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험, 암 보험, 치아 보험, 태아 보험많고 많은 보험 중에 최근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보험이 있다. ‘MZ무배당기후위기바로행동보험
(이하 기후보험)’, 말 그대로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보험이다. 이 보험은 보험료를 지불하는 방식이 조금 특별하다. 가전제품 사용량 줄이기, 배달 음식 덜 먹기, 채식 위주로 먹기 등 일상 속 작은 실천들이 곧 보험료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강경민 대표는 대구에서 제로웨이스트샵 겸 비건 음식점 ‘더커먼’을 운영하고 있다. 강 대표를 9월 26일 화상으로 만났다.
편집자 수
더커먼 운영부터 MZ무배당기후위기바로행동보험(이하 기후보험) 프로젝트까지 많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네, 우선 저는 더커먼에서 기획과 마케팅, 메뉴판 제작, 음식 개발 등을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디자인 작업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환경 관련 워크숍도 열어요. 2024년에는 비영리 단체인 ‘더커먼 크루’의 이름으로 기후보험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최근에는 강연 요청도 많아져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죠.
이전엔 디자이너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더커먼을 연 건 어떤 계기였나요?
저는 원래 미술을 전공했고 이를 살려서 상품을 시각적으로 사고 싶게끔 연출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나 세트 스타일리스트로 일했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소비 중심의 문화와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 거예요. 평소 환경 문제나 동물권에 관심이 많았기에 신념과 상반되는 작업을 하면서 회의감을 느꼈죠.
이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어요. 그곳에서 1년 넘게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사람들이 모여서 환경에 대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유럽에서는 흔했지만 당시 한국에는 많이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제로웨이스트샵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게 하려면 음식이나 마실 것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제가 2010년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가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팔려다 보니 비건 음식점까지 운영하게 됐어요. 제로웨이스트샵과 비건 음식점이 합쳐진 공간은 외국인들조차도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어요.
이곳에서 병뚜껑 수거, 친환경 비누 체험, 우산 수리 워크숍 같은 제로웨이스트 체험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환경 문제에 관해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기획하고 있어요. 워크숍이나 강연 등은 사실 수익과는 큰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쉽진 않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끌고 가고 있죠.
환경을 위한 행동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음의 불편함’인 것 같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하니까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죠.
저는 상상력이 좋은 편이에요. 식재료를 고를 때도 이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상상하고, 물건이 버려지는 걸 보면 그게 도대체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고기도 그래서 끊었어요. 고기를 보며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의 삶을 상상하니까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기후보험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신 거예요?
환경을 주제로 한 강연 요청을 많이 받으면서 더 공부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지식도 늘어나면서 걱정도 더 많이 하게 됐죠. 한 번은 강연 자료를 준비하면서 기후 시나리오를 찾아봤어요. 이전에는 기후위기가 오면 다 같이 힘들어지고, 인간이 어쩌면 멸종할지도 모른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후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기온이 1.5℃ 오르면 식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쌀조차 살 수 없게 돼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어요. 옆집에서 쌀을 훔치러 오고, 집회를 여는 등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거죠. 상상이 구체적으로 되니까 진짜 내 일상이 파괴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보험 상담사가 온 거예요. ‘100세 보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보험 약관을 내밀더라고요. 그걸 본 뒤로 계속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진짜 우리가 30년 후에도 살 수 있을까?’ 상담이 끝나고 가게로 돌아와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가 “차라리 기후위기 보험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죠.
때마침 숲과나눔 초록열매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곧바로 신청했고 운 좋게 선정됐어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팀을 꾸려 2023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기후보험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보험이라니 신기하네요.
보험은 결국 미래에 일어날 위험을 대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후위기처럼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손해들을 보험이라는 형식으로 나열해 보면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어렴풋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느낄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보험료는 돈이 아닌 우리의 행동으로 지불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샤워 시간을 줄이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등 구체적인 실천 항목이 들어있어요. 이렇게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보험료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보장을 쌓아가는 거죠.
저도 텀블러 사용하기를 실천하고 있는데 간혹 유별나게 보는 사람이 있어서 꽤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이게 진짜 ‘힙(hip)’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용기를 내는 게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거든요. 예를 들어 카페에서 “빨대는 필요 없다”고 말하며 텀블러를 내밀 때, 처음에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자꾸 보다 보면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당당하게 앞장서서 실천하는 모습이, 결국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우리 모두가 인플루언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수백만 명이 아닌 한 명의 인식이라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인플루언서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무기력해지지 않고, 내 작은 행동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지금의 공간을 지속 가능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숙박 공간으로 확장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통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예쁜 일러스트 포스터 등 의미가 담긴 작품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벽에 붙여놓고 일상 속에서 계속 그 의미를 상기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