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수축하면 당신은 젊어지기 시작한다"
우주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사람은 젊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고교를 졸업한 뒤 고교에 입학하고 중학을 졸업한 뒤 중학에 입학하고 마침내 어머니의 태속으로 들어가서 ‘무(無)’로 돌아간다···.
수축기의 우주에 사는 인간에게 미래는 우리의 과거이며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라는 역전된 세계가 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스티픈 호킹’(Stephen Hawking)은 최근 “우주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전환할 때 시간의 흐름은 역전한다”고 발표하여 세계적인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호킹’을 손도 발도 못쓰고 말도 못하는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비유하고 있다. 1966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른바 특이점(特異点)정리를 제창하여 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뒤 “블랙 홀은 증발한다”는 예언으로 현대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선을 연 호킹은 근 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20대 초반부터 46세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20여년의 세월을 언제나 죽음과 직면하면서 살아 왔다.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차례 파괴되어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는 이 무서운 병은 발병한 뒤 3~4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알려졌으나 호킹의 경우는 1962년 발병한 이래 아직까지 생존하여 정상급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죽음을 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늦게 계발된 지능
호킹은 1942년 1월 8일 갈리레오가 죽은 뒤 꼭 3백년 되는 날에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양친에게서 태어났다. 생물학자인 부친은 장차 호킹을 옥스퍼드대학에 진학시킬 생각으로 런던교외의 사립학교에 넣었다. 그러나 그는 배우고 읽는 것을 포함하여 지능발달이 매우 늦은 편이었다. 그의 부모도 옥스퍼드대학의 진학의 꿈을 단념할 정도였다.
호킹은 12살 되던해에 친구들이 자기를 두고 내기를 걸던 일을 씁쓰레 회상하고 있다.
“친구 하나가 다른 친구와 사탕 주머니를 놓고 내기를 거는 것이었어요. 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내기의 결과가 어떻게된것인지 또는 누가 이겼는지는 알 수 없군요.”
아뭏든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호킹은 옥스퍼드대학에 합격하여 물리학을 전공하지만 눈에 띄게 우수한 학생은 못되었다. 그는 보트경기의 키잡이선수로 활약하면서 공부를 하루에 겨우 한시간 정도만 했다. 당시만 해도 늠름한 육체와 쾌활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젊음의 매력이 철철 넘쳐 캠퍼스의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했다. 클래식 음악과 SF소설에 흠뻑빠진 장발의 스포츠맨, 당시의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호킹을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친구 로저 펜로즈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죽음의 병 : ALS
그는 케임브리지로 옮겨 대학원과정에서 상대성이론 연구에 들어갔다. 그런데 중동여행에서 돌아온 뒤 얼마 안되어 혀가 굳어져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진단결과 ALS라는 병에 걸렸으며 병은 악화일로를 걷게되지만 치료방법이 없어 손을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 뒤 호킹은 지팡이없이는 보행도 어렵게 되었다. 자포자기에 빠진 그는 폭음을 하기 시작했으며 공부도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절망에 빠진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손짓했다. 병세악화의 진도가 더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를 실망의 늪에서 건져준 것은 부인이 된 ‘제인’과의 만남이었다. 케임브리지에서 현대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던 제인은 호킹이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약혼을 했고 1965년에는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
호킹은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일자리를 가져야 하고 일자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박사학위 과정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야할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특이점연구의 실마리
당시 호킹의 관심을 특별히 자극한 것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언한 특이점이라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태양보다 몇배나 큰 별이 가지고 있는 핵연료를 다 써버려 바닥이 나면 붕괴되어 그 물질은 엄청난 힘으로 중심부에서 으깨져 아무 차원도 없고 압도적인 중력을 가진 무한한 밀도의 특이점을 형성한다고 비쳤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몇해 전부터 ‘블랙홀’은 존재한다는 어쩔수 없는 증거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일체의 과학법칙이 특이점에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매우 거북한 입장에 있었다. 물리학자들중에는 실제 우주에서 블랙 홀 심장부에 있는 이 특이점은 작지만 크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극단적으로 밀도가 짙으나 무한히 큰 것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호킹이 등장한다. 아직도 대학원생인 호킹은 수학자 ‘로저 펜로즈’와 함께 만약에 일반 상대론이 최소한의 규모까지 적용된다면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새로운 테크닉을 발전시켰다. 호킹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만약에 일반상대론이 옳다면 우주 전체는 하나의 특이점으로부터 탄생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1966년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우리의 과거에는 특이점이 있다”고 적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미니 블랙 홀
그 뒤 호킹은 블랙 홀에 관한 새로운 몇가지 특성을 밝혀내고 ‘빅 뱅’(우주창세의 대폭발)의 막대한 힘이 미니 ‘블랙 홀’을 만들어 냈는데 하나하나가 산덩어리만한 중량은 갖되 크기는 양자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여주었다.
호킹은 일반상대론 대신 양자론을 적용함으로써 이 미니 ‘블랙 홀’은 입자와 방사선을 방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출했다. 작은 ‘블랙 홀’에서 방출된 것은 이제 ‘호킹 방사선’으로 불리고 있다. 만약에 미니 ‘블랙 홀’의 폭발이 관측된다면 그는 당연히 노벨상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폭 1천만개의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미니 블랙 홀의 폭발이 관측된다면 ‘증발하는 블랙 홀’이론은 완전히 증명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호킹의 연구는 “우주가 시작될 때도 블랙 홀과 같은 특이점이 존재했다”는 특이점정리에서 시작하여 증발 하는 블랙 홀과 미니 블랙 홀의 예언에 이르기까지 현대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쟁점의 하나인 블랙 홀에 대담하게 도전하여 중력의 양자론을 구사하면서 우주의 기원을 캐고 있는 것이다.
말 합성기로 강의
페르미 연구소의 ‘로키 콜브’의 말과 같이 “일반상대론과 초기 우주론분야의 영웅이며 아이슈타인 다음의 위대한 과학자”인 호킹의 혁명적인 생각은 거의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상된다. 그는 한때 아이작 뉴턴이 차지했던 이 대학의 루카스 수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호킹은 이 대학의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에서 9개국에서 온 15명의 천재급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상대론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건장한 사람들도 지칠 정도의 일정을 치룬다. 불편하지만 아직도 말을 듣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휠체어를 운전하면서 연구실 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을 한바퀴 돈다. 테이블 위에는 한장 한장 갈라놓은 논문이 페이지순서대로 쭉 펼쳐져 있는데 그는 휠체어를 움직이면서 이 논문을 읽는다.
그의 방문에는 금속판이 붙어 있어 호킹의 휠체어가 부딪히면 문이 열려 방안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방에는 커다란 흑판이 걸려 있는데 조수가 호킹의 말을 받아 흑판에 적는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시하면 음성합성기가 이것을 말로 옮긴다. 그런데 이 음성합성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기업이 만든 것이어서 그의 말은 미국식 액센트로 들을 수 밖에 없다. 독립심이 강한 그는 불필요한 도움을 극단적으로 싫어 한다. 그래서 조수들은 웬만한 일은 혼자 처리하게 그대로 내버려 둔다.
학생이 질문하면 그의 답변은 컴퓨터를 통해 액정스크린위에 천천히 나타난다. 학생시절부터 재치있는 조크로 명성을 떨친 호킹의 강의는 이따금 강의실을 웃음바다로 덮는다. 예컨대 수학자의 창의력은 20대초반에 절정에 이른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그 언덕을 넘어섰다”고 그의 음성합성기가 말하면 학생들은 모두 까르르하고 폭소한다.
그는 탁상용 컴퓨터를 사용하여 연구논문이나 연설문을 쓰다가 이따금 조수인 대학원생 ‘레이몬드 라프레임’(27세)과 상의도 한다. 라프레임은 작업하는 호킹옆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어 준다. 일을 하면서 가끔 “들어 올려요”라는 합성말이 나오면 조수는 의자 밑으로 푹 빠진 호킹을 들어 올리고 ‘안경’이라는 말이 나오면 코밑으로 미끌어져 내려 간 호킹의 안경을 제자리로 치켜 올려 준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호킹은 세계학계를 두루 누빈다. 미국을 30번이나 찾았고 모스크바도 7번 방문했다. 일본은 물론 중공을 방문하여 휠체어를 타고 만리 장성위를 굴러 다니기도 했다.
여행중 가끔 물리학과는 동떨어진 일을 할 때도 있다. 최근 미국방문길에 어떤 디스코 테크로 들어간 호킹은 그곳의 흥겨운 기분에 휘말려 휠체어를 무도장으로 몰고 들어가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 뒤 레스토랑에 들어 갔는데 웨이터가 방금 딴 포도주 마개를 호킹의 코밑에 갖다 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했다. 호킹의 컴퓨터는 “아주 훌륭합니다”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실은 기관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에 호킹은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는 매우 예절바른 사람이다.
그의 간호원의 한사람인 인도출신의 ‘초한’은 “그분의 주변에는 영기가 감돌고 있다. 그분은 성인으로 생애를 마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경계없는 경계
호킹은 최근 양자적인 우주의 창조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자 ‘마틴 리즈’가 이른바 성배(聖盃)(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썼다고 전해지는 술잔)찾기에 비유한 그의 이론은 일반상대론과 양자론을 합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의 4개의 기본적인 힘중에서 양자론으로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한 힘인 중력을 ‘양자화’할 필요가 없다. 호킹은 잘못을 인정하면 자기의 업적을 거리낌없이 철회하는 위인이지만 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그의 유명한 증명을 초월하게 될지 모른다. 그는 ‘하틀’과 함께 우주는 끝도 없고 경계도 없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파의 이론을 도출했다. 만약 그의 이론이 옳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특이점은 없게 될 것이라고 호킹은 말하고 있다. 호킹은 우주전체를 하나의 파동관수로 기술해 보겠다는 큰 야망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창조자인 신의 계획을 방정식으로 수렴해 보겠다는 엄청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주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며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창조자가 설 땅은 어디일까?”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호킹의 생각이 옳다고 밝혀진다면 이론 물리학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는 호킹의 마지막 비밀을 앞당겨 밝히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몇해전 호킹의 목소리는 가족이나 한두사람의 친구들만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퇴화되었다. 1985년에는 폐렴으로 거의 질식할 정도가 되어 기관지절개 수술을 했으며 목구멍을 절개하여 기관에 튜브를 넣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이 수술덕에 그는 목숨은 건졌으나 목소리는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병세는 이제 더 이상의 진전을 멈춘 것 같다.
호킹의 몸은 ALS라는 불치의 병의 포로가 되었으나 그의 용기와 유머는 옛날 그대로 살아 있다. 호킹은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긴 수식을 다루는 일을 할수없어 기하학적인 직관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 뜻에서 그의 작업은 이제 철학적인 경지에 들어 가고 있다고 할까.
호킹은 퇴근하면 여느 사람처럼 단란한 가정의 장이 된다. 아내 제인과 사이에는 20세의 장남 로버트, 17세의 장녀 루시 그리고 막내 아들 티미(8세)등 2남 1녀를 두었다. 광대한 우주의 비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위대한 과학자도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부정을 쏟는 평범한 한 사람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