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이름부터 낯선 인도네시아 부톤섬 바우바우시에 도착하면 의외로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분명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마을인데, 곳곳에서 한글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찌아찌아족은 2009년 훈민정음학회와 한글사용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10년째 한글을 민족의 문자로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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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찌아찌아족에게 한글 가르치는
정덕영 교사
한글이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정착하는 데는 10년째 부톤섬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정덕영 교사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정 교사는 2009년부터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430여 명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8월 30일 휴가 차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초등학교 두 곳과 고아원, 고등학교 두 곳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찌아찌아족 학생들이 그들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 선생님도 겸하고 있다.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며 덩달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한글이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자리 잡은 비결은?
한 민족이 다른 언어(문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 받아들이는 쪽의 능동적인 태도와 문자 자체의 위력, 전파하는 쪽의 지속성이다. 한글 자체가 매력적인 문자이기도 하지만,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가 교과서나 학용품을 보급하는 등 꾸준히 후원한 것도 비결 중 하나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은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 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한국은?
처음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드라마 ‘대장금’이나 K팝이 유명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부톤섬 방탄소년단 팬클럽 회장도 있다. 1년에 2번 한국에 올 때마다 학생들을 위한 방탄소년단 굿즈(Goods·상품)를 한가득 사가는 게 일상이 됐다.
앞으로의 목표는?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목표가 분명했음에도 한글이 문자로 정착하는 데에는 5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나의 제자였던 찌아찌아족 학생 2명이 한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등 10년 동안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생겼지만, 한글이라는 문자가 찌아찌아족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최근 찌아찌아족 외에 다른 민족들로부터 한글 강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차근차근 한글을 전파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