이론적 배경을 배우는 것이다. 전공 이름이 ‘컴퓨터 엔지니어링(Computer Engineering)’이 아니라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인 것만 봐도 알만하다. 물론 코딩 과제가 나오는 수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학 이론을 지향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취직할 때 이론적인 수업은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술은 배울 곳도 많고 이론만 알면 익히기 쉽지만, 근본적인 이론은 대학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본기를 탄탄히 만들어 두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은 불만 없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이번 학기에 나는 수업을 5개 듣는데 그중 2개는 연구 수업이다. 첫 번째 연구는 기업의 사업·분기 보고서를 분석해 기업의 여러 지표를 예측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IoTPy’라는 파이썬 데이터 스트리밍 오픈소스를 LA 지진관측센서에 적용하는 연구다. 지난 학기에 분산 컴퓨팅(distributed computing) 수업에서 공부했던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해 교수님께 직접 연구 희망 e메일을 보내 참여할 수 있었다. 


연구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님을 만나 경과를 보고하고, 토의 후 어떠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할지 지도받는 식으로 이뤄진다. 연구 수업은 매주 점수로 평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수업의 과제에 집중하다 보면 우선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연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캘리포니아공대는 3학기 제도여서 1년에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더군다나 한 학년에 25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많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졸업 후에 접하기 어려운 분야를 학부생 신분으로 폭넓게 배워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이라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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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용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컴퓨터과학과 및 경영학과 3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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