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우리 크리스마스에는 이별해...굿바이, 초록페트병

초록색 페트병, 이젠 너를 보낼게

우리, 크리스마스에는 이별해. 지금까지 잘 버텨 왔지만, 더는 안 될 것 같아. 
그래, 알아. 너는 정말 최고였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잖아. 
이젠 그만 안녕….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초록색 페트병에 안녕을 고하자. 12월 25일부터 색깔이 있는 페트병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다. ‘페트’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의 줄임말이다. 


환경부가 8월 28일 입법 예고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12월 25일부터 시행된다. 법령이 시행되면 유색 페트병뿐만 아니라 일반접착제를 사용한 페트병 라벨, 폴리염화비닐(PVC) 재질의 포장재 등 3가지의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라벨┃수산화나트륨에 녹는 접착제만 허가


우선 라벨부터 살펴보자. 그간 페트병을 재활용할 때 가장 큰 난관이 라벨 제거였다. 라벨을 깨끗이 제거해야 고품질의 페트 재료를 다시 얻을 수 있다. 


라벨은 보통 얇은 필름 형태의 플라스틱으로 만드는데, 접착식과 비접착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접착식 라벨보다 비접착식 라벨이 제거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올해 4월 개정된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을 살펴보면 페트병 라벨의 재활용 등급을 4등급(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등급은 라벨의 접착 여부와 함께 라벨의 비중과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85~90도의 2% 수산화나트륨(NaOH) 용액을 이용해 녹일 수 있는 접착제를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로 정의한다. 


이 세 가지를 따지는 이유는 라벨 제거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페트병 재활용업체인 씨케이를 운영하는 권두영 대표는 “우선 기계를 이용해 페트병에서 일차적으로 라벨을 제거한 뒤, 물에 담가 떠오르는 라벨 조각을 분리한다”며 “이후 접착제로 인해 표면에 남은 라벨과 이물질 등을 제거하기 위해 고온의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수산화나트륨 용액은 접착제를 녹여 남아있던 라벨을 마저 떼 낸다.


이 때문에 접착제가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녹지 않거나, 라벨이 물의 비중인 1보다 무거워 용액 위로 떠 오르지 않으면 라벨을 완전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자원재활용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따르면 페트병 라벨 중 비중이 1 미만이며 절취선 등을 도입해 분리하기 쉽도록 만든 비접착식 라벨은 최우수 등급, 비중과 분리 편의성 등 다른 기준은 같지만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접착식 라벨의 경우 우수 등급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가 아닌 일반접착제를 사용한 라벨이나 비중 1 이상인 비접착식 라벨, 그리고 몸체에 직접 인쇄하거나 PVC, 종이, 금속 등이 섞인 라벨은 어려움 등급으로 분류한다. 다만 비중이 1 이상이더라도 절취선이 있어 소비자가 쉽게 분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보통 등급으로 분류한다. 


이들 중 이번에 금지 대상에 포함된 건 수산화나트륨으로 녹일 수 없는 일반접착제를 사용한 라벨이다. 업체들이 수산화나트륨에 녹는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를 쓰도록 유도해 재활용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환경부가 4월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용중인 접착식 라벨 중 71.5%가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가 아닌 일반접착제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이용한 라벨 제거 방식이 폐수 등 또 다른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공장 근로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산이나 염기는 환경호르몬과 다르게 장기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만성적으로 독성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접촉으로 인한 안전사고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갈색 페트병┃ 페트와 나일론 분리 안 돼 문제     

 

재활용 공정을 마친 페트병은 플레이크(flake)가 된다. 이들 플레이크는 재활용 제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이동해 재생 섬유나 재생 플라스틱 등으로 다시 
태어난다. 


일반적으로 재활용 플레이크는 색깔에 따라 투명 플레이크와 유색 플레이크 그리고 맥주 페트병을 분쇄한 갈색 플레이크 등 3종류로 제작된다. 이때 가장 쓸모가 있는 건 투명 플레이크다.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고품질 페트 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색 페트병에서는 유색 플레이크만 나온다. 페트병에서 색깔을 제거해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유색 플레이크의 경우 일반적으로 검은색을 내는 원료를 넣어 색을 덮어버린 뒤 검은색 합성섬유를 만드는 데 주로 활용한다”며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어려워 상품성이 훨씬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갈색 맥주 페트병의 경우 활용도는 더욱 떨어진다. 색깔도 문제지만 재료가 더 문제다. 갈색 맥주 페트병은 페트 단일재질이 아니라 페트에 다른 플라스틱을 섞은 복합재질로 만들었다. 샌드위치처럼 페트 사이에 나일론을 끼워 넣은 삼중 구조를 이루고 있다. 나일론이 외부에서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는 맥주의 탄산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벽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탄산음료와 달리 맥주의 경우 홉과 효모, 보리 등에서 유래한 단백질 성분이 있다. 외부에서 산소가 들어오면 산소에 의해 이들이 변성되고 맥주 맛을 잃는다. 그래서 산소 투과도가 낮은 나일론 필름을 페트 사이에 끼우는 것이다. 갈색을 넣은 이유 역시 햇빛의 자외선 등에 의한 단백질 변성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삼중 구조는 재활용에는 걸림돌이다. 권 대표는 “삼중 구조로 만든 맥주 페트병의 경우 페트와 나일론을 접착제로 단단하게 붙여놔 분리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이들을 단일소재로 분리해 재활용하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체재가 당장 없다는 이유로 갈색 맥주 페트병은 일단 이번 시행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대신 연말까지 퇴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경노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주무관은 “현재 환경부와 관련 업체,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공동으로 맥주 페트병의 대체재에 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PVC 포장재┃염화수소 방출로 사용 금지 


한편 이번 개정안으로 유색 페트병과 함께 PVC 소재의 포장재도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PVC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플라스틱이다. 


원래 PVC는 단단하며 부서지기 쉬운 물질이다. 그래서 제품으로 만들 때는 PVC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가소제(可塑劑)를 혼합한다. 가소제를 적게 쓰면 파이프 같은 단단한 소재가 되고, 가소제를 많이 쓰면 포장재와 같은 유연한 제품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가소제 때문에 PVC 제품이 대체로 열에 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PVC 제품은 재활용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설령 재활용한다고 해도 가소제로 인해 재생 플라스틱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유영재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가소제는 고분자를 이루는 사슬 사이사이에 끼어 들어가 물성을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PVC 포장재를 제작하는 데 들어간 다량의 가소제가 재생 플라스틱의 내열성과 내구성을 감소시켜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PVC는 생산이나 재활용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문제도 있다. PVC는 염소(Cl)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재활용 과정에서 염화수소(HCl) 등 유독물질을 방출한다. 유 책임연구원은 “PVC를 가열하면 염화수소가 만들어진다”며 “염화수소는 고분자의 사슬을 끊어 재생 플라스틱의 품질을 낮추기도 하지만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PVC 가소제로는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다이부틸프탈레이트(DBP), 부틸벤질프탈레이트(BBP) 등 주로 프탈레이트 계열 물질이 사용되는데, 이들은 모두 환경호르몬의 일종으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정한 유해물질로 등록돼 있다. 


특히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B등급 발암물질로도 지정했다. 유 책임연구원은 “PVC를 소각할 때에도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여러 국가가 PVC 포장재 사용을 규제하는 조항을 마련했다. 1991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현재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 일본 등이 PVC 사용을 직·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유 책임연구원은 “PVC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하면서 이를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대체하는 추세”라면서도 “화학적으로 PVC처럼 가성비가 높은 고분자가 많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PVC를 안전하게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 신소재·재료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