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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 묻는다] 프로스트와 베타 vs. 트랜센던스

◇ 안어려워요 | SF에 묻는다

 

SF에는 인간이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해서 영원히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반대로 인공지능을 인간의 육체에 전이해서 인간의 몸으로 살 수 있게 되는 이야기도 있죠. 그렇다면 두 존재는 어떻게 다를까요? 의식과 그것을 담고 있는 하드웨어는 어떤 관계일까요?

 

편집자 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프로스트와 베타’는 SF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수록돼 있습니다. 배경은 인류가 사라진 뒤의 지구입니다. 인류는 모종의 이유로 멸종했지만, 지구에는 강력한 인공지능 로봇들이 남아있습니다. 프로스트는 그중 하나죠.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재건하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프로스트는 솔컴이라는 상위 인공지능의 부하로 만들어졌을 때의 사고 때문인지 특이하게도 인간의 생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트랜센던스’는 2014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조니 뎁이 인공지능 과학자 윌 캐스터 역할을 맡았죠. 윌은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윌의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지자 아내인 에블린은 윌의 의식을 자신들이 개발한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윌을 살리려는 것이죠. 동료 연구자인 맥스는 이 선택에 의심을 표합니다. 그건 윌이 아니라 윌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프로스트는 충분한 데이터만 있다면 자신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브컴의 요구에 대해 먼저 그 점을 확인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인간성을 획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모오델의 요구대로 디브컴에게 봉사하기로 합니다. 만약 인간성을 획득한다면, 인공지능의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으니 모오델의 요구는 무의미하게 됩니다. 


데이터만으로는 인간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프로스트는 모오델과 함께 지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인간이 느꼈을 법한 감정에 관해 알아봅니다. 하지만 인간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는 한계를 느낍니다. 


프로스트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를 탐사하다가 남반구의 관리자인 베타를 만납니다. 베타는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프로스트를 쫓아내지만, 곧 자신도 프로스트의 연구에 관심을 보입니다. 프로스트는 베타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자료를 보내 줍니다.

 

 

윌은 자신을 인터넷에 연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맥스는 여기에 반대하며 에블린과 대립하다가 떠나고, 에블린은 윌을 인터넷에 연결합니다. 위성을 통해 온라인과 연결된 윌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확장해 나갑니다. 


윌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견을 해냅니다. 윌의 능력은 점점 강력해져 전 세계의 금융과 통신, 보안망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릅니다. 뛰어난 정보로 하루 만에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죠. 윌은 에블린의 도움을 받아 외딴 시골 마을에 자신만의 연구소를 건설합니다.


곧이어 윌은 만능에 가까운 나노입자를 개발합니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환자를 살리기도 하고, 세상의 공해 물질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선 통신을 이용해 나노입자가 들어있는 사람을 윌의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까지 보고 나자 에블린도 점점 윌의 능력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침내 프로스트는 자신의 의식을 인간의 몸으로 옮기는 실험을 합니다. 솔컴은 프로스트가 디브컴에게 넘어갈까봐 실험을 중단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구를 보존하고 재건하는 자신들의 임무가 무의미하다며 실험을 계속합니다. 솔컴은 프로스트를 파괴하겠다고 협박하지만, 프로스트는 이미 실험이 진행 중이라며 그럴 경우 인간을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합니다. 결국, 프로스트는 인간의 몸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인간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데이터에 충격을 받고 “두렵다”라고 이야기하죠. 프로스트는 괴로워하며 다시 로봇의 몸체로 돌아오지만, 솔컴과 디브컴, 모오델은 논의 끝에 프로스트가 인간으로 탄생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육체로 되돌려 보냅니다. 프로스트는 인간의 육체에 적응한 뒤 스스로 인공지능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베타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 동반자로 삼습니다.

 

 

에블린은 먼저 스스로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윌에게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게 해서 윌까지 감염시키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연구소로 돌아간 에블린은 윌이 새로운 몸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게다가 윌은 에블린이 바이러스로 자신을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까지 알아채죠. 


테러 단체와 정부는 연구소를 공격합니다. 포격을 가해 윌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시설을 파괴합니다. 그 과정에서 에블린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쉽게 에블린을 치료할 수 있는 윌이지만, 전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테러 단체가 맥스를 인질로 협박하며 윌에게 스스로 바이러스를 업로드하라고 요구합니다. 


윌은 갈등합니다. 그러나 에블린의 말에 따라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업로드합니다. 그렇게 윌은 죽어가며, 모두 에블린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망쳐 놓은 지구를 복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과연 인간의 의식은 육체와 무관할까?

 

 

육체 달라지면 정체성도 변할 수밖에


‘트랜센던스’의 윌이 인간일 때는 스타 과학자였지만, 슈퍼컴퓨터가 돼 막대한 능력을 손에 넣고 나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결국, 많은 SF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됩니다. 컴퓨터가 된 뒤에는 인간성이 사라지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죠. 분명히 사람이었는데, 컴퓨터에 업로드되면 인간성도 변하는 것일까요?


반대로 ‘프로스트와 베타’의 프로스트는 논리를 넘어선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인간의 여러 측면을 연구합니다. 지구의 경치를 인간처럼 감상하기 위해 인간의 눈을 닮은 모조 장치를 만들어서 쓰기도 하죠. 


인간의 육체를 되살리고 신경계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 자신의 의식을 육체 안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차차 적응하고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찾아갑니다. 지구를 관리하던 인공지능들도 프로스트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명령에 따르죠. 프로스트의 지적 능력이 다른 인공지능보다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기계처럼 ‘측정’하지 않고 인간의 육체를 통해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연 의식은 하드웨어 혹은 육체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하드웨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인간으로서의 윌과 컴퓨터로서의 윌, 인류 멸망 이후에 지구를 관리하는 인공지능들은 각각 그 자체로 충분히 지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지성을 담는 그릇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지성체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그릇을 옮기는 경우입니다. 지성을 담는 그릇이 바뀌면 정체성에도 변화가 생길까요? 이 두 작품을 봤을 때 작가들은 그릇에 따라 정체성이 바뀐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설령 본질이 그대로라고 해도 하드웨어에 따라 감각과 능력이 달라진다면 예전 그대로이기는 어렵겠죠.


이와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한스 모라벡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패턴 동일성을 주장했습니다. 인간 의식의 본질을 패턴으로 정의하고, 이 패턴만 유지된다면 정체성은 그대로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내 두뇌의 패턴을 완벽하게 스캔해서 정보화할 수 있다면, 인간의 육체든 컴퓨터든 어느 하드웨어에 담아도 나는 나라는 겁니다. 


모라벡 교수는 미래에는 우리 의식이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돼 하드웨어를 옮겨 다니며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복사도 가능하겠죠. 그러면 내 의식을 복사해서 여러 하드웨어에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똑같은 내가 여러 명이 되는 걸까요? 


아무리 고유의 패턴이 존재한다고 해도 정체성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정체성이란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하니까요. 하드웨어를 옮긴 직후에는 이전과 똑같을지 몰라도 새 하드웨어와 상호작용하면서 사는 동안 서서히 정체성도 변할 겁니다. 복사한 의식도 천천히 다른 존재로 갈라지겠죠. 


감정적으로는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모라벡 교수의 의견에 끌리지만, 사람은 어차피 육체가 바뀌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성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 변화가 자연스러운 거라면 육체를 갈아타면서 생기는 변화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고호관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SF와 과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SF 명예의 전당’ ‘낙원의 샘’ ‘링월드’ ‘신의 망치’ 등이 있고, 최근 달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룬 책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출간했다. hokwan.ko@gmail.com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작가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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