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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는 1913년 친구에게 점성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듬해 관현악 모음곡인 ‘행성’을 작곡했다. 그런데 1916년 완성된 ‘행성’에는 태양계의 아홉 행성 중에서 ‘막내’인 명왕성이 빠져 있다. 명왕성은 1930년에 발견됐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해왕성을 포함해 태양계 행성이 8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 국제천문연맹(IAU)은 “명왕성과 새로운 천체 3개를 추가해 모두 12개를 태양계 행성으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명왕성 지위가 논란 불러

발단은 1930년 명왕성 발견이었다. 명왕성이 행성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태양계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굳어졌다.

당시에도 명왕성의 지위를 놓고 논란은 있었다. 명왕성이 지구의 위성인 달보다도 크기가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왕성 주변에서 다른 천체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왕성은 소행성으로 ‘격하’되지 않고 태양계의 ‘막내’ 행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990년대부터 해왕성 궤도 바깥의 ‘카이퍼 벨트’에서 상당한 크기의 천체들이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위치는 다시 흔들렸다. 하지만 카이퍼 벨트에서 발견된 천체들은 명왕성보다 작았고, 명왕성은 여전히 불안한 행성의 지위를 유지했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시기는 2003년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가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명왕성(2302km)보다 지름이 크고 달(3474km)보다 작은 천체 2003 UB313 (3000km, 일명 ‘제나’)이 명왕성보다 더 멀리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천문학계는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제나도 행성으로 인정해야 하고, 제나를 행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명왕성도 행성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IAU는 행성정의위원회(PDC)를 꾸렸다. 2년여 간의 연구 끝에 지난달 위원 7명은 만장일치로 행성의 새로운 정의를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행성으로 불리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다. 우선 구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자체 중력이 있어야 한다. 이 정도의 중력을 가지려면 천체의 질량이 5×1020kg, 지름은 800km 이상이어야 한다. 또 태양 주변을 도는 천체이되 태양과 같이 항성(별)이나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은 제외된다.


행성 후보 12개 더 있다

위원회의 행성 정의에 따라 세레스(Ceres)는 하루아침에 소행성에서 행성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지름이 930km로 새로운 행성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명왕성의 위성으로 생각해왔던 카론(Charon)은 카론과 명왕성이 서로 상대편을 공전하는 ‘이중 행성’(double planet)으로 분류되면서 행성으로 인정받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지름도 약 1200km여서 새로운 행성 정의에 맞아 떨어진다. 명왕성도 기존의 행성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한편 IAU는 기존의 9개 행성 중 명왕성을 제외한 8개 행성을 ‘고전 행성’에, 명왕성과 카론, 제나를 ‘명왕성과 비슷한 행성’이란 뜻의 ‘플루톤’(pluton)이라는 새로운 행성 범주에 넣었다.

서울대 김유제 박사(행성천문학 전공)는 “이번 결정으로 태양계 행성 체계가 복잡해졌다”며 “차라리 명왕성을 소행성으로 분류하고 태양계 행성을 8개로 바꾸는 편이 간단하고 혼란도 적다”고 밝혔다.

세레스의 경우 1801년 발견 당시 행성으로 불리다가 50년 뒤 소행성으로 분류됐고, 이번 결정에 따라 다시 행성으로 번복되면서 신분이 두 차례나 바뀌었다.

IAU에 따르면 현재 태양계 행성에 포함될 수 있는 ‘행성 후보’는 12개나 더 있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태양계 행성은 24개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김유제 박사는 “행성의 개수가 늘어나면 행성 발견의 의미 자체가 쇠퇴할 것”이라며 “언젠가 또 다시 행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IAU는 8월 24일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세레스를 비롯한 세 천체의 행성 지위 부여를 최종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