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검시관의 사건노트] 한파가 죽음에 미치는 영향...저체온사

한 해가 벌써 거의 다 지나고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이렇게 추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저체온증이다. 사람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항온동물이지만,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신체도 버틸 재간이 없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면 특이한 양상이 나타난다. 2010년 1월 충북 보은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자.

 

 

 2010. 01. 18 오전  이상 탈의 현상 확인


유난히도 추웠던 2010년 1월의 겨울날, 평소와 달리 일찍 출근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통의 전화와 함께 평온함은 깨졌다. 충북 보은군의 시골 마을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전화였다. 이 추운 겨울에 바지를 벗고 있는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나마 변사체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사실에 약간 안도했다.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일 확률은 비교적 낮아졌기 때문이다.


40여 분쯤 눈길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대문 앞쪽에는 외투와 바지, 신발, 지갑이 마치 전시품처럼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변사자 A 씨가 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채 눈이 쌓인 땅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먼저 현장 주변을 살폈다. 대문 앞에 내린 눈 위에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눈이 오는 날은 수사하기에 비교적 운이 좋은 날이다. 눈 위에 발자국이 찍히기 때문이다. 다만 사건 발생 이후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날이 풀려 눈이 녹아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이날은 다행히 발자국이 좋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보니, 현장에 찍힌 발자국은 한 사람의 것이었다. 현장에 벗어놓은 신발과 발자국을 비교한 결과 크기와 바닥의 무늬가 일치했다. 사망 당시 다른 사람의 접근이 없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변사자의 몸 위에 꽤 많은 양의 눈도 쌓여있었다. 변사자가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있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사망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살인사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변사자는 왜 그 추운 겨울에 집 앞에서 옷을 벗고 죽었을까. 


같은 날 오후 1시경 가까운 병원으로 시신을 옮겨 본격적으로 검시를 시작했다. 얼굴과 가슴에 생긴 선홍색 시반(屍斑)이 눈에 띄었다. 시반은 사망 이후 혈액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쏠리면서 생기는 반점으로, 보통 검붉은 색을 띤다.


하지만 주변 온도가 낮을 때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에 결합한 산소가 잘 떨어지지 않아 선홍색을 띤다. 저체온사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만약 저체온으로 사망한 것이라면 옷을 벗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저체온사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이상 탈의 현상이다. 이상 탈의 현상이란 체온조절의 중추인 간뇌의 시상하부가 추위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발생한다. 체온이 낮아지고 있음에도 열감을 느끼고 오히려 옷을 벗게 된다. 이 때문에 저체온사가 더 빨리 찾아온다. 


이상 탈의 현상은 수사에 혼선을 빚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여성 변사자가 겨울철 탈의 상태로 사망해 발견된 경우, 이를 성폭력과 관련된 살인사건으로 추정하고 수사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만큼 현장을 더욱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다시 검시로 돌아가 보자. 시체에는 시반 외에도 이마 아래에서 위쪽으로 형성된 찰과상이 확인됐고, 양쪽 팔꿈치와 무릎, 정강이에서는 찰과상과 타박상이 발견됐다. 이들 부위는 앞으로 넘어질 때 땅바닥에 신체가 닿는 부위다. 특히 정강이의 찰과상은 넘어진 뒤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손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손상은 변사자가 스스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는 변사자의 행적을 조사했다. A 씨는 사망 전날 읍내에서 술을 마시고 오후 10시경 택시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택시기사는 “변사자의 요청으로 집 앞이 아닌 마을 어귀에서 내려 주고 요금을 받은 뒤 곧바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A 씨는 다음 날 오전 8시경 가족들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상황과 변사자의 행적, 검시를 통해 추정해보면, A 씨는 대문 앞에서 넘어졌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망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둬야 했다. 택시기사가 거짓 진술을 한 건 아닐까. 택시기사와 물리적이 다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변사자의 양 손톱을 깎아 채취하고, 당시 택시기사가 입었던 옷을

제출받아 미세증거물과 유전자 감정을 의뢰했다. 그리고 더 정확한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부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2010. 01. 19  심장과 두개골에 남은 저체온사의 흔적


부검을 이야기하기 전에 저체온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저체온증을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저체온증은 우리 몸의 온도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35도 이하로 내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피부가 춥다는 신호를 받으면 신경계를 따라 시상하부까지 신호가 전달돼 외부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우리 몸의 온도 감지능력은 생각보다 꽤 예민해 단 0.01도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이에 맞춰 인체는 생리현상을 조절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중에서 주변 온도가 낮아졌을 때 우리 몸은 크게 2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첫 번째는 교감신경의 작용이다. 이를 통해 피부의 모세혈관과 입모근을 수축시켜 체외로 배출되는 열을 줄이고, 근육을 떨리게 해 운동으로 인한 열을 발생시킨다. 


두 번째는 호르몬의 분비다. 부신수질이 분비하는 아드레날린과 부신피질이 분비하는 당질코르티코이드의 분비를 촉진해 혈당량을 상승시키거나, 갑상선에서 티록신을 분비해 대사량을 늘려 체온을 상승시킨다. 


하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 계속해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점차 체온이 떨어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경우를 저체온사로 정의한다. 


이제 부검으로 돌아가 보자. 부검을 진행한 결과, 사망 직전 폐로 흡입된 차가운 공기로 인해 좌심혈(좌심방과 좌심실의 혈액)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고, 우심혈(우심방과 우심실의 혈액)은 공기의 영향을 받지 않아 암적색을 띠었다. 이는 죽기 직전까지 차가운 공기로 인해 체온이 떨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 두개골의 봉합선을 따라 미세한 골절이 있었는데, 이는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담당 부검의에 따르면 이는 뇌가 얼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봉합선을 따라 골절이 형성되는 현상으로, 저체온사의 지표 중 하나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45%였다. 만약 운전했다면 당시 기준으로도 면허취소는 물론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에 의한 의식장애가 생기고 감각이 마비돼 추위를 덜 느낀다. 하지만 알코올은 피하(피부의 표피와 진피 아래 조직)의 말초혈관을 확장해 체열 발산을 촉진하기 때문에 오히려 체온을 더 빨리 떨어뜨린다. 


부검 결과와 기존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A 씨는 아마도 바람을 쐬며 술을 깨기 위해 택시에서 내린 뒤 집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집 앞에 도착한 그는 술기운이 더욱 올라 더는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그의 이마와 팔꿈치, 무릎, 정강이에는 타박상과 찰과상이 생겼고, 이후 쓰러진 채 방치된 그는 체온이 점점 떨어졌다. 그러던 중 체온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열감을 느끼는 환각 상태에 빠져 옷을 벗었고, 여기에 술기운이 더해져 체온이 급속도로 낮아지면서 A 씨는 결국 사망했을 것이다. 수사팀은 최종적으로 저체온증에 의한 사망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정인남. 충남대 과학수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지방경찰청 검시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독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과 관련된 국내 변사사건의 특성 등에 대한 논문들을 집필했다. innam1965@police.go.kr

 

(굿바이! 또 만나요! 검시관의 사건 노트’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의학
    • 경찰행정학
    • 심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