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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천재 | 액시온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라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오감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행성, 가스 등 보통물질은 전체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직접 관측할 수 없고 은하의 관측 결과 등을 토대로 그 존재를 추정할 뿐이다. 최근에는 암흑물질을 설명하기 위한 결정적 단서로 ‘액시온’이 거론되고 있다.

 

암흑물질은 은하에 골고루 분포돼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은하의 회전 속도, 중력렌즈 효과, 은하단 충돌 등 많은 현상이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암흑물질은 빛을 흡수하지도 않고 방출하지도 않기 때문에 ‘암흑(dark)’이라고 표현하며 오직 중력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연구팀이 힉스 입자를 발견해 표준모형이 완성되면서 이후 과학계에서는 우주를 좀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암흑물질의 분포는 오래 전 은하 형성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그 의미가 깊다. 


암흑물질의 강력한 후보로는 윔프(WIMP)와 액시온(axion)이라는 입자가 대두되고 있으며 지난 수십 년 전부터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과 필자가 속한 액시온및극한상호작용연구단에서 입자 검출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강한 CP 문제 말끔히 씻어줄 액시온


액시온 입자는 ‘강한 CP 문제’라고 하는, 입자 물리학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가상의 입자다. 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 중 강력에서 ‘CP 대칭성 깨짐’ 현상은 이론값과 실험값에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강한 CP 문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대칭성 깨짐 현상은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불균형과 관련돼 있다고 여겨진다. 1977년 로베르토 페체이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헬렌 퀸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 연구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체이-퀸 이론’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서 새로운 입자 개념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액시온이다. 


액시온이라는 이름은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랭크 윌첵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교수가 당시 널리 쓰이던 주방세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주방세제가 때를 깨끗이 씻어주듯이 이 입자가 강한 CP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79년 김진의 당시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액시온이 우주 생성 초기에 만들어졌다면, 그 질량이 매우 작을 수 있다’는 이론적인 제안을 하면서, 질량이 아주 작은 ‘보이지 않는 액시온(invisible axion)’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많은 액시온 실험들이 이 개념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83년에는 액시온과 관련된 세 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액시온 입자가 특정 질량 영역에 있다면 우주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우주론적 의미를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액시온의 기적(axion miracle)’이라 불리며 액시온이 암흑물질을 설명할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액시온이 광자로 변하는 순간 포착 


같은 해인 1983년, 피에르 시키비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실험실에서 액시온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액시온이 강한 자기장과 반응해 특정 진동수를 갖는 광자(빛 알갱이)로 변환되는 현상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액시온을 검출하는 세 가지 유형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는 강한 자기장 안에 공진기를 놔 액시온이 변환된 광자의 진동수가 공진기의 진동수와 일치할 때 일어나는 공명현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조절하듯 공진기의 고유 진동수를 조율하다가 공명현상에 의해 신호가 증폭되는 때를 찾으면 된다. 25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워싱턴대 액시온암흑물질실험(ADMX·Axion Dark Matter Experiment)과 필자의 연구단이 이 방법을 이용한다.


한편 밀도가 아주 큰 태양의 핵으로부터 생성되는 액시온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태양에서 나온 액시온이 강한 자기장을 만나 변환된 광자를 검출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검출기가 마치 해바라기처럼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가야 한다. CERN에서 액시온태양망원경(CAST·CERN Axion Solar Telescope)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독일 전자싱크로트론센터(DESY)는 CAST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국제액시온관측소(IAXO·International Axion Observatory)에서 실험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강한 자석 사이에 벽을 만들고 한쪽에서 강한 레이저(결맞은 광자들의 집합)를 쏘면 자기장에 의해 광자들이 액시온으로 변환되는 현상으로도 액시온을 검출할 수 있다. 액시온은 일반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벽을 그대로 통과하고, 다른 편에 있는 자기장에 의해 다시 광자로 변한다. 쉽게 말해 액시온을 연구실에서 발생시켜 벽 넘어 반짝임을 감지하는 실험이다. DESY의 알프스(ALPS·Any Light Particles Search) 실험이 대표적인 사례고, 현재 알프스 2(ALPS II)로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이다. 

 

 

위상절연체로 액시온 구현 성공


액시온 연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액시온 검출방법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팀은 표면에만 전류가 흐르고 내부는 절연체인 위상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 안에서 액시온이 준입자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이론을 실험적으로 구현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2019년 10월 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자들이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특이한 금속인 바일 반금속을 이용했다. 바일 반금속의 전자들은 저온에서 결정체로 응집되며 밀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밀도 파동상태’가 되는데, 이때 바로 액시온의 위상절연체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바일 반금속에 외부 전자기장을 걸었다가 비정상적인 전류를 감지했고, 전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파동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전자기장에 액시온이 반응하는 것과 유사한 패턴이었다. 즉, 일반 금속에서 자유전자가 존재하듯이 액시온의 위상절연체에는 액시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doi: 10.1038/s41586-019-1630-4


이 연구결과는 오랫동안 우주양자론에서 기본입자로 여겨진 액시온의 흔적을 물질에서도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번 연구결과는 윌첵 교수가 언급했듯이 액시온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사는 공간이라는 물질에도 액시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추후에는 연구팀이 위상절연체로 활용한 바일 반금속 같은 물질을 액시온을 검출하는 ‘안테나’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액시온 발견, 앞으로 10년이 관건


암흑물질과 더불어 물리학의 또 하나의 난제는 반물질이다. 정확히는 현재 우주에 물질만 남아있고 반물질은 거의 찾을 수 없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암흑물질과 반물질의 난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비교적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팀은 암흑물질이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서 각기 다른 상호작용을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만일 암흑물질이 물질보다는 반물질과의 반응을 선호한다면 우주의 물질-반물질 불균형을 설명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물질 중 하나인 반양성자의 스핀(입자 고유의 각운동량)은 자기장 내에서 세차운동을 하는데, 만일 이 반양성자가 액시온과 상호작용을 하면 세차운동의 주기가 변하게 된다. 연구팀은 페닝트랩이라는 특수한 장치를 고안해 이를 측정하고자 했다. 


페닝트랩은 전자기장을 이용해 하전입자를 가두는 장치다. 반양성자 감속기가 만들어낸 반양성자를 고진공환경에 가두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지만 기존 천체물리학에서 초신성 등을 통해 반물질을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것보다 10만 배 이상 정밀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doi: 10.1038/s41586-019-1727-9


암흑물질부터 반물질까지, 물리학의 다양한 미스터리를 풀어줄 열쇠인 액시온은 언제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까. 힉스 입자의 존재 가능성이 1964년에 처음 제안되고, 약 반세기가 지나서야 발견됐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1977년에 처음 알려진 액시온 입자도 머지않았다. 앞으로 10여 년 동안의 연구가 액시온 입자 발견이라는 결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윤성우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극한상호작용연구단 연구위원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미지의 암흑물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암흑물질의 후보인 액시온을 연구하고 있다. swyoun@ibs.re.kr

 

 

용어정리

 

* 표준모형 (Standard Model) : 자연계를 이루는 기본입자 12개와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 4개, 그리고 힉스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 기본 상호작용 :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네 가지 힘으로 중력과 전자기력, 강한 상호작용인 강력(strong force), 약한 상호작용인 약력(weak force)이 있다.

 

* CP 대칭성 깨짐 (Charge-Parity Violation) : 전하켤레 대칭(C 대칭)과 패리티 대칭(P 대칭)을 합한 CP 대칭이 보존되지 않는 현상. CP는 입자를 반입자로 또는 반입자를 입자로 바꾸는 변환으로 같은 수의 입자와 반입자가 존재하면 CP 대칭을 이루고, 그렇지 않으면 CP 대칭성 깨짐이 생긴다.

 

* 세차운동 : 물체의 회전축이 회전을 하는 운동. 지구의 회전축도 매우 느리기는 하지만 세차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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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윤성우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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