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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나노분자 바구니에 담아 무게를 측정하다

바이오의약품은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에서 유래된 원료 또는 재료로 제조한 의약품입니다.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 등을 인위적으로 합성한 재조합단백질과 항체치료제 등 다양한 형태로 의료계에서 사용되고 있죠. 2012년부터 꾸준히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전체 의약품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제약시장 분석 기업 ‘이밸류에이트 파마’에서 발표한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0대 약품’ 중 절반 이상이 바이오의약품입니다. 

 

바이오의약품 품질 결정짓는 시알산


바이오의약품은 유전자 재조합과 세포 배양을 통해 합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전자 재조합은 원하는 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사람이 아닌 미생물이나 식물, 동물 세포에 삽입하는 방법입니다. 이 유전자가 목표로 한 단백질을 생산하고, 생산된 단백질은 곧 화학 변형의 일종인 ‘번역 후 변형(PTM·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 과정을 거칩니다. 비유하자면 단백질에 팔다리를 붙이는 과정으로, 단백질이 활성을 가지고 안정화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이오의약품을 제조할 때는 PTM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돼지에서 얻은 인슐린을 사람에게 투여할 경우, 인체는 PTM의 결과로 붙은 ‘팔다리’를 보고 이를 외부물질로 인식해 면역반응을 일으킵니다. 

 


인슐린에서는 PTM 중 당질화(glycosylation)가 관여합니다. 당질화는 단백질에 시알산 등 당 성분을 붙이는 과정입니다. 시알산은 Neu5Ac와 Neu5Gc 등 두 종류로 나뉩니다. 둘은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Neu5Gc에는 수산화기(-OH)가 하나 더 달려있습니다. 인간은 Neu5Ac만을 이용하는 반면 소, 돼지 등 다른 동물들은 Neu5Gc도 이용합니다. 동물에서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만들어져 Neu5Gc로 당질화된 바이오의약품은 인체가 외부물질로 인식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약 평소 고기를 자주 섭취해 이미 체내에 Neu5Gc 물질에 대항하는 항체를 가지고 있다면, 바이오의약품을 투약했을 때 강한 면역반응이나 자가면역, 염증성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물을 이용해 만든 바이오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회사에서는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단백질 내 Neu5Gc의 함량을 측정해 정확히 표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바구니에 담아 무게를 측정하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주인-손님 화학(Host-Guest Chemistry)이라는 기법을 도입해 기체 상태의 시알산을 정확히 정량했습니다. 이 방법은 두 개 이상의 분자를 서로 약한 힘(반데르 발스 결합, 수소 결합, 소수성 결합 등)으로 결합시켜 결합체를 만든뒤, 이를 이용해 각 분자의 특성을 평가하는 기술입니다.


연구팀은 먼저 두 시알산과 결합하는 분자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구니 모양의 나노분자인 쿠커비투릴(CB[7])이 기체 상태에서 두 시알산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액체 상태에서는 서로 결합하지 않았는데, 연구팀은 액체 상태에서는 수소결합의 방해를 받아 결합하지 못하다가 기체가 되면 물 분자가 사라지면서 상호작용하며 결합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경우 주인-손님 화학 기법에서 ‘주인(host)’은 쿠커비투릴, ‘손님(guest)’은 두 시알산이 됩니다.


분석법에 따라 분석할 수 있는 최저 농도의 한계가 달라집니다. 좋은 분석법으로는 pmol(피코몰·1pmol은 1조 분의 1mol) 수준으로 극미량의 시알산도 정량화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쿠커비투릴과 시알산 결합체를 이용한 분석법으로 Neu5Gc는 1.6pmol, Neu5Ac는 0.65pmol까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연구팀은 ‘이온 이동도 질량분석법’과 계산 화학을 이용해 두 시알산이 쿠커비투릴과 기체 상태에서 어떻게 결합하는지 확인했습니다. 이온은 주변 기체와 충돌하면서 충돌 단면적, 전하, 형태, 질량 등에 따라 이동속도가 변합니다. 이 속도 변화를 측정해 물질의 특성을 분석하는 방법이 이온 이동도 질량분석법 입니다. 비슷한 질량을 가진 이온이라도 구조에 따라 이온 이동도가 달라지고, 이를 비교하면 두 물질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기체 상태에서 두 시알산은 모두 바구니 모양의 쿠커비투릴 안쪽에 들어가 안정된 복합체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서로 결합하는 부위는 달랐습니다. 두 시알산은 양성자가 첨가되며 쿠커비투릴과 복합체를 이루는데, Neu5Gc의 경우 아세트아마이드 작용기의 질소 원자에 양성자가 첨가됐을 때 안정된 복합체를 이루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Neu5Ac는 산소에 양성자가 첨가됐을 때 안정됐습니다.


이번 연구로 실제 치료용 당 단백질 속 매우 유사한 구조의 두 시알산을 극미량까지 분리해 정량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시알산이 서로 다른 상호작용과 작용기에 의해 복합체 구조를 이룬다는 특성을 밝힌 덕분입니다.

 

빠르고 정확한 질량분석 가능해져


주인-손님 화학 기법은 유기합성에서 많이 활용되는 기법입니다. 대부분의 유기·무기화학 실험은 액체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주인-손님 화학 기법도 액체나 고체 상태의 물질을 평가하는 데 활용됐습니다. 이번 논문은 이 기법을 기체 상태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또 기존의 질량분석법에 비해 정확도도 향상됐습니다. Neu5Gc와 Neu5Ac처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물질을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려면 유도체화 등 전처리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단계가 늘어나면 오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주인-손님 화학 기법은 유도체화 과정 없이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대장암 항체치료제로 알려진 세툭시맙(Cetuximab)은 Neu5Gc와 Neu5Ac가 함유돼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논문을 통해 각각 1.7pmol, 0.08pmol로 미량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가 제조업체의 분석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필자소개.

채수연. 고려대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환자의 맞춤형 치료 발전을 위해 항암치료에서 저항성에 대한 발색기작, 치료, 예후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dkfvk35@naver.com

202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채수연 고려대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 에디터

    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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