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 에 전시된 ‘수(Sue)’라는 애칭의 티라노사우루스는 1997년 경매에서 약 80억 원에 낙찰됐다.
“공룡 화석은 얼마나 비싸요?”
공룡을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난감한 질문이다.
“글쎄요, 집보다는 비싸지 않을까요? 하하.”
대개 이렇게 대답은 하지만, 공룡을 연구하는 필자도 사실 공룡 화석 가격은 잘 모른다. 필자에게 공룡 화석은 연구 대상일 뿐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어서다.
공룡 화석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대표적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 접속했다. 머리에 뿔이 세 개 솟아있는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의 머리뼈 화석이 올라와 있다. 가격은 9월 20일 기준 7억700만 원 정도(59만5000달러). 엄청난 고가다. 게다가 중고란다. 도대체 누가 이런 화석을 사고파는 걸까?
80억 원? 역사상 가장 비싼 공룡 화석
해외에서는 공룡 화석을 사는 게 요즘 부자들의 최신 트렌드로 꼽힌다. 6600만 년 된 공룡 뼈는 앤티크 중 최고의 앤티크다. 가격은 피카소 작품보다 저렴하지만 희귀하다. 경매장에 등장하는 공룡 화석은 1년에 5마리 정도로 극소수다. 게다가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한정판’인 셈이다.
2007년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한 육식공룡의 머리뼈를 사기 위해 경매장에서 맞붙었다. 승자는 니콜라스 케이지였는데, 그는 27만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약 2억6000만 원을 주고 공룡 머리를 챙겼다.
어떤 공룡 화석은 너무 비싸서 여러 기업이 나서기도 한다. 1997년에 경매된 ‘수(Sue)’라는 애칭의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골격은 836만 달러(당시 원화로 약 80억 원)에 낙찰됐다. 이때 월트디즈니와 맥도날드 등 굴지의 기업들이 돈을 모아서 샀다. 현재 수는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공룡 화석이다.
꼭 돈이 많아야 공룡 화석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돈이 모자라면 공룡 화석의 일부만 구매할 수 있다. 바로 공룡의 이빨이다. 미국의 화석 상점에서 초식공룡 이빨 10개로 된 한 세트가 25달러(약 3만 원) 정도한다. 손가락 한 마디 만 한 작은 크기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조건이다. 대신 멋진 육식공룡의 이빨은 값이 좀 나간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온전한 이빨 하나는 5000달러(약 60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최근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공룡 화석을 구매하는 방법은 더욱 다양해졌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화석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경로는 바로 인터넷 경매다. 이베이에서 판매되는 화석 수는 2017년 이후 22%나 늘었다고 한다.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누구나 쉽게 지구 역사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 웹사이트를 통해 멜론만 한 공룡알 화석을 사거나, 인터넷 카페, 블로그에서도 거래가 이뤄진다.
▲ 미국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는 고가에 판매되는 화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화석 보관 박물관 기록, 표본번호 필수
고생물학자는 화석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사람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와는 엄연히 다르다. 고생물학자는 화석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논문이 최종적으로 학술지에 실리면 과거에 살았던 이 멋진 생물에 대한 정보가 대중에게 공유된다.
그렇지만 연구가 끝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연구한 화석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일이다. 그래야 다른 과학자가 또 다른 연구를 위해 그 화석을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논문에는 연구된 화석이 어느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지 필수로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화석에는 고유 식별번호인 ‘표본번호’가 주어진다. 고생물학자에게 화석은 멋진 장식품이나 보물이 아니다. 도서관의 책과 같은 사료인 셈이다.
하지만 화석이 누군가의 안방이나 거실에 있으면 연구할 수 없다. 화석을 관찰하기 위해 매번 그 사람 집을 들락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석 주인이 제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휴가를 떠나면 화석은 구경도 못한다. 게다가 개인 사정으로 화석을 팔아버리기라도 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새로운 주인과 연락이 닿으면 상관없지만, 연락이 끊겨버리면 화석은 사라지고 만다.
요즘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의 사망 당시 나이를 알아내는 연구를 많이 한다. 공룡의 수명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 톱날로 뼈 화석을 썰어야 한다. 뼈 단면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성장선들이 남아있다. 성장선을 세면 사망 당시 공룡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박물관은 이런 연구를 대부분 흔쾌히 허락한다. 하지만 비싼 돈을 주고 산 공룡 뼈 일부를 썰어 봐도 될지 개인 수집가에게 물어본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은 덤이다. 이렇다 보니 고생물학자들은 개인 소유 화석은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공룡 화석 경매가 인기를 끌수록, 그래서 연구할 수 없는 화석이 많아질수록 고생물학자 입장에서는 잃어버리는 자료가 많아지는 셈이다.
머리뼈가 가장 많이 도굴돼
고생물학자는 과거의 생물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살았는지 연구한다. 하지만 여기서 연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고생물이 살던 당시 환경이 어땠는지도 추적한다.
이는 고생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했고 과거 생물들이 그 변화에 따라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면, 앞으로의 환경 변화도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공룡 연구는 현재의 지구를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하다.
이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화석이 어디서 발견됐는지 알아야 한다. 발견된 지역과 지층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이 발견된 장소를 지도에 꼭 표시한다. 요즘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화석 중에는 이런 정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발견 장소가 기록된 종이가 붙어있어도 그 정보를 믿기 어렵다. 화석을 파는 사람들이 산출지를 거짓으로 표기하거나 모호하게 쓰는 경우가 잦아서다. 그 이유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온 화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몽골,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발굴된 화석은 해외 반출이 금지돼 있다. 화석도 그 나라 역사의 일부이자 보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 도굴된 화석들이 버젓이 인터넷에서 팔리고 있다. 중국과 몽골 화석은 단속을 피해 ‘중앙아시아’라고만 표기된 채 판매된다.
도굴되는 공룡 화석은 주로 머리다. 공룡의 몸 전체를 발굴해 운반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몸집이 클수록 단속에 걸리기도 쉽다. 그래서 도굴꾼들은 공룡의 머리만 발굴해 팔아버린다. 도굴꾼들이 지나간 곳에는 머리 없는 공룡 화석들만 누워있다.
머리뼈를 부수고 이빨만 뽑는 경우도 있다. 공룡의 머리가 너무 크거나, 혹은 뼈가 많이 풍화돼 발굴이 어려운 경우다. 이렇게 머리뼈에서 떼어낸 이빨에는 이빨 뿌리가 달려있다. 이갈이 때 교체된 공룡 이빨은 뿌리가 없다. 팔고 있는 공룡 이빨에 기다란 뿌리가 있다면 그건 도굴됐을 가능성이 크다.
고향으로 돌아간 공룡 화석
2012년 화석 도굴꾼 에릭 프로코피가 미국에서 구속됐다. 그가 불법으로 가져온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의 골격 화석이 경매에 나왔다가 걸린 것이다. 타르보사우루스는 몽골의 육식공룡으로 티라노사우루스의 가까운 친척이다. 프로코피는 이 공룡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 영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세관에 거짓으로 신고했다.
프로코피의 자백으로 도굴됐던 몽골 공룡 17마리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거대한 오리주둥이공룡과 갑옷공룡도 있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샀던 바로 그 공룡 머리뼈도 있었다. 압수된 공룡들은 전부 몽골로 돌아갔다.
경매에 나왔던 타르보사우루스는 특별히 대한항공 일등석에 탔다고 한다. 몽골을 대표하는 공룡이기 때문이다. 몽골 사람들은 이 공룡에게 ‘몽골 바타르’, 몽골어로 ‘몽골의 영웅’이라는 뜻의 별명을 붙여줬다.
몽골 정부는 돌아온 공룡들을 보관하기 위해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새로운 공룡박물관도 만들었다. 이 박물관은 2013년 개관했다.
필자는 2014년에 처음으로 이 박물관을 방문했다. 지금은 뉴스에 나온 17마리보다 훨씬 많은 공룡 화석들이 전시돼 있다. 모두 불법으로 해외에 반출됐다가 돌아온 것들이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이렇게 많은 공룡 화석들이 도굴됐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동시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박물관에 놓인 공룡 화석과 나만의 한정판 소장품 공룡 화석. 독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 프랑스 파리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 공룡 화석은 거실이 아닌 박물관에 있을 때 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박진영
고생물학자이자 과학책을 쓰는 작가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방문연구원이다. 중생대 도마뱀, 목긴공룡, 새의 화석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고, 지금은 아시아의 거북과 갑옷공룡 화석을 연구하고 있다.
stegosau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