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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기 폭풍이 빚어낸 걸작 오로라

한반도에서 첫 촬영 가능했던 이유

10월 30일 새벽 3시 40분경. 경북 영천 보현산 천문대에서는 국내 천문 역사상 최초의 쾌거가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측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오로라를 한국해양연구원(KORDI) 극지연구소 원영인 박사팀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붉은색, 녹색 또는 자주색을 띠는 오로라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색색의 커튼, 활 모양, 섬광과 같은 번쩍임 등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는 신비로운 오로라를 보고 왕조가 탄생하거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는 징조라고 믿기도 했다. 때로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도 여겼다.


그러나 이제 오로라는 더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현대과학은 오로라의 신비를 벗길 수 있는 두가지 열쇠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입자가 그리는 한폭의 그림

 

10월 30일 새벽 보현산 국 립천문대에서 원 박사팀이 관측한 붉은색 오로라. 전천 카메라를 사용했고 노출시간 은 1분이다.


북반구에서는 오로라를 북극광이, 남반구에서는 남극광이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로라는 무언가가 빛을 내는 현상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전기를 띤 입자들. 이런 대전입자들 중 일부는 지구 자기장의 힘에 이끌려 자기력선을 따라 이동하다가 지자기 북극과 남극 방향으로 끌려 들어간다.


대전입자가 대기 중의 산소 또는 질소와 만나면 충돌하면서 빛을 낸다. 산소와 충돌해 방출되는 빛은 그 파장이 5백57.5nm 또는 6백30nm(나노미터, 1nm=${10}^{-9}$m)다. 이는 가시광선 영역이며 우리 눈에는 각각 녹색 또는 적색으로 보인다. 또 질소와 충돌해 방출되는 빛은 파장이 6백-7백nm이므로 적색이다. 지구 자기장이 오로라의 신비를 벗기는 한가지 열쇠인 셈이다.


오로라는 1백-4백km 고도의 상층 대기권에 생긴다. 이보다 낮은 대기 중에 구름이 끼었거나, 불빛 때문에 하늘이 밝으면 오로라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오로라가 자주 관측되는 지역의 밤하늘이 유독 어둡고 날씨가 맑은 이유다.


그런데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오로라는 위도 60-80°의 고위도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저위도 지역은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지난 10월 30일 새벽 한반도 상공에서 관측된 오로라는 이변이었을까. 같은 시기에 미국 북부, 캐나다, 일본의 홋카이도 등지에서도 오로라를 관측했다는 보고가 잇따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단순한 이변은 아님에 분명하다. 과연 무엇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오로라가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오로라를 관측하기 어려운 지역인 우리나라에서도 촬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원자폭탄 4백억개와 동급인 플레어

오로라의 신비를 벗겨내는데 필요한 다른 한가지 열쇠인 태양 활동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지난 10월말 이후부터 11월초에는 목성의 크기만한 거대한 태양 흑점(활동영역 10486)에서 플레어라고 불리는 강력한 폭발이 수차례 일어났다. 플레어는 태양계 안에서 가장 강한 폭발 현상이다. 이와 같은 태양 폭발의 주기는 11년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흑점의 주기와 대략적으로 일치하며, 태양 자기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흑점 주위에서 주로 발생한다. 현재 흑점이 극대기를 지나 극소기로 가는 단계임을 감안하면 이번 대형 폭발은 다소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플레어의 세기는 폭발 당시 방출된 X선의 강도에 따라 X급, M급, C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강력한 X급 플레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약 4백억개의 위력과 맞먹는다. 10월 23일 X1.1, X5.4급 플레어를 시작으로, 11월 4일까지 약 열흘 동안, X급 플레어만 해도 10차례 있었다. 10월 29일 밤에는 관측 사상 최대인 X17급 플레어가 발생한데 이어, 11월 4일에는 이에 질세라 X28로 추정되는 초강력 플레어가 앞선 기록을 갱신했다. 현재 측정 가능한 플레어의 최대 강도가 X20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번에 지구를 강타한 플레어는 엄청난 세기다.


폭발을 일으킨 흑점은 태양이 자전하면 뒤편으로 갔다가 다시 지구 쪽을 향한다. 강력한 플레어가 또다시 기록을 갱신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플레어가 발생하면 수십억t의 대전입자가 초당 수천km의 속도로 뿜어져 나오는 코로나 질량 방출(CME) 현상이 일어난다. 이와 더불어 방출된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을 심하게 왜곡시키는데, 이를 ‘지자기 폭풍’이라고 한다. 지자기 폭풍이 일어나면 좀더 넓은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다. 1909년 대규모 지자기 폭풍이 일어났을 때는 지자기의 적도에 가까운 싱가폴에서도 오로라를 목격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30일 한반도 상공에서 오로라 관측이 가능했던 까닭도 태양 폭발로 인한 지자기 폭풍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원 박사팀은 추측하고 있다.


지자기 폭풍이 얼마나 강한지는 자력측정기를 이용해 측정한 지자기지수로 나타낸다. 하루 동안 일어난 지구 자기장의 미세한 변화량들을 평균해 하루에 0-9 중 하나의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번 10월과 11월에 걸친 태양 폭발로 지자기지수 9를 기록했다. 이는 지구 자기장에 평균보다 수백배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태양 폭발시 위성은 비상체제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역의 밤하늘을 수놓은 오로라.


태양 폭발은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여주지만 지상의 전력시스템에 큰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구 자기장이 급격하게 변하면 강한 유도전류가 발생해 이것이 전력시스템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9년 캐나다 퀘백에서 변압기가 모두 타버려 9시간 동안 정전됐던 사태는 태양 폭발로 인한 지자기 폭풍이 원인이었다.


태양 폭발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위성이다. 1998년 무선호출기 통신위성인 갤럭시4는 태양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의 영향으로 작동 불능 상태가 됐다.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는 무선호출기가 불통되고 관련 통신시설이 마비되는 진통을 겪었다. 1998년 국제우주환경예보학회는 지난 25년간 태양 폭발로 인해 발생한 19개 민간위성의 대체 비용, 8개 민간위성의 기능 저하, 군사위성 손실액과 보험 배상액 등을 합한 결과, 예상되는 피해액이 1년에 약 25억 달러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10월말 태양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미 우주환경센터를 비롯한 각국의 우주환경 관련기관과 업체들은 서둘러 위성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경보했다. 대전입자가 밀려들어와 상층 대기권의 밀도가 변하면 위성이 고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내부 반도체 회로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위성을 포함한 많은 위성들이 태양 폭발 기간 동안 기기의 운영을 최소화하고, 필수적인 최소한의 동작만을 하게끔 운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시간 태양을 관측하는 미 해양대기국의 ACE위성에서는 대전입자의 속도를 측정하는 장비가 문제를 일으켰다가 복구됐다. 일본에서도 통신위성인 고다마호가 일시적으로 교신이 중단됐다가 복구됐고, 환경관측위성 미도리2호도 25일 이후 교신이 두절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월말의 태양 폭발로 무궁화위성이 정상궤도를 지키기 위해 연료를 다량 소진하고 있어 수명이 단축될 우려가 있다는 가능성이 보도됐다. 그러나 KT 위성운용단에서는 “아직 무궁화위성의 수명과 서비스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2003년 5월과 6월에 걸쳐 발생한 태양 폭발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단파통신에 방해를 일으킨 바 있다.

 


30분 전에야 피해 예측 가능

한국시각 10월 30일 새벽 12 시 29분 SOHO 위성이 찍은 태양 폭발 자외선 사진. 가운 데 아래쪽이 가장 강력한 폭발이 발생한 활동영역 10486이다.


만약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미리 알 수 있다면 피해가 훨씬 줄어들 것임은 자명하다. 태양 폭발과 같은 우주환경의 변화를 미리 알아내 시간적 여유를 갖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날씨 예보를 듣고 우산을 준비하거나 여행 계획을 짤 수 있듯이 말이다. 대기권 안의 구름이나 바람을 관찰해 지상의 환경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날씨 예보라면, 대기권 밖 우주환경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우주날씨다.


그러나 현재 우주날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태양 폭발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성이나 위성 탑재체의 경우 30분-24시간 전에서야 알 수 있다.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우주비행사를 제외하고는 우주날씨와 무관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태양에서 방출되는 입자의 대부분은 전기적 성질을 띤 전자, 양성자, 이온들이다. 이와 같은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되면 인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때문에 극지방을 자주 오가는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나 브리티시 에어라인사는 비행기에 X선 피폭정도를 알 수 있는 감지기를 달아 승무원이 X선에 많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한다. 또한 항법장치(GPS)의 신호는 태양 폭발로 상층 대기에 급격한 밀도 변화가 있을 때, 측정되는 위치에 큰 오차를 나타낸다. 급격히 변화한 지구 자기장에 의해 발생되는 유도전류가 송유관을 빨리 부식시킬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는 지질 탐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걸쳐 우주날씨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고 우주날씨가 막연히 두려워할 대상은 아니다. 일기예보처럼 익숙해지면 우주날씨 역시 인류가 받아들여야 할 당연한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까닭

우리나라 옛 문헌에도 오로라를 봤다는 기록이 있다. 1998년 ‘천문학논총’에 게재된 양홍진, 박창범, 박용구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오로라를 관측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에 처음 등장한다. 또 고려와 조선시대인 993-1747년 동안의 기록도 무려 7백여건에 달한다. 특히 ‘오행지’와 ‘천문지’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오로라에 대한 기록은 무려 2백여건이 넘는다. 조상들은 오로라의 다양한 색과 모양을 자세히 기록했다. 오로라를 일컫는 여러 단어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적기’(붉은 기운)다.


문헌에 ‘흑자’로 표기된 태양 흑점의 크기와 오로라의 기록을 토대로 분석해 본 결과, 흑점과 오로라가 모두 약 11년마다 반복되는 주기성을 보였다. 이는 문헌에 나타난 현상이 한반도 상공에서 관측된 오로라라는 사실의 과학적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요즘은 보기 어려운 오로라를 고려시대에 유독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현재 캐나다 북부에 위치한 지자기 북극이 예전에는 한반도 가까이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가 지자기적으로 고위도 지역이 돼 옛 조상들은 근사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현재도 지자기 북극은 매년 평균 약 40km씩 움직이고 있다. 1970년 이전의 속도에 비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약 50년 후에는 시베리아 북쪽으로 지자기 북극이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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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오승준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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