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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동아 키즈 | 스탠퍼드대에서 구글까지 ‘황금 스펙’의 비결

술술 읽혀요│

어릴 때부터 천체물리학이 좋았다. 내가 사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물리 법칙에 따라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처음 읽은 뒤 물리학을 포함해 과학 전반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부모님을 직접 설득했고, 그때부터 과학동아를 읽기 시작했다. 
과학동아를 보면서 과학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읽었던 과학동아는 나의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해 줬다. 돌이켜 보면 과학에 대한 이런 흥미가 나를 세계 무대로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제무대를 꿈꾸게 만든 올림피아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 첫 번째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 ‘아시아-태평양 천문올림피아드(APAO)’ 대표단에 선정되면서였다. 2011년 카자흐스탄 악토베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나는 은메달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한국은 종합 1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 대회에서 얻은 건 메달만이 아니었다. 국제대회를 치르며 세계 곳곳에서 온 다른 나라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때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과학 선진국의 연구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더 깊이 배우고 싶었고, 천문학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나라인 미국에 가고 싶었다. 


이후 유학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하루라도 더 빨리 가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학을 심층적으로 배울 수 있지만 졸업 후 대부분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학고 대신, 영어 수업을 비롯해 유학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유학률이 높은 자율형사립고 국제반에 진학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영어 수업을 통해 영어 실력도 늘리고 유학 준비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궁극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과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청소년 과학영재 사사(師事) 사업’에 지원해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님을 멘토로 만나 과학을 더 깊이 공부했다. KAIST 사이버영재교육원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고, 교내 과학 동아리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대학 과목을 미리 수강하는 AP(Advanced Placement)를 이수했고, 국제천문올림피아드 교육 프로그램도 들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 ‘국제천문및천체물리올림피아드(IOAA)’ 한국 대표단에 선정됐고, 루마니아 수체아바에서 열린 대회에서 동메달을 받았다.  


내신도 신경 썼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올 A’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해외 대통령과학장학생에 선정됐고, 정부로부터 연간 6000만 원의 장학금을 받게 됐다. 

 

천체물리학도에서 컴퓨터공학도로


2015년 9월 꿈에 그리던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수업은 필수 과목 몇 개를 빼면 듣고 싶은 수업으로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천체물리학 수업도 들었다. 이때 새벽에 학교 천문대에 올라가 천체 사진을 찍어 분석하곤 했다. 기숙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가며 잠에서 깨고, 친구들과 차를 빌려 놀러 가는 등 여느 대학생처럼 즐겁게 보냈다.


스탠퍼드대는 모든 학생에게 전공 선택 전 지도교수(pre-major advisor)를 멘토로 연결해 준다. 내게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명예교수님이 배정됐다. 교수님을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진로 상담도 하고, 힘든 일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기숙사마다 담당 교수님이 있었는데, 종종 교수님 댁에 가서 인생의 조언도 구했다. 


기숙사에서는 주말 이벤트 외에 수요일 밤마다 기숙사 모임이 있어 친구를 사귈 기회는 충분했다. 첫 룸메이트와 같은 층 친구들과는 마음이 잘 맞아 주말마다 복도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버클리-스탠퍼드 풋볼 게임(‘Big Game’이라고 불린다)도 자주 갔다. 모르는 사람들과 키스하는 다소 해괴한 스탠퍼드대의 전통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자라온 배경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인생에서 가끔 수업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있다. 그럴 땐 소위 ‘땡땡이’도 쳤다. 관심 있는 강연이 있으면 들으러 갔고, 순전히 놀러 가기도 했다. 스탠퍼드대는 소규모 토론 수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출석 체크를 하지 않는데, 이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려는 학교 정책의 영향이었다. 그만큼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덕분에 나는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특히 방학 때는 여러 기관에서 인턴십을 했다.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왔을 때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연구 인턴십을 했고, 벤처에서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학교 옆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에서 퀘이사를 구별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연구 인턴십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꿈이 차츰 바뀌었다. 천체물리학도의 꿈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점점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2학년 말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갑자기 전공을 바꾸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래서 매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래밍 헬프데스크에 가서 조교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3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큰 기업에서 인턴십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세계적인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에 지원했다. 큰 회사들의 여름 인턴십 자리는 전년도 가을학기에 거의 다 차기 때문에 2018년 여름 인턴십을 1년 전인 2017년 9월경에 지원하고도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서류전형과 1차 인터뷰를 통과했고, 워싱턴주에 있는 MS 본사로 대면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신나게 학교 수업을 이틀 빠지고, MS 본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날 나는 면접관 4명 앞에서 아침 8시부터 4시간 동안 1시간에 하나씩 알고리즘 문제를 풀었다. 일주일 후 인턴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오피스365(Office365) 소속 팀에서 인턴십을 하며 기업에서 쓰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인턴십이 끝난 후 학교로 돌아와서는 스탠퍼드 인포랩(Stanford Infolab)에서 피싱 e메일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때까지도 구글 창업자가 스탠퍼드대 출신이라는 것과 이 연구실에서 구글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MS에선 인턴십, 구글에선 엔지니어로


MS 인턴십을 포함해 여러 경험을 하면서 빨리 기업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학부만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기로 했다. 다만 시작은 MS가 아니었다. 스탠퍼드대가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첫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4학년이 되자마자 구글에 지원했고, 풀타임(full-time)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게 2018년 11월 말이었다. 


그렇게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Geo’라는 부서에서 데이터를 이용해 구글맵을 발전시키는 업무를 하고 있다. 구글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지만, 하루하루 많이 배우고 있다. 구글 문화 자체가 도전과 배움을 장려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 즐겁게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스탠퍼드대가 있어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요즘 나의 하루는 출근길 셔틀버스에서 e메일을 읽으며 하루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글은 근무시간이 제각각이라 11시쯤 돼야 모든 팀원이 출근한다. 이때부터 각종 회의가 시작된다. 대략 오후 4시부터는 팀원들이 퇴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 업무가 끝나면 보통 회사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에는 코딩 연습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최근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5년 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구글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구글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고, 구글을 나와 스타트업을 세울지도 모른다. 헬스케어 산업을 공부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특허법과 기술 분쟁을 다루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에 갈 수도 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 앞으로도 인생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열어 놓으려고 한다. 


다만 나는 한국 정부의 장학금 등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으며 공부를 한 한국인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과학동아에서 한 번 더 나를 찾지 않을까. 과학동아에 다시 한번 글을 쓰며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내 얘기를 전하는 날까지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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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김연재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 에디터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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