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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오빠 논문연구소]사지마비 환자 벌떡 일으킬 뇌-컴퓨터 접속기술

뇌 신호로 직접 생각을 읽고 저장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수많은 SF소설과 SF영화의 소재로 사용됐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Brain)’가 대표적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르탱은 전신 마비로 외부 신호에 반응하지 못하는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 환자이지만, ‘뇌 활성 전기신호(뇌 신호)’를 해석하는 기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영화 ‘아바타’의 아바타도 생각(의식)만으로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입니다. 


최근 뇌 신호 처리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1~2012년 뇌 신호 처리 기술 관련 특허 출원은 연평균 8.5건이었지만, 2013~2018년에는 연평균 68.8건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할 논문은 동물에 국한된 뇌 신호 처리 기술을 처음으로 인간에게 접목해 그 가능성을 입증한 연구입니다. 

 

 

뇌 신호는 어떻게 읽나요?


뇌 신호 처리 기술의 출발점은 뇌 속 신경 활성과 그 역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신경세포의 활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뇌의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두개골 아래 대뇌에 미세 전극을 찔러 넣거나 표면에 부착하는 침습형과, 두개골 위의 두피 표면에 센서를 붙여 신호를 측정하는 비침습형입니다.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거나 신경세포 사이에 정보가 전달될 때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데, 이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서입니다.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순간적으로 세포막의 전위가 변합니다. 이를 활동 전위라고 합니다. 미세 전극은 이런 신경세포의 활동 전위를 측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신경세포가 어떤 패턴으로 활성화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신경세포 사이에 정보가 전달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는 대뇌나 두피 표면에 붙인 센서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수술할 필요가 없는 비침습형 방식은 편리한 대신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대뇌에서 발생한 신호가 두개골을 지나 두피까지 도달하면 신호의 세기가 약해지고 주변 잡음에도 취약해집니다. 그래서 뇌 신호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뇌에 직접 전극을 심는 침습형을 병행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수술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연구 목적에 따라서 둘 중 더 적합한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측정한 뇌 신호를 컴퓨터나 기계에 연결하는 기술을 ‘뇌-컴퓨터 접속(BCI·Brain Computer Interface)’ 또는 ‘뇌-기계 접속(BMI·Brain Machine Interface)’기술이라고 부릅니다. 뇌 신호를 기계에 연결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환자의 뇌 신호를 휠체어나 로봇 의수 같은 기계에 보내고 이를 제어해 환자가 움직이도록 돕는 것입니다.

 

 

뇌-컴퓨터 접속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했나요?
뇌-컴퓨터 접속기술 연구는 수십 년 전 쥐, 원숭이 등 동물을 대상으로 처음 시작됐습니다. 그러던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원이던 레이 호치버그 박사팀이 척수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nature04970


연구팀은 2001년에 신경 손상을 입은 25세 남성과 1999년에 신경이 손상된 55세 남성 등 환자 2명을 대상으로 대뇌 1차 운동피질 영역 일부에 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전극 96개로 구성된 전극다발을 심어 7~10개월간 뇌 신호를 분석했습니다. 환자별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도 촬영해 혈중 산소 농도와 뇌 신호 자료를 비교해 분석했습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환자의 생각을 읽는 기계장치를 만들었고, 환자는 생각만으로 컴퓨터의 마우스 위치를 옮기거나 로봇 팔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숭이 실험에서 신경세포 활성 여부에 따라 팔의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성공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뇌-컴퓨터 접속기술은 팔뿐만 아니라 사지마비 환자를 움직이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최근에는 루이 베나비 프랑스 그르노블대 생물물리학과 명예교수와 생명공학벤처 클리나텍 연구팀이 뇌 신호만으로 걷고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외골격로봇(엑소스켈레톤)을 개발하고, 팔과 다리를 못 쓰는 사지마비 환자에게 이 로봇을 입혀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내용은 국제학술지 ‘랜싯 신경학’ 12월호에 실렸습니다. doi: 10.1016/S1474-4422(19)30321-7


척수나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가 아닌 팔다리에 위치한 말초신경계를 활용하는 뇌-컴퓨터 접속기술 장치도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환자의 몸속에 전극을 직접 부착할 경우 뇌보다는 팔다리에 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신경 손상으로 인해 의사 표현이 어렵거나 청력을 잃은 환자를 위한 장치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뇌-컴퓨터 접속기술의 전망은 어떤가요?
뇌-컴퓨터 접속기술은 수많은 뇌 신호와 뇌 영상 자료를 처리해야 하는 만큼 인공지능(AI)의 딥러닝 알고리즘이 활용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팀이 올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언어 합성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연구팀은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측두엽 일부에서 얻은 뇌 신호를 언어로 바꿔 음성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586-019-1119-1 


연구팀은 올해 8월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개발한 웨어러블 뇌-컴퓨터 접속기술 장치도 공개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도 올해 7월 원숭이를 대상으로 뇌-컴퓨터 접속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필자가 속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뇌-컴퓨터인터페이스연구실은 일반인도 쓸 수 있도록 뇌 신호로 생활 기기를 제어하는 플랫폼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많은 연구팀이 뇌-컴퓨터 접속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뇌라는 미지의 대상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가야 할 길이 먼 분야입니다. 뇌-컴퓨터 접속기술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신 활동을 제어할 수 있는 만큼 기술 발전과 함께 윤리적인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인간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 에디터

    김진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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