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바꿔 놨지만 음주나 졸음, 운전 부주의 등으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 국내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는 2350만774대로 집계됐다. 인구 약 2.2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4년 4762명에서 2018년 3781명으로 줄었지만,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매년 약 20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자동차로 인한 사고는 일반적으로 손상 부위에 자동차가 가한 힘의 방향성이 나타난다. 사람에게 충격을 가할 때 차량의 속도에 따라 손상 양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때로는 피부가 까지면서 발생한 표피 박탈 같은 작은 손상이 사건을 해결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2016년 10월 7일 저녁에 발생한 사건을 살펴보자.
사건 발생 치골 부위에서 표피 박탈 확인
무더위가 가시고 들판이 점점 황금색으로 변해가던 가을 저녁, 식사 후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경북 청도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변사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 보통 사건 신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검시팀에 연락이 오는 경우는 의사가 사인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거나, 외력에 의해 사망한 경우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형사를 만나 사건 개요에 대해 들었다. 변사자 A 씨는 평소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었으며, 매일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사망 전 변사자는 집에서 복통을 호소해 어머니와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고, 이후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형사가 말한 사건 내용으로만 보면 내인사(內因死)에 가까워보였다.
마스크와 위생 장갑을 착용한 뒤 검시를 시작했다. 변사자는 바로 누운 자세에서 흰색 반팔 티셔츠와 트렁크 팬티만 입고 배꼽 부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린 자세였다. 우선 외견상으로는 사망에 이를 만한 큰 외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옷을 벗기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치골(골반 앞면을 구성하는 골조직) 부위에 넓고 뚜렷하게 발생한 *표피 박탈이었다. 보통의 표피 박탈은 물체가 작용한 면의 형상, 작용 방향에 일치해서 생긴다. 또한 대부분 팔이나 몸통, 다리, 무릎, 코 등 넘어지거나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닿을 만한 부위나 신체 바깥 부위에 주로 형성된다. 신체 중앙에 이렇게 넓고 뚜렷한 표피 박탈이 생기기는 쉽지 않다.
시체에서 세 발자국 정도 떨어져 다시 전체적으로 찬찬히 살펴봤다. 치골 부위뿐만 아니라 머리, 어깨, 배, 엉덩이와 팔 바깥 부위에서도 표피 박탈이 확인됐다. 게다가 모든 표피 박탈이 하나의 방향으로 생성돼 있었다. 사고사일까.
변사자에게서 벗겨냈던 티셔츠를 다시 확인했다. 변사자의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먼지 자국은 일정하고 선명한 무늬를 나타냈다. 분명 타이어 자국이었다. 교통사고가 의심됐다. 교통사고를 의심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도 있었다. 시체의 복부를 만졌더니 일반적인 복부 상태와 달리 돌같이 단단했다. 복강 내 출혈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었다. 전신에서 개방성 손상이나 골절이 관찰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저속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형사에게 변사자의 행적을 물었다. 사망하기 사흘 전, 술에 취해 동네 주차장에 누워있던 것을 지구대 경찰관이 집으로 데려다줬다고 한다. 순간 속으로 ‘찾았다’를 외쳤다. 이제 이 사건은 단순한 내인사가 아니라 분명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이었다.
“형사님, 지금 바로 현장으로 가시죠.”
현장 조사 옷과 CCTV로 교통사고 확인
사건 현장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변은 모두 단층 건물로 추락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교통사고에 의한 손상과 추락에 의한 손상은 유사한 점이 많아 현장을 확인할 때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주차장 옆에는 식당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 확인을 위해 3일 전 변사자를 데려다 준 경찰관을 불러 당시 A 씨의 위치를 확인했다. 개방성 손상이 없었던 터라 바닥에 혈흔이나 다른 흔적은 관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당시 경찰관이 만취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변사자를 일으켜 앉혔을 때, 얼굴에 상처를 발견해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해뒀던 것이다. 사진 속 A 씨는 사망 당시 입고 있던 티셔츠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로써 한층 더 교통사고에 의한 사고사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현장에 소집된 형사들에게 주변 폐쇄회로(CC)TV의 존재 여부와 목격자가 있는지 탐문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날 입었던 옷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팀은 변사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서 변사자의 노모를 만나 그날 아들이 입었던 옷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노모는 “아들이 어디 걸려 넘어졌는지 바지가 찢어졌기에 골목길에 버렸다”고 말했다. 옷을 버렸다는 골목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다행히 찢어진 등산복 바지는 그대로 있었다.
검시관에게 의복 조사는 시체 검시보다 우선이다. 시체의 외부를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복에 남아있는 여러 미세증거와 흔적이 중요한 증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의복에서 증거물의 존재 여부와 특징을 확인하고 증거물을 수집한 뒤 본격적인 시체 검시에 들어간다.
바지에는 충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찢어진 부위가 관찰됐다. 증거물이 있었던 위치와 손상 부위를 촬영한 뒤 수거했다. 현장 수사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검시관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교통사고입니다. CCTV 영상 확보했어요.”
이렇게 극적인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주변 건물에 설치된 CCTV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을 비추고 있었고 변사자로 추정되는 검은 그림자가 마침 그 틈 사이에 쓰러졌다. 이후 시간이 흐른 뒤 자동차 불빛이 켜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건의 처음과 끝이 모두 촬영돼 있었던 것이다.
범인 검거 음주운전 차량이 피해자 밟고 지나가
당시 상황을 A 씨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봤다. 평소 술을 많이 마신 A 씨는 그날도 많이 취해 있었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몸이 점점 둔해지고 말을 듣지 않는다.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진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난데없이 경찰관이 자신을 흔들고 괜찮은지 묻는다. 필름이 끊긴 것인지 기억이 없다. 몸이 쑤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해서 넘어졌나. 머리와 팔에도 긁힌 상처가 생겼다. 모르겠다. 몸도 무겁고 그저 집에 가서 자고 싶다.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다. 배는 점점 더 아픈 것 같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기억 일부가 *블랙아웃으로 사라진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CCTV를 통해 그 사이에 있던 일을 확인했다. 그는 분명히 차에 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차에 깔렸다. 수사팀은 차량의 그림자와 윤곽으로 범행 차량이 국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주차장 옆의 식당을 탐문 수사했다. 그리고 그 시각 차량을 몰았던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후 피의자의 진술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피의자는 친구와 오랜만에 동네 술집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밤 10시경 피의자는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술을 마셨지만 많이 마시지 않았고 집이 가까우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차를 몰다가 무언가에 걸린 느낌을 받았지만, 바닥에 큰 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귀가했다. 이때 피의자의 차량이 A 씨의 복부를 밟고 지나간 것이다. 바퀴에 깔리면서 복부에는 압박성 표피 박탈이, 다른 부분은 차에 걸리면서 마찰성 표피 박탈이 발생했다.
그의 몸과 옷에 남아있던 경미한 흔적은 뺑소니 사망 사건으로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검시를 시작한 시간부터 범인을 특정하고 검거하기까지 4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실 운도 많이 따라 줬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죽은 자신의 삶이 억울했던 것일까. 수사에서는 작은 증거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김대열
대구보건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하고 경북지방경찰청 검시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특이한 변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참수와 극단적 자살에 관한 사례 등에 대한 논문을 집필했다. teaeun33@naver.com
*용어정리
표피 박탈
피부의 맨 위층인 표피가 떨어져 나가 진피가 노출되는 손상. 힘의 방향에 따라 마찰성과 압박성으로 나눌 수 있다. 물체가 작용한 면의 형상과 작용 방향에 일치해서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블랙아웃(black out)
과음으로 인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상승할 때 뇌세포가 충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하는 현상.