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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불꽃으로 지구를 구하라

미세플라스틱 대신 셀룰로오스 전기 대신 베르누이 정리

“동남아시아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미세먼지로 크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환경이 척박해 전력 소모가 큰 공조 장치를 가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기 없이도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112호’ 팀의 목소리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진지한 모습과 열정만큼은 영락없는 과학자였다. 이곳은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 2019’ 본선이 열린 경기 가평군 한화인재경영원. 8월 20~22일 3일간 치러진 본선에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예비 과학자 40명이 출전해 아이디어를 겨뤘다.

 

▲ 8월 22일 진행된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 2019 본선 시상식 현장. 이날 대상을 받은 ‘차박사 아들딸 팀이 수상 후 피날레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토론 발표와 쇼케이스는 조언의 시간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는 한화그룹이 주최하고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이 후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과학연구경진대회다. 올해로 9회를 맞는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Saving the Earth(지구를 살리자)’라는 주제로 에너지, 바이오, 기후변화, 물 등 4개 분야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올해는 전국에서 429개 팀이 참가해, 4월 온라인 1차 예선과 6월 2차 예선을 거쳐 최종 20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는 참가팀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겨루는 대회이지만, ‘토론 발표’와 ‘쇼케이스’를 통해 돕는 프로그램들이다. 질문과 토론의 기회도 제공한다. 그래서 치열하지만 공격적이거나 배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냄새 분자를 이용해 공업용 폐수의 무단 투기를 확인하는 검사법을 선보인 ‘후각지킴이’ 팀의 윤정준 군(민족사관고 3학년)은 “연구에서 아쉬운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심사위원과 친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토론 발표가 좋았다”며 “밀폐되지 않은 공간에서도 검사법이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다른 팀의 조언을 듣고 사람이 드나드는 방에서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시험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식물 속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 생산량 증진에 관한 연구를 선보인 ‘뭐라카로티노이드’ 팀의 원윤태 군(부산과학고 2학년)은 “쇼케이스에서 우리가 준비한 포스터와 실험 장치를 설명하자 심사위원으로부터 카로티노이드 생산을 늘리기 위해 식물에 스트레스를 줬을 때 다른 부작용이 있는지도 확인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며 “앞으로 이에 대한 정량적인 분석을 추가로 진행해 과학논문대회에 연구 논문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 토론 발표는 치열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서로의 의견을 공격하기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자리였다.
2 쇼케이스 심사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연구 결과물을 심사위원 앞에서 시연했다.
3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 2019 본선에 참가한 20개 팀이 대회가 끝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백강균으로 닭진드기 박멸, 빗물 이용한 환기시스템


올해 대상은 ‘차박사 아들딸’ 팀이 차지했다. 이 팀은 식물성 소재를 이용한 의류 코팅제로 합성 섬유를 코팅하면 미세플라스틱 발생량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세탁 과정에서 합성 섬유의 주성분인 플라스틱의 손상을 막아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차박사 아들딸 팀이 고안한 코팅제는 녹말풀, 셀룰로오스 등 식물성 원료를 주재료로 한다. 녹말풀은 조상의 지혜를 빌렸다. 과거 선조들이 녹말풀을 이용해 섬유의 오염을 방지하고 정전기를 막았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셀룰로오스가 세포 내 물질을 고정한다는 특징을 이용해 코팅제에 셀룰로오스를 첨가해 코팅제가 섬유에 잘 들러붙게 했다. 섬유유연제의 역할을 할 향기 캡슐도 코팅제에 포함 시켰다. 캡슐은 미역, 다시마 등의 세포벽을 이루는 식물성 원료인 알긴산을 이용해 자체 제작했다.


차박사 아들딸 팀의 이인우 양(충북과학고 3학년)은 “이미 발생한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플라스틱 발생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경제적이면서도 빠른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은 팀의 이지웅 군(충북과학고 3학년)은 “젤리형으로 제작한 시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추가 연구를 통해 상품에 가장 적합한 제형을 찾아 빨리 제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금상은 112호 팀과 ‘101 프로젝트’ 팀 등 두 팀에게 돌아갔다. 112호 팀은 중간이 잘록한 벤투리관을 활용해 전력 공급 없이 빗물만으로 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작했다. 빗물을 받아 벤투리관으로 흐르게 하면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라 얇은 관에서는 압력이 낮아져 공기가 유입되며 순환이 일어난다. 이를 활용하면 동남아시아와 남부아시아의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실내 환기에 쓸 수 있는 무전력 공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101 프로젝트 팀은 동충하초의 일종인 백강균이 닭진드기에 기생하면 닭진드기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다공성 물질인 화산송이에 백강균을 착생시켜 어두운 틈을 좋아하는 닭진드기가 화산송이의 구멍 속을 돌아다니다 백강균에 감염되도록 설계했다.


올해 시상식에서 대상에게는 4000만 원의 장학금이, 금상 두 팀에는 각각 2000만 원의 장학금이 수여됐다. 은상을 차지한 ‘씨알티(SeaRT)’ 팀과 ‘도나쓰’ 팀에는 각각 1000만 원의 장학금이, 동상을 차지한 나머지 15개 팀에는 각각 300만 원의 장학금이 수여됐다. 은상 이상 수상팀에게는 올해 해외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진다.


작년에 금상을 받아 해외 탐방에 참여했던 김혜린 씨(UNIST 기초과정부 1학년)는 “독일 뉘른베르크 에너지 연구소와 프라이부르크 친환경 마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대회 주제인 ‘지구를 살리자’가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임을 인식했고, 예비 과학자로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 2019 운영위원장으로 대회를 총괄한 김은기 인하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참가팀들의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점에 놀랐다”며 “내년에도 많은 학생들이 가공되지 않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대회의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용어정리

베르누이의 정리
유체가 흐르고 있을 때 압력 , 속도, 높이의 관계에 관한 정리.
이 정리에 따르면 유속이 빨라지면 압력이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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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가평=신용수 기자 기자
  • 사진

    화학 사이언스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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