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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모든 기상학도에게는 방대한 데이터를 소화해 내기 위한 컴퓨터 지식이 필수로 요구된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천차만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문득 대기과학을 공부하는 나는 어떤 시각으로 빗방울을 보아야할까 자문해 본다.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시원하다'라는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은 내가 대기과학도이기에 앞서 더위를 타는 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는 바람의 떨림을 느끼며 내가 추구하고 이해하려는 대기과학이란 학문은 과연 어떤 것인가 곰곰 생각에 잠긴다.


서울대 대기과학과 이현아
 

●-첨단기술에 힘입은 현대 대기과학

지구를 위시한 행성들의 대기에서 발생하는 제현상을 이해·분석하며 이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대기과학은 기상학을 그 전신으로 한다.

일찍이 B.C.35년 고구려 동명왕 때 최초의 구름관측기록을 남긴 우리나라 기상학은 그 장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농경사회의 특수성으로 인해 단순히 기상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렸다. 따라서 '어떤 현상이 발생했다'가 아닌 '왜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를 추구하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기상학이 성립한 것은 근대사회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태양의 복사에너지가 그 원동력이 되는 대기의 제현상을 막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설명하는 데는 컴퓨터의 기능이 필수적이다. 즉 기상데이터는 컴퓨터를 통해 수학·물리학적 측면에서 그 역학적 메커니즘이 분석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기상학도에게 컴퓨터지식이 필수로 강조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기상위성의 등장으로 대기현상에 관해 더욱 풍부하고 정확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상학 발달사(史)의 쾌거다. 그러나 60년대 초반부터 수십개의 기상위성을 띄워 사용해온 미국이나 이웃 일본과 비교해 볼 때 일본으로부터 수시간이나 지난 기상자료를 전달받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인 우리 현실은 독자적 기상위성의 운용을 시급히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기상학은 대기오염이란 차원에서 인간의 일상생활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의식주 중심의 삶보다는 윤택하고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시민의식이 강화됐으며 이것은 중세 농업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기상학과는 다른 성격의 대기과학을 요구한다. 특히 대기중의 아황산가스양의 작은 변화(1백만분의 1단위)와 안개가 원인이 돼 8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스모그사건이나 오존층 파괴에 따른 대기의 온도상승, 태양흑점활동 강화에 의한 올해의 이상기후 등은 현대 대기과학이 밝혀낸 부정적인 사실들의 널리 알려진 예다. 또한 태풍이나 장마 등의 기상현상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재산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좀 더 정확하고 빠른 기상예보를 요구한다. 더욱이 댐이나 대형건물의 건축에 따른 주변지역에서의 이상기후발생과 대기오염물질의 확산 등은 사전에 기상학적 연구 조사를 통해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방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생활환경이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거나 생태계에 이상(異常)이 나타난 뒤에야 사후약방문격의 대책에 급급해 온 기존의 관행을 볼 때 전문인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대기과학에 대한 인식변화가 절실히 요망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호흡하는 대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는 현실과 결부된 대기과학의 응용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순수자연과학으로서의 학문탐구를 추구하는 대기과학도들의 열기가 뜨겁다 .

학부 1~2년 과정에서는 교양과목을 위주로 하여 미적분학 응용해석 통계학 등의 수학분야와 역학 열역학 물리화학 전산기개론 기상측기(기상 측정기구의 용도와 장단점을 배운다) 등의 기본적 과학분야를 공부한다. 이를 바탕으로 3~4학년에서는 기상역학 유체역학 대기오염이론 위성기상학 태양복사이론 등의 이론적 전공지식 습득과 더불어 종관분석 일기예보 등의 실험을 통해 실제 대기의 활동을 몸에 익힌다. 특히 대기과학이라는 학문은 종합과학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전공분야의 심도있는 기초적 지식 습득을 위해 타(他)과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학부에서의 공부는 대기과학의 정수를 배운다고 할 수 있는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준비단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소 기상대 항공사 등의 실제 응용분야를 택하기보다는 대학원 과정으로 진학하거나 유학을 통해 학문을 계속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학문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력하는 동료 모습에 자극받아

학력고사 후 교수님들과의 면접에서 '장래 대기과학분야의 제일인자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턱없이 욕심만 컸던 신입생시절 좁게만 느껴지던 과도서실을 보며 대학 4년동안 여기 소장된 책을 모두 읽고 말겠다는 야심도 가졌다. 물론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가는 한 권 두 권 책을 읽어나가며 저절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욕심과 도전이 많은 만큼 실망도 적지 않아서 공부에 대한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 회의와 비관을 가진 때도 많았다. 그럴 땐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이름없는 시골의 촌부가 됨이 낫지 않을까 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科)전산실에서 밤을 지새고 충혈된 눈으로 지나가는 선배를 보며 주위의 눈은 아랑곳 없이 손짓발짓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소화해내려는 친구나, 아직 능력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의 유체모델을 직접 시뮬레이션(simulation)해 보겠다고 컴퓨터에 온종일 매달려 있는 학우의 모습은 용기를 잃은 내게 새 힘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들 속에는 능력의 부족을 노력으로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대기과학의 미래에 동참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공서적을 뒤적이다 '난류(turbulence)는 대기 불안정의 결과물로서만이 아니라 대기 불안정을 억제하여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려는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그 현상인식의 참신한 방법론에 너무도 놀라고 기뻐서 떠들다가 과도서실에서 쫓겨난 기억이 새롭다. 물론 너무도 당연하고 대단치 않은 것을 저 석두(石頭)가 이제야 깨달았구나하는 비웃음을 사면서…. 그래도 그날은 너무나 행복했다. 지극히 소(小)자아적인 관점이겠지만 그러한 순간순간의 기쁨이 나를 대기과학에 몰입하게 하는 흡인력인지도 모르겠다.

'It may be sewage to you, but it is treasure to me!'
(네게는 하잘 것 없을 바로 그것이 내게는 보물이다!)

전공서적의 서두에 나왔던 이 말이 대학 4학년의 내게 가장 소중한 지침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가 대기과학을 그만큼 사랑하게 됐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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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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