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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자문 놓고 첫 대결 AI 변호사 vs. 인간 변호사 진검승부

 

“이번에 우승한 팀은 코드 번호 108번, 2등은 109번, 3등은 106번입니다. 어느 팀이시죠?”
호명된 팀이 차례로 손을 들었다.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AI)과 팀을 이룬 참가자들이었다.
“3등을 차지한 코드 번호 106번은 사실 변호사가 아니라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인입니다.”
이어진 사회자의 말에 장내는 더 크게 술렁였다.
8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제1회 알파로(Alpha Law) 경진대회’ 현장. 2016년 이세돌 9단을 이기며 ‘알파고 쇼크’를 불러온 인공지능이 또 한 번 인간을 꺾었다. 이번엔 법이었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과 한국인공지능법학회 주최로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에서는 AI 변호사와 인간 변호사의 법률 자문 대결이 펼쳐졌다. 아시아에서 법률 AI 대회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대회에는 AI 변호사와 인간 변호사가 짝을 이룬 2개 팀과 AI 변호사와 일반인으로 이뤄진 1개 팀, 인간 변호사 2명으로 구성된 9개 팀 등 총 12개 팀이 참가했다.


AI 변호사 1등은 120점, 인간 변호사 1등은 61점


대회의 주제는 근로계약서에 관한 법률 자문이었다. 각 팀은 주어진 근로계약서 3종에서 오류와 누락, 위법요소 등을 분석해 위법 여부를 판정하거나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AI 변호사로는 국내 리걸(legal) 테크 기업인 인텔리콘연구소가 개발한 ‘CIA(Contract Intelligent Analyzer)’가 등판했다. CIA는 노동법 전문 AI로 근로계약서 분석에 특화돼있다. 근로계약서나 판결문 등 외부 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학습하며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는 딥러닝 기술이 적용됐다.


대회 공정성을 위해 각 팀은 추첨을 통해 코드 번호를 부여받았고, 추첨한 본인 외에는 어떤 코드 번호가 AI 팀인지 또는 변호사 팀인지 알 수 없도록 했다.


대회는 총 2라운드에 걸쳐 진행됐다. 1라운드에서는 각각 7개 조항과 10개 조항을 갖춘 짧은 계약서 2종을, 2라운드에서는 14개 조항에 걸친 긴 계약서 1종을 분석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문제지는 계약서마다 1장씩 주어졌으며, 문제지별로 객관식 1문제와 주관식 2문제가 출제됐다. 라운드별로 문제 검토에는 10분, 답안 작성에는 20분이 주어졌다(1라운드는 진행상의 이유로 10분이 추가됐다).


대회는 AI와 짝을 이룬 3개 팀이 1~3위를 휩쓸며 압승으로 끝났다. 점수 차는 더욱 놀라웠다. 1위는 150점 만점에 120점으로, 인간 변호사 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 4위 팀(61점)의 두 배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했다. 일반인이 참가한 AI 팀도 107점을 기록해 4위와 큰 격차를 보였다.

 



사람이 1시간 걸릴 분석, 7초면 끝


AI 변호사에 대한 인간 변호사의 만족도는 높았다. 1위를 차지한 알파로 1팀의 김형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계약서를 검토할 때 법률 조항을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나, 검토에 필요해 확인하고 싶은 판례들을 AI가 잘 짚어줬다”며 “중요도에 따라 색깔로 구분해준 사용자 환경(UI) 또한 편리했다”고 말했다.
2위를 차지한 김한규 변호사는 “현행법을 미묘하게 위반한 조항까지 모두 잡아내 놀랐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2라운드에서 제시된 계약서에는 상여금과 숙박비, 연봉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초과분을, 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는 7%를 초과하는 초과분만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대개 변호사가 최저임금법 위반 여부를 확인할 때는 이런 항목들을 일일이 계산해 시급을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AI는 이를 자동으로 계산해 위반 여부를 바로 판정했다. 대회가 끝난 뒤 현장 시연에서 측정한 결과, AI가 계약서 분석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7초였다. 김한규 변호사는 “이 정도 내용의 계약서의 경우 보통 최저임금법을 확인하는 데만 1시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김정우 변호사도 “원래 변호사의 업무는 시간보다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다”며 “임금을 정확히 계산하는 데 20분은 너무 부족했다”고 밝혔다.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은 AI를 어떻게 느꼈을까. 일반인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해 AI와 팀을 이뤄 3위에 오른 신아형 씨(동아일보 기자)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며 “객관식의 경우 CIA의 분석 결과대로, 주관식의 경우 분석 결과에 나온 설명을 짜깁기해서 답을 작성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명숙 변호사(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는 “앞으로 법률 AI가 변호사를 도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법률 업무를 처리하는 긍정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향후 AI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INTERVIEW_

뇌과학 공부하다 법률 AI 개발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

“한국 법은 AI 학습 용이”

 

“원래는 규칙에 기반을 둔 AI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딥러닝을 무기로 미국에서 기계학습이 빠르게 자리 잡는 것을 본 뒤, 기계학습을 버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1회 알파로 경진대회’에 사용된 CIA 개발을 총괄한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현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다 AI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AI 중에서도 임 대표의 선택은 법률 AI였다. 임 대표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대법원 법률자료 디지털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며 “당시 경험으로 법률이나 판결문 등 AI가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가 풍부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임 대표는 “우리나라 법은 판례 중심의 영미법과 달리 독일 같은 대륙법계”라며 “법조문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체계로 구성돼 있어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키기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법률 AI를 개발하기 위해 직접 법을 공부한 임 대표는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AI 개발에 필요한 이론연구를 거쳐 2013년 본격적으로 법률 AI 개발에 착수했다. 그가 구상한 AI는 기계학습에 규칙기반 요소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AI였다. 임 대표는 “법률은 법이라는 규칙과 판례라는 데이터가 모두 체계적으로 완비돼있어 두 방식 모두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법률 AI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자연어 처리 기술이다. 자연어 처리 기술은 사람의 일상적인 말과 글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자연어 처리는 다시 두 과정으로 나뉜다. 입력된 단어나 문장을 최소 의미 단위인 형태소별로 분석하는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대포통장’이라는 말을 입력했다고 하자. AI는 이 말을 ‘대포’ ‘통장’ 등 형태소별로 인식한다.


이후 복합명사 처리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전의 의미와 다르게 쓰이는 용어를 재분석한다. 임 대표는 “대포통장은 통장에 대포를 더한 단어이지만, 실제로는 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비정상적인 통장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전혀 다르다”며 “이런 단어들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연어 처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법률 추론 기술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쓰지 않고도 원하는 법 조항이나 판례를 찾을 수 있도록 입력한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추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행’이라는 단어는 법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주먹’ ‘컵’ 등의 단어는 법전에 없다.


임 대표는 “같은 폭행이라도 주먹을 사용한 경우에는 형법에 의해 단순 폭행으로 처벌되지만, 컵을 던진 경우에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라는 특수법이 적용된다”며 “상황에 맞는 법이나 판례를 추론하도록 학습시키는 것이 법률 추론 기술”이라고 말했다.


인텔리콘연구소는 이 두 가지를 토대로 법률 AI 엔진인 ‘아이리스(i-Lis)’를 2015년 개발했다. 그중 7번째 버전인 ‘아이리스-7’은 2016년 일본, 2017년 영국에서 개최된 ‘국제 인공지능 및 법률 콘퍼런스(ICAIL)’ 프로그램의 일환인 세계 법률 AI 경진대회에서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아이리스-7은 이번 대회에 사용된 CIA를 포함해 2017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에 특화된 Q&A형 AI인 ‘로보(Law-Bo)’와 단어나 문장으로 관련 법령과 판례를 찾을 수 있는 검색 AI인 ‘유렉스(U-LEX)’ 등 다양한 법률 AI 서비스에 탑재됐다.


임 대표는 “AI 서비스 고도화 작업을 거쳐 올해 연말 종합 법률 자문 플랫폼을 공개할 계획”이라며 “일반인도 간단한 계약서 분석이나 법률 검색 등 AI 법률 자문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AI가 인간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임 대표는 “현재 개발된 AI는 스스로 생각하는 강한 인공지능이 아니고 입력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약한 인공지능인 만큼 인간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특히 법률의 경우 종합추론이 필요한 만큼 인간을 대체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법률 AI는 법률가의 업무를 돕거나 일반인이 간단한 법률을 검토할 때 사용되는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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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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