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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공생명

진화 메커니즘 갖춘 소프트웨어·로봇

태초에 이름모를 유기물이 모여 질서를 이뤘을 때, 우리는 이를 생명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제 생명의 범주를 더 넓혀야 할지 모르겠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실리콘 칩에서 새로운 인공생명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되고 싶은 사람과 사람을 닮고 싶은 기계.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공생명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공생명



생명이란 무엇일까. 인류가 의식을 갖고 주변을 내가 아닌 ‘타자’로 규정하면서부터 시작된 인류 최고의 화두다. 나를 주변과 구별짓는 차이점은 무엇이고, 타자인 주변과 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런 생명의 신비는 인간에게 항상 그와 비슷한 것을 창조하도록 유혹해왔다.

인공생명체를 만들려는 시도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싹트기 시작한 산업혁명 초기부터 본격화됐다. 이때 과학이 선택한 기본전략은 ‘환원론’(reductionism). 아무리 복잡한 생명체라도 그것을 잘게 분해함으로써 기본적인 단순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분석방법은 ‘생명이란 정밀한 시계장치처럼 잘 짜여진 기계’라고 주장한 데카르트에 와서 정교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서구의 환원주의적 분석이 밝힌 생명에 관한 최초의 결과는 생명이란 ‘복잡한 물리장치’(complicated physic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환원론에 입각해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노력은 현대에 들어서서 로봇공학의 힘을 빌어 그 구체적 성과물인 로봇을 낳았다. 그러나 로봇은 진정한 생명체가 아니다. 현대의 로봇은 산업현장에서부터 우주, 의료, 서비스 분야까지 인간의 행동을 대신하거나 모방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기계에 불과하다. 차가운 금속 뒤에 있어야 할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생명체 창조는 불가능한 것일까.


새로운 생명체 세포 자동자

1948년 헝가리 태생의 미국 과학자 폰 노이만은 이같은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탄소와 산소로 구성된 물렁물렁한 생명체나 볼트와 너트로 만들어진 기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합성’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다. 노이만은 앨런 튜링이 이론적으로 제시한 ‘튜링기계’에 자극받아 좀더 생명에 가까운 이론적 장치인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a)를 고안했다.

그의 처음 생각은 추상적인 기계장치였다. 로봇이 호수 위를 떠다니면서 호수에서 에너지와 원료를 추출해 자기자신의 복사본을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은 1940년대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일대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동료 과학자인 울람은 컴퓨터를 사용해 기하학적 패턴을 재생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노이만은 로봇이라는 3차원 세계보다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공간에서 재생산할 수 있는 세포 자동자를 고안했다. 세포 자동자는 자신의 제조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생산물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장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사람의 유전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불행히도 노이만은 자동자 이론을 완결짓지 못하고 생을 마쳤지만, 생명의 논리적 구조를 탄소유기물과 단순기계로부터 해방시켜 후대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노이만의 세포 자동자 이론은 1960년대부터 수학자 콘웨이를 중심으로 ‘생명 게임’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생명 게임은 바둑판 같은 격자 위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가상적 변화다. 어떤 한칸의 상태는 그 주위 인접한 4개, 또는 8개칸의 상태에 따라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한 세포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셀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다음 상태에서 죽는다. 그리고 주위의 셀이 적당하면 그 자리에 생명이 생기거나 생명을 유지한다. 이 실험에서 살아있는 세포의 위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으며, 놀랍게도 어떤 다세포체는 자신의 초기모습과 같은 개체를 사방으로 복제시켰다.

‘인공생명’(artificial life) 연구는 1987년 크리스토퍼 랭턴에 이르러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랭턴은 단순한 몇개의 규칙을 가진 생명체를 컴퓨터에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뒤 이들의 행동이 마치 살아있는 개미나 새떼와 같은 행동임을 보임으로써 인공생명을 단순한 컴퓨터 장난으로 보아온 보수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는 인공생명체 ‘아쿠아리움’의 모습



정보의 꼭두각시를 넘어

그렇다면 인공생명은 로봇이나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에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과는 어떻게 다를까. ‘아쿠아리움’(aquarium)이라는 컴퓨터 스크린 세이버를 통해 알아보자. 아쿠아리움은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떼지어 살고 있는 가상의 수족관이다. 그러나 수족관 안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다른 무리와 충돌이 발생하고 이로써 지금까지 일사분란하던 대열이 일시에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대열의 앞부분에 있던 물고기는 정면충돌로 어쩔줄 몰라 허둥댄다. 대열의 후미에 있던 물고기는 낌새를 채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방향을 틀어 달아난다.

아쿠아리움은 디즈니 만화영화와는 달리, 어딘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차이는 캐릭터의 사실성이 아니라 물고기의 행동에서 오는 것이다. 다른 종과 부딪혔을 때 꼬리를 떨면서 진저리치는 모습, 낌새를 챈듯 재빨리 방향을 바꿔 달아나는 모습, 자기 무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모습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이 모습을 구현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느낌’이 다르다.

애니메이션은 각각 캐릭터들의 형태와 동작, 표정을 제작자가 일일이 규정해줘야 한다. 캐릭터들은 서로 말하고, 싸우고, 부딪히는 등 다양한 거동을 보여주지만 이것은 외양상의 행동이며 그들 상호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명령에 따라 조종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이런 방식을 ‘하향식’(top-down) 설계라 한다. 여기에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정보의 일방통행이 있을 뿐이다.

아쿠아리움의 설계는 반대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체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각각의 물고기들이 다른 물고기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만을 규정한다. 즉 다른 개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규칙과 대열을 이루고 있는 같은 종끼리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게 하는 규칙, 그리고 이웃하는 같은 종의 중심으로 향하려는 규칙이다. 여기서 물고기의 거동을 결정하는 요소는 이웃하고 있는 물고기에 대한 정보뿐이다. 같은 종을 만나면 모여서 대열을 이루려 할 것이고 다른 종을 만나면 피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물고기의 미묘한 행동은 미리 규정된 것이 아니다. 전체는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 결과며, 이 결과가 역으로 부분들에 작용하면서 애니메이션의 단순한 행동과는 다른 복잡한 거동이 만들어진다. 바로 ‘상향식’(bottom-up) 설계다.


‘있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탐구

상향식 설계와 이로부터 나타나는 창발적특성은 인공생명 연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생명체, 특히 인간의 지능을 닮으려는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퍼지이론이나 카오스이론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하향식 설계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근본적으로 환경에 대한 조건과 정보를 미리 입력해야하는 한계를 갖는다. 우리의 일상적 생활은 ‘예’와 ‘아니오’의 두가지 답이 아니라 ‘아마도’ 같은 불확실성을 요구하는 상황이 더 많다. 생명은 단순한 부분의 합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인공생명 연구는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생물체가 갖는 자율성과 적응, 학습, 진화, 자기복제와 자기증식 등의 특징을 모방한 뒤, 이를 ‘바닥으로부터 통합’(bottom-up)해 인공적인 매체 위에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노력이다. 최근의 연구는 매체에 따라 컴퓨터 상에서 인공생명을 구현하려는 소프트웨어 분야와 실리콘 칩이나 로봇의 하드웨어 분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life as we know it)에 대한 연구라는 커다란 관점으로부터‘있을 수 있는 생명’(lifeas it could be)의 창조까지 그 의미를 크게 확장한 인공생명 연구의 최신 경향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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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박현정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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