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경기의약연구센터


연구센터 이름을 지을 때 ‘한국’이나 ‘국제’와 같은 말을 붙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관습이다. 이왕이면 다소 거창한 이름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인식 탓이다. 하지만 경기의약연구센터는 다르다. 연구원들은 ‘경기도’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이 붙은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역의 여건에 맞는 연구 과제를 채택하고 결과물을 도출함으로써 의약분야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지역 개발에 적극 이바지하는 일석이조의 ‘알짜’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제약회사의 요충지’다. 국내 3백여개의 제약업체 가운데 2백여개가 이곳에 몰려 있다. 매출액 수준으로 보면 전체의 80%가 여기서 산출된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탓에 자체적인 연구 역량이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제품을 개발하기 보다는 대기업의 제품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외국 제약업체로부터 비싼 기술료를 지불하고 수입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먹는 감기약을 주사약으로 바꾸는 비교적 간단한 일도 외부의 힘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늘 기술적인 ‘지원 사격’을 원했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하려고 나선 곳이 바로 경기도 지방자치단체였다. 1996년 12월 경기도의회는 중소 제약업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업안을 통과시켰다. 경기도 내 대학 연구소 가운데 우수한 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고, 그 연구 성과를 제약업체에게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성균관대 의약연구소가 1997년 ‘경기의약연구센터’로 개칭하고 2005년까지 9년간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지원액은 매년 5-10억원 정도다. 경기도가 이천 도자기를 개발하는데 투자한 비용(1백억원)의 불과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최초로 제약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 때문에 연구원들은 든든한 버팀목을 얻은 느낌이다.

“물론 제약업체 지원뿐 아니라 본연의 업무인 신약 개발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10여년 후에 항암제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향우 소장의 말이다.

그런데 연구소의 중진 교수들을 만나보면 이소장의 말이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경기의약연구센터에서는 기존에 개별적인 연구를 수행하던 약학대학 교수들이 공동의 목표 아래 모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개인의 노하우가 뭉쳐 서로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시너지 효과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말이다.

시너지 효과 발휘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자연에서 항암 성분이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하고, 이를 분리해 불순물을 없앤 후 대량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밟아야 한다. 정제된 약물의 효력이 얼마인지, 또 독성은 없는지 엄밀하게 파악하는 실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 전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연구자들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다. 하지만 ‘옆 방의 교수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서로 잘 모르는’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 이런 공동연구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경기의약연구센터가 설립되면서 그 일이 실현된 것이다. 단계별로 4개팀을 짜고 각 팀에 2-3명의 교수가 소속돼 자신들의 전문 지식을 최대한 공유하는 시스템이 약학대학 내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외국의 약품을 모방하는데 그쳐온 관습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항암 메커니즘을 발견하려는 ‘과감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런 탄탄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현재 경기의약연구센터는 암을 정복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암세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를 아예 정상세포로 바꾼다는 기발한 발상이다. 암세포의 유전자 복제를 억제해 무한 분열을 차단시키는게 핵심이다.

기존 항암제의 목표는 암세포 자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영향을 미쳐 골치였다. 만일 경기의약센터의 연구가 성공을 거둔다면 이와 같음 부작용이 없는 항암제가 세계 최초로 개발될 것이다. 10년후 획기적인 약제 개발로 '경기'라는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해윤 기자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약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