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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파트너@DGIST] 뉴바이올리지전공, 잘 고른 항체로 새로운 항암제 만든다

◇ 꽤어려워요 | 융복합 파트너@DGIST

 

 

실험실에 들어서자 얼음이 가득 담긴 스티로폼 상자를 든 연구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스티로폼 상자에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플라스크가 담겨 있었다. 플라스크에 든 것은 항체. 온도를 영하로 유지해야 항체 활성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항체를 0.1초라도 상온에 노출 시키면 안 된다고. 예경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가 이끄는 단백질공학연구실에서는 항체가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항체 치료제가 전부 길항제인 이유


예 교수팀은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항체 치료제는 길항제(antagonist)다. 길항제는 항체를 이용해 특정 수용체의 작용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가령 대부분의 항암제는 길항제로 작용해 암세포의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런데 예 교수팀이 개발하는 항체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이런 항체를 작용제(agonist)라고 부른다. 작용제 항체는 세포막이나 세포질에 있는 특정 수용체와 결합해 특정 단백질의 작용을 촉진한다. 호르몬을 주입해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는 호르몬 치료제와 비슷하다. 대신 반감기가 하루 이내인 호르몬과 달리, 항체 치료제는 체내에서 2~3주간 유지된다. 약효가 그만큼 오래 가는 셈이다.


대부분의 항체 치료제가 길항제인 데는 이유가 있다. 항체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 항체만 순수하게 분리해내는 기술이 핵심인데, 이때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를 조작해 표지 단백질로 항체를 만들어내는 ‘파지 디스플레이(Phage Display)’ 기법이 많이 사용된다(20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분야다). 


예 교수는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를 변형해 스스로 수용체를 만들게 하고, 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항체를 분리하면 된다”며 “길항제는 박테리오파지의 수용체와 쉽게 결합해 그만큼 분리하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반면 작용제는 수용체가 활성화되는 부위에 정확히 위치해야 결합할 수 있다. 길항제에 비해 수용체와 결합할 확률이 낮고, 결과적으로 파지 디스플레이 기법을 이용해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파지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항체를 분리하면 대부분 길항제만 나온다. 작용제를 선별하려면 완전히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예 교수팀은 2013년 ‘자가분비기반 항체 선별(Autocrine-based antibody screening)’이라는 작용제 항체 분리 기법을 개발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4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73/pnas.1306263110 


연구팀은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에 항체가 결합해 세포의 신호 전달 과정을 촉진하면 세포가 형광을 띠도록 만들었고, 형광을 띠는 세포만 골라 항체를 떼어내 작용제 항체만 분리했다. 


예 교수팀은 이 기법으로 백혈구 증식인자(G-CSF)의 작용제 항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G-CSF는 백혈구를 증식시키는 생리활성 단백질로 대사성 질환이나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 연구팀은 G-CSF의 작용제 항체를 분리한 뒤 기능을 조사한 결과 골수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아냈다.

 

 

“작용제 이용한 항암제 개발이 목표”


예 교수가 어려워도 작용제 항체를 연구하는 이유가 뭘까. 그는 “작용제 항체는 기존 약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신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령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면역관문수용체의 경우 수용체의 작용을 억제하면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면서 암세포를 죽인다. 많은 항암제가 이를 이용해 암세포를 없앤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면역관문수용체의 작용을 촉진해도 면역세포인 T세포가 활성화돼 암세포를 사멸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수용체의 작용을 촉진하는 작용제를 선별하기 어려워 항암제 개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예 교수는 “자가분비기반 항체 선별 기법을 이용하면 면역관문수용체의 작용제만 분리해낼 수 있다”며 “이를 이용하면 새로운 항암제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현재 작용제를 이용한 항체 치료제는 전무하다. 항체 치료제 시장은 길항제가 ‘독점’하고 있다. 예 교수팀은 2019년 10월 제약기업인 안국약품과 공동으로 항암 효과가 있는 작용제 후보 발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 교수는 “작용제 분리 기법을 이용해 작용제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최근 암 치료 물질로 주목받는 엑소좀(exosome) 등에도 항체를 접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대구=이영혜 기자 기자
  • 사진

    홍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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