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거웠던 2009년 8월, 필자가 속한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 연구팀은 몽골 부긴자프에서 충격적인 공룡 화석을 발견했다. 두개골과 앞발, 뒷발 골격은 도굴된 상태였으나 어깨와 앞다리 골격만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반세기 동안 공룡 학계의 숙제였던 ‘미스터리 공룡’ 데이노케이루스 Deinocheirus·‘무서운 손’이라는 뜻)였다. 새로운 화석의 발견으로 연구에는 속도가 붙었고, 논문은 2014년 ‘네이처’에 소개되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부터는 그 후의 이야기다.
논문을 발표한 뒤 우리는 연구자료를 토대로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복원모형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발견된 두 마리의 데이노케이루스를 조합하면 대부분의 중요한 골격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고, 도굴됐던 두개골과 발 골격까지 극적으로 몽골에 반환되면서 이 공룡의 전체를 복원할 수 있는 충분하고 완벽한 재료가 마련된 상태였다.
복제 제작 기회 놓쳐, 결국 일본 손에
하지만 후속 사업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몽골 정부의 반환 요청으로 2017년 국내에 있던 모든 원본 화석은 몽골로 돌아갔다. 반환된 화석으로 몽골은 일본과 데이노케이루스 전신 골격 복제품을 만들어 올해 7월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공룡엑스포에서 공개했다.
이때 필자가 안타까웠던 것은 데이노케이루스 골격 복제품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는 복원의 완성도였다. 화석은 보존 과정에서 짓눌려 변형되거나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것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복구하다 보니, 복제된 골격이 생존 당시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공룡의 연구 과정에는 반드시 각 골격에 대한 수많은 촬영과 복원 도면 작업이 이뤄진다. 수백 개에 이르는 데이노케이루스 골격 대부분도 전후, 좌우, 상하 여섯 방향에서 촬영하고 측정해 제작한 도면이 있었다. 이를 이용하면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골격의 3차원(3D)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진짜 데이노케이루스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2018년 말부터 복원을 준비하던 중, 고생물을 3D로 모델링하는 팔레오아티스트(Paleoartist·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고생물을 그리는 작가)인 김진겸 비타민상상력 대표와 손을 잡고 올해 6월 본격적으로 복원에 나섰다. 공룡 연구자와 공룡 마니아 그래픽디자이너의 콜라보(협업)였다.
골격 수백 개, 3D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
우리는 먼저 데이노케이루스 두 마리(성체와 어린 개체)의 모든 골격을 3D CG로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큰 성체에서 보존되지 않은 흉추(등 척추)와 선추(골반 척추)의 신경배돌기, 미추(꼬리 척추) 뒷부분 등은 어린 개체의 보존된 부분들로 보충하기로 했다.
디지털로 재현된 3D 데이노케이루스의 골격은 실물 화석들(화석 하나가 수 kg에서 최대 100kg에 육박하는 돌덩이나 다름없다)과는 달리 가상의 공간에서 확대와 축소, 복제, 회전과 이동 등이 자유로웠다. 덕분에 연구팀은 모델링한 어린 개체의 골격을 성장비율에 맞게 확대하고 변형해 모델링한 성체의 빈 부분에 이리저리 끼워 넣으며 채울 수 있었다. 좌우 한쪽만 보존된 화석은 CG 상태에서 좌우 반전시키는 것만으로 손쉽고 정확하게 복구할 수 있었다.
도굴됐다가 몽골로 반환된 두개골과 발 골격도 사진과 연구자료를 이용해 뼈 하나하나를 모델링했다. 다만 두개골은 짓눌려서 변형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연구를 통해 작성한 복원 도면을 기초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 유사한 공룡 두개골 구조를 참고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부구조까지 복원했다(뒤에 나오겠지만 이것은 데이노케이루스의 독특한 식사 방식을 설명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디지털 복원과정에서 초기 연구에서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특징들도 밝혀졌다. 갈비뼈와 등 척추의 결합 형태, 복늑골(배갈비뼈) 배열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면서 복부의 크기와 형태가 밝혀졌고, 등에 있는 혹은 다소 뾰족했던 초기 복원 모습보다 좀 더 완만하고 둥그스름한 형태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11m 거대한 몸집에 흠칫, 알고 보면 ‘순둥이’
이제 골격을 완성했으니 근육과 피부를 입혀야 했다. 데이노케이루스는 식물과 물고기를 먹는 잡식성 공룡임에도 이빨이 전혀 없다. 공룡 대부분은 먹이를 훑거나 자르고 갈아 씹을 수 있는 매우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이빨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된 걸까.
답은 데이노케이루스의 주걱처럼 넓적한 주둥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둥이 끝 표면에 혈관 구멍들이 많은데, 여기에 각질로 된 부리가 있어 위아래의 부리가 가윗날처럼 식물을 잘라 뜯어내는 역할을 했다. 길고 좁은 주둥이 안에 있는 기다란 혀는 쉴 새 없이 먹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복부에서 발견된 1400여 개의 둥글둥글한 돌멩이(위석)들은 이렇게 삼킨 식물을 갈아 소화를 도왔을 것이다.
데이노케이루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무시무시하게 크고 휘어진 앞발톱을 가졌다. 얼핏 보기엔 막강한 공격용 무기처럼 보이지만 나무늘보의 갈퀴 같은 앞발톱처럼, 실제로는 식물 줄기를 걸어 끌어당기는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반전 포인트다. 앞발톱엔 더 길고 구부러진 발톱 껍데기가 씌워져 그 역할에 충실했다.
앞발이 크고 등이 불룩 솟아 있으며 배불뚝이인 데이노케이루스는 한 눈에도 ‘상체 비만’이다. 그래서 평소에 걷거나 서 있을 때는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 때문에 상체를 들어 올려 기울어진 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때 뒷다리 두 개로 무거운 상체와 꼬리의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등 척추와 골반 척추에 높이 솟은 신경배돌기였다. 신경배돌기들은 튼튼한 인대와 두꺼운 근육으로 감싸져 있는데, 무거운 상체와 꼬리는 이 신경배돌기를 지지 기둥으로 삼아 현수교처럼 단단히 연결돼 있었다.
몸길이가 11m에 육박하는 거의 다 자란 성체는 비늘로 덮인 피부에 코끼리나 코뿔소처럼 잔털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때 수각류의 온몸을 깃털과 털로 뒤덮는 복원 방식이 ‘유행’이었지만, 성체 데이노케이루스 정도의 대형 공룡은 온몸이 털로 덮일 경우 체열 발산이 안 돼 체온이 과도하게 상승할 수 있다.
50년 만에 복원된 명품, 대중에 공개
우리 연구팀은 드디어 복원한 전신골격과 두개골 3D 모델을 3D프린터로 출력해 모형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습성에 맞게 물가의 부드러운 식물을 뜯어 먹기 위한 자세로 골격의 관절을 하나하나 조정해 자세를 취하자, 마침내 데이노케이루스의 자연스러운 자태가 드러났다.
데이노케이루스가 워낙 거대한 공룡이라(타르보사우루스와 비슷한 덩치다) 실제 크기의 4분의 1로 축소했는데도 3D프린터로 전신골격을 출력하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했다. 두개골과 경추, 몸통과 네 다리, 그리고 미추 이렇게 세 부분으로 분할해 조립되도록 출력한 뒤, 3D프린터의 특성상 나타나는 얇은 출력층 자국과 접합 부위의 경계선 같은 불필요한 흔적을 지웠다.
표면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사실감 있게 채색까지 마치자, 최초 발견 이후 50년 만에 마침내 데이노케이루스의 완벽한 골격이 복원됐다. 이는 가장 과학적인 고증을 거친 복원이기도 하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룡을 100% 정확하게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단지 화석이라는 ‘조그만 창’으로 그들의 모습을 엿볼 뿐이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변형됐으며 일부는 손실된 골격을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기술을 동원해 복원하는 과정은 필자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항재
충남대 지질학과에서 고생물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남 하동의 중생대 악어 두개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에서 근무하며 고생물 분야에서 전시 및 교육 콘텐츠 개발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의 지원으로 발족한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 참여(2008년 3차 탐사)를 계기로 매년 몽골 고비사막의 공룡 화석지를 탐사하며 새로운 발견을 꿈꾸고 있다. fossilis@kiga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