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술읽혀요 | 나의 독일 유학 일기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으면 당장 집 문제가 닥쳐온다. 특히 대학이 있는 도시는 집 구하기가 더 만만치 않다. 현지인조차도 집을 못 구하면 학교에서 간이로 제공하는 캠프장에서 몇 달간 강제 히피 생활을 하거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것 마냥 한 달 치 기차표를 끊어놓고 기차에서 자기도 한다.
집을 구한 이후에도 문제다. 집주인, 이웃집 사람들, 한집에 사는 룸메이트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운이 나쁘면 내 돈 내고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살아야 하니 집 구하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카를스루에 지역에는 내가 다니는 카를스루에공대(KIT)를 비롯해 음대와 미대 등 무려 9개 대학이 있어 학생도 많고 거주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그중 대학 기숙사는 도시에서 거주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단점은 기숙사 배정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유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배정해준다고 해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 덕분에 학생들이 매우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에는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교회나 전통 있는 대학생 그룹, 펜싱클럽과 같은 단체가 운영하는 사설 기숙사도 있다. 이 단체들은 저렴하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대신 특정 활동을 요구한다.
교회 기숙사는 기숙사 내 봉사 활동을, 대학생 그룹에선 매일 밤 모여서 술을 함께 마실 것을, 엘리트 학생 그룹이 주축인 펜싱클럽은 일주일에 몇 시간씩 펜싱 연습을 조건으로 내걸고 학생들을 받는다.
기숙사에 살지 않으면 따로 방을 구해 자취한다. 독일에서는 관리비를 제외한 월세를 칼트미테(Kaltmiete), 관리비까지 포함된 월세를 밤미테(Warmmiete)라고 한다. 카를스루에를 비롯해 대학이 있는 도시의 밤미테는 450~700유로(약 60만~90만 원)다. 여기에 방송수신료, 인터넷 요금 등을 내면 부담이 클뿐더러, 부동산에 나와 있는 매물도 적다. 그래서 학생 대부분이 월세와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홈셰어링(WG)을 한다.
홈셰어링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외국인을 만날 수도 있고 한국인을 만날 수도 있다. 찰떡같이 잘 맞는 룸메이트를 만날 수도, 완전히 다른 취향의 룸메이트를 만날 수도 있다. 이렇듯 홈셰어링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만남으로 즐거움을 준다.
물론 단점도 있다. 문화 차이나 위생관 차이, 경제적 관념 차이에서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갈등이 심하면 누구 한 명이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래서 이미 홈셰어링을 하는 집에서 새로운 사람을 받을 때 보통 그 집 분위기와 맞는 사람인지 인터뷰를 진행한다. 물론 이때 새집에 들어갈 사람도 룸메이트와 맞는지, 집 분위기와 맞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외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에어비앤비나 호텔에서 살기도 하며, 어떤 집에 살고있는 세입자가 단기간 집을 비우는 동안 그 집을 이용할 수 있는 ‘쯔비쉔(Zwischenmiete)’도 있다. 집은 ‘Immobilienscout24’ ‘wg-gesucht’와 같은 독일 인터넷 사이트나 ‘베를린리포트’ ‘페이스북 독일 유학인 네트워크’와 같은 한국어 사이트를 이용하면 찾기 쉽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집에 ‘möbliert(가구가 비치돼 있는)’라고 적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구가 없는 집을 구하면 직접 가구를 사서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을 수도 있다.
놀랍게도 독일은 부엌이 없는 곳도 있으니, ‘Einbauküche (붙박이식 주방)’나 ‘Küche(부엌)’이라고 적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 독일은 법적으로 3개월 전에 계약 해지를 해야 하는만큼 이사 갈 때는 반드시 3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온 특이한 경우여서 집에서 통학하지만, 유학생 대부분은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아 집을 구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 부디 이 글이 도움이 돼서 집을 못 구해 기차에서 잠자는 일은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