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의 상식에 도전한다. 재미없는 과학과 과학자를 재미있고 가치로운 것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멋진 과학자의 모델을 보여주려 한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고 '나도 저런 과학자가 돼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그의 작업은 보람으로 바뀐다.
가늘고 곧은 몸매, 커트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약하게 마저 느껴지는 첫인상을 지닌 그의 첫마디는 “미안해요”였다. 귀국 직후부터 3시간의 수면을 제하고 지난 32시간 동안 꼬박 원고에 매달리다 잠깐 잠드는 바람에 늦었단다. 그에게 “괜찮습니다”고 한 것은 늦은 것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첫눈에 그가 뿜어내는 비상한 에너지에 위압된 때문은 아니었는지.
우리시대의 누구나가 기억하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의 유명 작가, 그가 바로 지금 과학도의 생활을 이야기하며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드라마 ‘카이스트’의 작가 송지나(40세)다.
돈이 되는 드라마
우리 시대에 이 나라에서 그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이 “과연 돈이 될까”. 그가 ‘카이스트’를 쓰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전했던 한결같은 우려였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가치보다는 상업적 이득이 우선되는 우리 시대의 천박한 문화의식에 대한 자조적인 푸념이었는지 모른다. 과학과 과학자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왜 지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일까. 그는 “과학자들을 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신기하다”며 평소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지녔던 관심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은 비록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심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그 탐구심이 만든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생긴 계기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3년 전쯤 대덕연구단지에서 벌어진 드라마 작가를 위한 세미나.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던 연구소와 실험실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꾸며야 되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드라마는 좋은 모델을 제시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건전한 삶의 모델이 보여졌을 때 시청자는 감동을 느낍니다. 나도 저렇게 돼 봤으면, 혹은 저런 삶도 가치로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그런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과학자를 삶의 모델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카이스트’에는 여자 과학도들이 많이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여성과학자들의 수가 남성의 10분의 1도 안되지만 ‘카이스트’에서는 거의 절반이 여자다. 그는 여성 과학자, 여류 소설가 등 호칭에 여성을 나타내는 말을 붙이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족한 것일 뿐 여자이기 때문에 무엇이 달라지고, 달라져야 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모든 기회는 남녀에게 공통이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남녀를 동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에서나마 여성 과학자의 모델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그는 소리없이 남녀평등을 외치는 조용한 실천가인 것 같다.
2개월 동안 KAIST에서 생활
그는 ‘카이스트’를 쓰기 위해 지난 1년을 준비했다. 2개월 동안은 아예 KAIST 기숙사에 살면서 그곳의 과학도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들은 무언이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자료를 제공해주었지만, 어려운 것은 그들의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점이었어요.” “네가 날 이기려면 힘을 키워야해”라는 ‘모래시계’의 대사와 로봇 축구대회 준비과정을 보여주는 6회에서”바이휠 로봇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논홀로믹 콘스트레인트 제약이 그것입니다”라는 대사를 쓰기까지 그가 겪은 혼란과 난해함은 글솜씨만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학과 역사와 사회의 인문분야에는 해박한 그였지만 전쟁터의 총탄처럼 날아다니는 전문용어들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이 도대체 어느 세상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어 다시 물으면 그들은 아예 수식을 동원하고 물리법칙을 가져다가 더 캄캄하게 만들기 일쑤였어요.” 안되겠다 싶어 참고 자료를 요청하면 수식과 수치들이 빽빽한 논문을 복사해주는가 하면 외국어로 된 원서들을 한 무더기씩 가져다주는 순박한 짓을 해댔다.
과학적 이론과 사실에 대한 막막함이 조금씩 걷혀가고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공감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식판을 들고 잔디밭에 모인 과학도들이 어제의 미팅에 관한 것이나 다음 주에 있을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이 앉은 풀밭을 격자로 나누어 한 격자 속의 벌레 수를 세고 풀밭 전체의 벌레 수를 계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샴푸에서는 계면활성제를, 단풍에서는 안토시아닌을 찾아내는 그들은 생활의 모든 곳에서 과학을 발견하고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사랑과 열정과 고뇌가 있었다. 세상의 어느 곳에나 있는 남녀간의 사랑은 물론 과학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고뇌가 물기 없는 수식과 자연법칙으로 똘똘 뭉친 듯한 사람들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판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그래서 드라마 ‘카이스트’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한국판으로 비유된다. “사랑 타령이나 하는 목적 없는 기존의 청춘드라마를 넘어 미친듯이 공부하는 공부벌레들의 모습에서 뜨겁게 사랑하고 깊이 고뇌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을 그리려고 했지요.” 민재, 채영, 정태 등이 컴퓨터 해킹과 로봇 축구대회를 통해 그려내는 젊음은 분명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이제 6회가 넘었을 뿐인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가는 요인을 IMF가 가져다준 오늘의 절망 속에서 귀중한 희망이 보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우리의 미래가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진지한 젊은이들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이제 그는 “또하나의 사랑타령이겠지”라고 냉소했던 눈들이 “뭔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바뀌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카이스트’의 힘은 이 드라마가 작가의 서재에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KAIST의 강의실과 실험실 주변에서 쓰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고, 소재들은 교수와 학생들이 벌이는 일상사 속에서 무궁하게 얻어진다. 전공지식만 빼고 모든 것이 서툰 전자과의 박기훈 교수(연기자 안정훈), 천하의 영재만 인정하는 이희정 교수(연기자 이휘향), 로봇 연구 동아리 회장인 민재(연기자 이민우), 동료 채영(연기자 채림), 캠퍼스의 괴짜 정태(연기자 박정현) 등이 펼치는 일상사가 모두 KAIST에서 벌어지는 실재 생활에 기초한 것이다.
과학과 오락 사이의 줄타기
그러나 현실적인 일상은 실감은 있지만 극적이지는 않다. 여기가 흔한 일상을 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발군의 극작가가 서 있는 지점일 것이다. 헌데 드라마 ‘카이스트’를 만드는데는 천하의 송지나도 쩔쩔매는 또한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과학을 극적으로 만드느냐는 문제다. 의료나 법정 드라마는 내용 속에 의학, 법학의 이론이 삽입된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익숙한 것들이므로 시청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자란 어떤 모습인가. 도수가 높아 알이 두꺼운 안경, 실험복 가운, 나이든 남자, 덥수룩한 머리, 시험관을 들고 있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우리가 가진 과학자의 이미지다. 어렵고 복잡하고 나와는 거리가 멀고, 몰라도 되는 그런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이 아닌가.
또한 작가 자신은 과학 이론을 완전히 소화하고 대중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학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재미있다고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것을 일상의 영역으로 내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전적으로 과학이 될 수도 없고 전적으로 유희적인 드라마가 될 수도 없는, 양쪽을 동시에 통합해야 하는 전에 없던 어려움이 지금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양쪽을 오가며 줄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미 시작했으면서도 매회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과학은 어려운 것인가.
척박한 과학문화
이것은 아마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그가 어려워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과학문화가 올바로 서 있지 못한 채 과학을 한 번도 이해하려고 해본 적 없는 일반 시청자들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적 교양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적 교양이라고 하면 설레발을 치는 우리 식의 왜곡된 교양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과학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저변 문화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과학을 다루는 방송프로그램이 몇이나 있었던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각지의 과학관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천문학, 물리학 등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과학 프로그램들이 실로 다양하다. 그만큼 사회가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중의 문화를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과학문화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또 한가지 증거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성장한 관료가 거의 없다는 것을 들었다. 고교 과정에서 문·이과를 나누어 진로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거의 반반이다. 그러나 이들이 성장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시기가 되면 이과계열의 사람들은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술관료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너나 없이 모아도 비율은 전체의 10%정도일 뿐이다.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과학이 아니고 정치가 아닙니까.”
이런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볼 때, 밤 새워 쓴 리포트를 보고도 칭찬은 커녕 이렇게 공부해서 어쩌려느냐는 수모를 주는 이희정 교수는 차라리 이러한 우리 과학문화의 편협성에 대적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제자들의 열정과 고뇌가 왜 대견하지 않으랴만 척박한 토양을 이기고 이루어내야 할 희망찬 미래가 그들의 어깨에 걸려있다는 절박함이 칭찬보다는 회초리를 내도록 한 것이다.
날마다 뉴스에서 위정자들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뒤따르는 엄청난 액수의 뇌물과 부정한 돈을 본다. 신선한 혈액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제대로 돌아야 건강하듯이 그 부정한 돈의 1백분의 1만이라도 과학자와 과학기술에 옳게 쓰여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수년 내에 크게 달라질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데우스보다 살리에르가 필요
“저는 진정한 과학자는 단숨에 노벨상을 거머쥐는 천재가 아니라고 봐요.”그래서 그는 드라마 6회째에서 천재 아마데우스보다는 노력하는 살리에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천부적이라는 말 속에서 한사람이 무엇을 이루기 위해 들인 땀과 노력을 모두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런 과정 없이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떨어지는 업적이란 결코 없으며, 있더라도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세상이 천재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의 뒤에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볼 줄 알았으면 해요.”
그가 만난 과학자는 ‘더 할 수 없이 소박하고 천진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권모술수를 부릴 줄 모르고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들은 자신과 같은 드라마 작가보다도 훨씬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작가는 기껏 사람들에게 생각할 무엇을 던져주는 존재이지만 과학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좋을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과학자이듯이 그들은 나쁜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과학도들이 순수하고 선량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주변과 사회를 볼줄 아는 폭넓은 소양을 기르는데도 눈을 돌렸으면 해요." 과학자가 보는 것이 과학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