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프가 1940년대에 SF 로봇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처음으로 제시했던 로봇공학 3원칙은 오늘날 로봇공학자들의 논문에서까지도 중요한 기본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의 여러 고양과학 서적들이야 다른 석학들이 메울 수 있다고 해도,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로봇 시리즈로 대변되는 상상력은 누가 메꿔줄 수 있을까요?'
지난 4월 6일, 아이작 아시모프의 사망기사가 외신을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뒤, 어느 컴퓨터 통신망에 올라온 짤막한 위의 글은 그가 그동안 세상에서 차지했던 독보적인 비중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그의 과학소설(SF)들보다는 교양과학저술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소개되었지만, 원래 그의 본령은 무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가능성의 영역(SF)인 것이다.
아시모프는 21세 때인 1941년에 '밤이 오다'(Nightfall)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여섯 짝별(六連星), 즉 여섯 개의 태양이 번갈아가며 하늘을 비추는 어느 외계의 행성을 다룬 것인데, 이러한 설정 자체가 조금도 비과학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예를들면 세개의 짝별계가 한데 모여있는 여섯 짝별계인 쌍둥이자리의 으뜸별처럼 우주공간상에 그 실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여섯개의 태양 중 최소한 하나는 언제나 떠 있기 때문에 '밤'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2천년에 한번 꼴로 여섯개의 태양 모두가 지평선 아래로 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미지의 '밤'을 두려워하며 정치적·종교적인 갈등과 불안을 표출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전세계의 단편 과학소설들 중에서 가장 널리 소개되고 가장 많이 읽혀진 것으로 알려지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밤이 오다'라는 제목은 일본사람들이 붙인 것인데, 아시모프의 서거에 즈음해서 이 제목이 자꾸만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느낌을 지울 수가 있다. 세계 SF문학사에서 아시모프가 차지했던 위상을 감안해보면, 그의 서거는 실로 2천년 만에 밤이 도래하는 사건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크나큰 충격인 것이다.
생존 작가 중 가장 많이 얽히는 저자
'셰익스피어문학 입문' '성경 입문' '로마제국' '생물학의 역사' '소립자' '뉴트리노' '유전자 암호' '지진관측에 대하여' '혜성과 운석' '과학기술 인명사전' '지식인을 위한 과학 입문' '블랙홀' '로봇시리즈'(SF) '파운데이션시리즈'(SF) 'ABA살인사건'(추리소설) '유머백과' '신화의 탐구' '프랑스의 역사'…….
이 모든 저작은 오로지 아시모프 한 사람에 의해서 집필된 목록들이다. 더구나 위에 든 책들은 그의 수백 종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그가 관심을 두고 연구했던 분야는 학문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러한 관심의 폭과 깊이가 하나같이 전문가에 필적할 만큼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경이로움을 넘어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1940년대 초에 처음 자신의 책을 출간한 뒤, 서거할 때까지 그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칠줄 모르는 초인적인 집필욕을 과시해 왔다. 더구나 그의 저작들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알찬 내용과 독특한 개성, 해박한 지식을 담고 있다는 점은, 그를 여러모로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1990년에 발표된 '유네스코 문화통계연감'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저자들'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다. 이 자료는 외국어로 번역된 저작들만 다룬 것으로 보인다. 제1위는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으로서, 14개국에서 모두 2백87종의 출판물이 나온 것으로 되어있다. 이런 식으로 마르크스나 엥겔스, 또는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정치, 종교적인 인물 그리고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지나간 시대의 문학 대가들, 또 월트 디즈니나 그림 형제 안데르센처럼 역시 작고한 지 오래된 동화작가들,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같은 추리작가들 다음에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시모프의 이름이 20위에 올라있다. 세계 19개 국에서 82가지의 책이 번역, 소개된 것으로 나와 있다. 자료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시피, 이 통계는 인류 역사상의 인물 중에서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저자들의 누계다. 그 증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스무번째로 올라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더구나 이 자료는 실제 수치보다 상당부분 모자라는 것이다. 그의 과학소설들이나 기타 교양과학서적들이 우리나라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1, 2년 동안의 일이지만, 그 이전에도 해적판 번역물들이 꽤 있었다. 또 아시모프 자신도 이 자료가 발표된 뒤에 새롭게 출간한 저작들이 수십종에 이른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집필가'라는 명칭을 붙여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는 72세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엄밀히 따져서 천수를 누릴만큼은 누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독자들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가진 적이 없었고, 보증수표와도 같은 그의 왕성한 집필력이 앞으로도 10년은 더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런 초인적인 집필력과 왕성한 지적 욕구를 채워왔던 것일까. 그는 과연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별종'이었던 것일까. 글쓴이는 우연히 아시모프의 인간적인 됨됨이가 엿보이는 두가지 사실을 알고나서 작은 감동을 받은 바 있다.
1991년판 세계인명사전에서 아시모프의 항목을 찾아보면, 그의 화려한 경력 다음에 '취미:없음'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미 다른 글에서도 아시모프 자신이 '나는 트럼프나 체스같은 잡기를 하나도 할 줄 모른다'라고 밝힌 바 있지만, 이렇게 드러내 놓고 자신은 오로지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성실한 지성인의 한 이상형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극단적인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이상형'에 가깝지만,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꿈꾸는 삶을 아시모프는 실제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성실함 외에 또 한 가지, 그는 소박하고 겸허한 풍모가 내비치는 일면도 갖고있다. 아시모프는 1977년부터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잡지'(Isaac Asimov's Science Fiction Magazine)라는 SF잡지를 내기 시작했는데(잡지 명칭에 현역작가의 이름이 고유명사로 들어가는 것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시피 한 일이다), 그가 타계하기 바로 몇 달 전에 나온 이 잡지의 최근호들을 보면 독자들의 편지와 아시모프 자신이 일일이 쓴 답장이 같이 실려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미 오래전에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행세를 하고 있었을 고희의 나이에 그는 여전히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장기에 SF 황금시대 영향 입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시모프는 1920년 소련 페트로비치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한 유태계 러시아 이민의 후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고, 학교도 수재들을 위한 특별 코스를 다녔다고 한다. 11세 때는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되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고교생이 되자마자 그가 한 일은 도서관으로 달려가 성인용 도서열람증을 발급받은 것이었다. 나이 때문에 제한받았던 왕성한 지적 호기심부터 채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처음 집필활동을 시작한 것은 SF 분야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년 아시모프가 그 당시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SF에 끌렸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그 당시 'SF 황금시대'의 실체를 냉정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제1차 대전에 등장한 신무기들의 영향 등으로 미국에서도 일기 시작한 군수산업 관련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 당시 붐을 일으킨 과학소설과 어떤 식으로든 상관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기술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신무기가 소설속에 등장했다. 그러나 좀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당시의 고조되어가던 국제정세의 긴장이 소설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SF 황금시대'의 실체는, 흉측한 외계인들의 침입을 물리치는 근육질의 남자주인공과 매력적인 글래머의 여주인공이 전형이었다. 더해서 SF만의 독특한 발상도 이런 것들과 유사한 내용이어서, 이를테면 최소한의 과학적 논리도 없는 허무맹랑한 장면들이 묘사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로봇과의 섹스 등등이다.
아무튼 당시 우후죽순처럼 창간되어 가판대에 진열되었던 SF잡지들은, 소년 아시모프의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했지만 보수적인 그의 부모들은 그런 책을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그런 잡지들은 싸구려 저질물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직접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재미있게 등장한다. 아시모프 소년은 공책을 사서 도서관으로 가져간 다음, SF를 빌려서 정성스럽게 베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 쪽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선 짧은 대출기간 동안에 도저히 책 한 권을 다 베낄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손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럴 바에야 내가 직접 SF를 쓰자!' 그래서 아시모프는 12세 때부터 습작을 시작한 것이다.
과학소설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역시 소년시절부터 짐작할 수 있는 면이다. 그는 1980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이제까지 받아 본 생일선물 중에 가장 기뻤던 것이 어린 시절에 받은 '세계연감'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책에는 세계의 온갖 사회 문화 지리 인구 등등의 통계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가졌던 다방면에 걸친 관심이 결코 속 빈 강정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도 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에서는 각각 '수학 우등생'과 '생물학 우등생'을 뽑아 상을 주었는데, 아시모프 소년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를 두고 나무라자, 그는 상을 받은 아이들이 다른 과목은 잘 못했다고 대답했다. 아시모프는 그 두 과목에서 모두 차석이었던 것이다.
아시모프는 남자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여자를 사귈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같이 화학실험을 하면서 아이린이란 여학생을 알게 된다. 그녀가 사실상 아시모프의 첫 이성이었다. 아시모프는 아이린과 사귈 때의 에피소드도 특유의 유머로 묘사해놓고 있다.
"…나는 아이린과 제트 코스터를 타러 가는데 성공했다. 내딴에는 꾀를 쓴 것이었다. 열차가 하늘에서 곤두박질 칠 때 아이린은 무서움에 질린 나머지 내게 매달릴 것이고, 나는 그 틈에 키스를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열차가 하늘위로 올라가자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껏 2층 이상 되는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고, 고층빌딩에서 밖을 내려다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열차에서 내릴 때 내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린은 지극히 태연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이린이 다른 지방으로 떠나버리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아시모프는 괴로움을 달래려고 20대 초반에 한동안 콧수염을 기르고 다닌다.
그 뒤 '브루클린 작가클럽'이라는 조그마한 SF작가들의 회합을 통해 그는 첫번째 부인 거트루드를 만난다. 두 사람은 1942년에 결혼해 1남1녀를 낳으며 28년 간 부부생활을 함께하지만, 1970년대 초에 이혼하고 만다. 이혼 사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시모프 쪽에서 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서전에서 그즈음의 생활을 묘사한 부분은 '감각적이고 호색적인 중년 남자'라는, 역시 아시모프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작은 제목이 달려있다.
아시모프는 1973년 자넷과 결혼한다. 신랑의 나이 53세, 그리고 신부 나이 47세였다. 두 사람은 17년전 어느 SF회합에서 잠깐, 그리고 미국탐정작가클럽에서 정식으로 만난 뒤 14년 만에 결혼한 것이었다. 그 뒤 자넷은 인생의 반려자로서 뿐만 아니라 작품을 집필하는 동료로서도 같이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에 발표한 SF 로봇 '노비 '(Norby) 시리즈는 두 사람이 같이 쓴 것이다.
SF 최고상 휴고와 네뷸러 석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시모프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처럼 교양과학 저술가이기보다는 본질적으로 SF작가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치는 SF의 황금시대에 성장해 과학소설을 일약 질적으로 승화시킨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업적은 세계과학소설사에 불멸의 이름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원작 발표 50여년만에 번역 소개된 '파운데이션'(Foundation) 시리즈는, 첫 3부작이 발표된 뒤 1966년에 휴고상 '최고의 SF대하소설'(Best All-Time series)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2년에 발표한 제 4부 '파운데이션의 변경'(Foundation's Edge)도 휴고상 장편부문을 차지했다. 이 대하소설은 머나먼 미래에 은하계 전체에 인류문명이 퍼진 시점을 가상하여 은하제국의 흥망을 다룬 장대한 대서사시로서, 과학적 사회통계학 기법을 도입하여 사회의 변화를 최소한의 오차로 예측하는 '심리역사학'(Psychohistory) 개념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모프가 이 작품을 처음 잡지에 연재한 것은 1942년, 그가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22세 때였다. 이 시리즈는 아시모프가 타계하는 순간까지도 계속됐던 것으로서, 글쓴이가 알기로는 제 7부 '파운데이션을 향하여'(Forward the Foundation)가 그의 사망 얼마전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파운데이션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아마도 그의 '로봇 공학의 3원칙'일 것이다. 오늘날 로봇공학자들의 논문에서까지도 다뤄지는 이 유명한 법칙은, 1940년 겨울에 당시 유명한 과학소설편집자인 존 캠벨과 토론을 벌이다가 탄생한 것이다(존 캠벨은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중 한명인 MIT의 위너 교수 제자였다). 아시모프가 로봇 소설을 발표한 것은 19세 때부터며, 그 뒤 그의 로봇소설은 일관된 배경을 두고 '강철도시'(The Caves of Steel, 1954) '벌거벗은 태양'(The Naked Sun, 1957) 등 수많은 걸작들이 쏟아져서 마침내 로봇의 눈으로 인간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친 휴고상 수상작 '2백살을 맞은 사나이'(The Bicentennial Man, 1976)와 같은 걸작을 낳는 밑거름이 됐다.
그의 과학소설 중 대표적인 위의 두 시리즈는, 최근작 '로봇과 제국'(Robot and Empire, 1985)에서 내용이 하나로 묶여진다. 그러나 내용을 꿰어맞춘 부자연스러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역시 아시모프답게 특유의 정연한 논리로 필연적인 귀결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의 SF는 이밖에도 수많은 걸작들을 포함하고 있다. 1972년에 발표한 '신들 자신'(The Gods Themselves)은, 플루토늄의 동위원소에서 착안해 우리와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별차원의 세계를 다루어 휴고상과 네블러상 장편부문을 휩쓸었다. 또 자신이 20대 초창기에 발표한 단편 '밤이 오다'(Nightfall)도 로버트 실버버그와 함께 장편으로 고쳐서 1990년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이미 1988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편 20여 년 전에 우리나라 안방극장에 선을 보였던 '마이크로 결사대'(Fantastic Voyage, 1966)라는 영화도 아시모프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인체 내부에 있는 악성 병균을 퇴치하기 위해 탐험대가 조그맣게 축소되어 인체 내부로 여행을 떠난다는 얘기는 당시 대단한 인기와 화제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시모프는 1987년에 이 작품의 2부격인 '두뇌로의 여행'(Fantastic Voyage Ⅱ, Destination Brain)도 발표했다.
쉽고 재치있는 과학저술의 모범
비교적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저작 중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Asimovon Astronomy : 1974)이란 책이 있다. 당시 그 책은 우리나라 천문학계의 원로인 현정준교수(서울대 천문학과)가 우리말로 옮겼는데, 옮긴이 자신도 수식을 쓰지 않고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천문학 이론을 설명한 것에 놀랐으며, 아시모프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후기에 토로한 바 있다. 뒤늦게나마 아시모프의 저작들이 활발하게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중에 갑작스런 그의 서거 소식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단편중에는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우주의 총 엔트로피가 대량으로 감소할 수 있겠는가? 즉 이 우주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어느 컴퓨터가 무한한 시간을 고민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우주가 생을 마칠 때 그 초월적인 컴퓨터는 스스로 답을 내린다.
'빛이 있으라!'(성경 창세기 1장)
아시모프가 가고 없는 지금, 과연 우리들은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를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남긴 그 방대하고 독보적인 업적들은 영원히 남아 인류문명의 원동력이었던 상상력과 영감의 세계를 살찌워갈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